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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와도 같은 친구가 있다. 두 형제를 키우며 생계는 물론 그야말로 모든 것을 혼자 짊어져야 했던 홀어머니를 (존경과 동시에) 연민하면서도,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엔 열을 올리며 반대하던 그. 이변이 없는 한 본인과는 영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종합부동산세에도 흥분을 감추지 않으며 반대 의사를 표했다. 대체로 그는 복지확대와 증세에 반대하고, 대기업이 망할까 걱정했으며, 경제 부흥이란 주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언가 아니다 싶을 때도 나로선 그를 설득할 능력이 없어 침묵하는 날들이 많았다. 설득하지 못할 바에야 불필요한 언쟁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못내 궁금했다. 그와 나의 다름은 어디서 오는 건지. 그의 완고함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자기 땅의 이방인들> 책표지
 <자기 땅의 이방인들> 책표지
ⓒ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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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땅의 이방인들>은 나의 궁금증을 해결할 실마리를 건네주었다. 부제는 '미국 우파는 무엇에 분노하고 어째서 혐오하는가'이다. 각각 우파와 좌파로 구분되는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갈수록 분열하는 모습에 주목한 저자는, 특히 갈수록 오른쪽으로 향하는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우파의 심장부, 루이지애나로 향한다.

의료보험제도의 실상이 까발려진 뒤로 그 위엄이 깎이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에서 미국은 따라야 할 선진국의 상징과도 같다. 그런 미국에, 한국은 물론 주요 선진국 모두가 실시하고 있는 유급 육아 휴가 제도가 없다는 것은 또 하나의 실망스러운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저자는 위와 같은 사례가 군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에 정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우파의 속성과 맞물려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환경 보호 강화, 지구 온난화 방지, 노숙인 근절 등 수많은 목표 중 하나라도 달성하려면, 정부를 해법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로 보는 이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는 서로 다른 의견을 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경제적 동기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저자는 "공감의 벽"을 넘어서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정치에서 감정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 그들 내면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공감의 벽은 다른 사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며, 이 벽 때문에 우리는 다른 신념을 갖고 있는 이들이나 서로 다른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그런 이들을 적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자료를 들어 이 책이 밝히는 바에 의하면, 미국에서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는 더 가난하고, 10대 엄마와 이혼자가 더 많고, 건강 지표가 낮고, 비만율이 높고, 외상 관련 사망자가 많고, 저체중 신생아가 많고, 학교 입학률이 낮다고 한다. 이들은 산업 오염으로 고통받으며,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5년 일찍 사망한다.

저자가 찾은 루이지애나 주는 위의 대표적 예다. 기대 수명, 최종 학력, 중간 소득 등을 토대로 미국의 모든 주의 인간개발 지수 순위를 매긴 바에 의하면, 루이지애나는 50개 주에서 49위에 올랐고, 전반적 건강 순위는 최하위라고 한다. 미국에서 남성 암 발병률이 둘째로 높은 주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루이지애나 주민들이 정부의 도움을 환영할 것이라고 예상하기가 쉽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것.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거대한 역설'이다.

그 예는 이렇다. 소규모 사업체에서 일하거나 그런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 거대 기업들의 독점적 힘을 굳혀주는 법률을 지지한다. 본인이나 가족이 정부의 공공복지 사업의 혜택을 받았음에도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에 반대하고, 기업의 위법 행위와 자연 파괴로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 환경보호청 축소를 지지한다. 독성물질의 피해자이자 환경론자를 자임하는 사람이 반환경적인 티파티를 지지하는, 그야말로 거대한 역설.

이 역설은 대체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저자의 연구는 이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단서를 제공한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사랑했지만, 생계를 위해 그 환경을 합법적으로 오염시키는 산업에 속했던 이들은 자신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환경 운동이나 연방 정부의 행동을 지지하는 것에 경계심을 품는다. 환경과 일자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공포를 품게 된 것이다.

또한 거대한 환경의 재앙 앞에서 저 멀리 있는 정부를 믿기보다, 아예 종교에 의탁하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들 삶 깊숙이 들어온 교회는 빈곤, 질 낮은 학교, 환경 관련 질병 같은 사회문제와 정부지원 등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는 듯하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고 편파적 보도를 일삼는 폭스뉴스 역시 이런 현상을 가중시킨다고 하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저자가 그들 삶 속에 자리한 희망, 공포, 긍지, 수치, 원한, 불안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재구성한 그들 내면의 이야기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아메리칸 드림만을 꿈꾸며 긍정적이고 도덕적으로 살아왔으나, 새치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들은 여성, 이민자, 난민은 물론, 멸종 위기의 동물인 갈색펠리컨마저 그들 앞을 막아선다고 생각한다. 깊은 분노와 배신감, 좌절을 느낀 이들은, 그렇게 "자기 땅의 이방인"이 되고 만 것이다.

저자는 이들이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느끼기에 재분배라는 개념에 반발심을 가졌고, 경제, 문화, 인구, 정치 영역에서 뒤로 밀려난 느낌에 사로잡혔다고, 그리고 이것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불쏘시개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트럼프의 감정적 호소에 열광하며, 자기 땅의 이방인 신세에서 벗어나 다수가 되는 고양감에 휩싸였다고.

결코 이 책은 미국의 우파를 비난하거나 폄하하려는 생각으로 쓰이지 않았다. 저자는 좌우를 대변하는 양당의 차이가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분명한 대립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한다. 또한, 쟁점별로 따지면 현실적 협력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한다.

저자도 주지한 바 있듯, 건강한 민주주의는 모든 문제를 끝까지 토론하는 집단적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를 희화화나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토론의 상대로서 동등한 위치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미국의 우파를 다룬 책이지만, 책을 읽으며 내가 속한 한국을, 나의 지인들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됐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공감의 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이는 정치적 의제에 임하는 자세뿐만이 아닌,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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