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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TV에서 <일출봉>이란 제목의 사극 드라마를 방영했었다. 조선 후기 봉건 신분 사회의 토대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하여 마침내 억눌렸던 민중의 힘이 '홍경래의 난'으로 분출되는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노비, 천민, 서자, 과부 등 핍박받던 민중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작품이었다.

주인공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절절하고 애잔하였기 때문에 그 드라마에 푹 빠져 버렸다. 드라마를 방영하는 날이면 좋아하는 술자리 초청도 거절하고 시간이 늦을세라 귀가를 서둘렀었다. 이십 수년의 세월이 흘러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뚜렷하게 기억하는 대목이 있다.

주인공 업산이 노비 출신인데도 <맹자>를 줄줄 외우는 것을 우연히 본 임 초시가 자신을 스승으로 대하라고 하고서 글공부를 하게끔 해준다. 그런 후 어느 날 깜깜한 밤에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담장 너머로 들리는 장면이 나온다. 한문에 토를 달아 읽는 것을 현토(懸吐)라고 하는데, 스승인 임 초시가 한문을 현토하여 읊으면 제자인 업산이 구절구절마다 그 뜻을 해설하는 형식이었다.

천장강대임어사인야(天將降大任於斯人也)인대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내리려 하면

필선노기심지(必先勞其心志)하고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고기근골(苦其筋骨)하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아기체부(餓其體膚)하고
그 몸과 살을 굶주리게 하고

궁핍기신행(窮乏其身行)하여
그 생활을 빈궁에 빠뜨려

불란기소위(拂亂其所爲)하나니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시고(是故)는 동심인성(動心忍性)하여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 주어

증익기소불능(增益其所不能)이니라.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맹자> '고자장구(告子章句)' 하편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읊는 소리가 참으로 인상 깊게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외워 두면 좋을 것 같아서 알만하다고 생각되는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시절은 인터넷이 없던 때라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참 답답했었다. 정확하게 알려면 전문가에게 묻거나 관련된 책을 찾아 읽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퇴근길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맹자>를 찾아보았다. 번역서, 주석서, 해설서가 수십 권도 넘었다. 그중 가장 잘 읽히는 해설서 한 권을 사서 오래도록 꼼꼼히 읽었다. 읽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명저였다. 막연히 알고 있던 맹자가 왜 그토록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에게 회자하고 숭상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인민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은 다음이며 군주(君主)는 가볍다."

<맹자> '진심편'에 나오는 이 구절은 참으로 획기적인 인권선언이다. 임금을 첫째로 치고 백성을 그 도구라고 생각했던 종래의 사상을 거꾸로 뒤집어 민(民)을 주체로 하고 군(君)을 가벼운 종속물로 보고자 했으니, 지배자로서는 그처럼 불손하고 위험한 사상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양의 최고 권력자들은 맹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맹자>의 구절을 모조리 삭제해 버렸다고 전한다.

<일출봉>에는 <맹자>의 명문장이 적잖게 인용된다. 드라마 작가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맹자의 민본주의(民本主義) 사상을 그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나는 '고자장구'의 그 구절, 이른바 '천강대임론(天降大任論)'을 수첩에 적어 두고 틈이 날 때마다 외우고 썼다.

天降大任論 『맹자』의 '천강대임론'은 예로부터 고난을 견디게 하는 글, 고통스러운 현실의 돌파구를 여는 글로 유명하다. 시련을 겪거나 고난에 빠진 사람들은 이 구절을 외우면서 힘든 현실을 견뎌냈다.
▲ 天降大任論 『맹자』의 '천강대임론'은 예로부터 고난을 견디게 하는 글, 고통스러운 현실의 돌파구를 여는 글로 유명하다. 시련을 겪거나 고난에 빠진 사람들은 이 구절을 외우면서 힘든 현실을 견뎌냈다.
ⓒ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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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천강대임론'은 예로부터 고난을 견디게 하는 글, 고통스러운 현실의 돌파구를 여는 글로 유명하다. 시련을 겪거나 고난에 빠진 사람들은 이 구절을 외우면서 힘든 현실을 견뎌냈다. 왕조 시대 때 선비들이 절해고도로 유배를 가서 처절한 고독 속에 인고의 시간을 보낼 때 방 벽에 써 붙여 놓고 스스로를 달래며 후일을 기약했다고 전한다. 어느 인문학 강사는 이 구절이 없었다면 유배지에서 많은 선비가 자살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깊이 공감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었다.

'중국 부국(富國)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는 덩샤오핑(登少平)이 정치적 어려움을 겪을 때 이 구절을 수없이 되뇌었다고 한다. 겨우 150cm를 조금 넘는 자그마한 체구의 '작은 거인' 덩샤오핑은 혁명가로 살아오는 동안에 파란만장을 겪었다. 7차례의 암살 위기와 3번의 정치적 실각을 당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66세의 나이에 부총리에서 노동자로 급추락해 난창(南昌)에서 하방(下放) 생활을 시작했다. '하방'은 중국 공산당 상급 간부들을 농촌이나 공장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한 것으로 현대판 유배 생활이라 할 수 있다.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 그는 중국 인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절감했다. 3번째 실각 후 복귀하여 권력을 잡은 것이 1978년 75세의 나이였다. 험한 세월을 견디고 재기에 성공했기 때문에 부도옹(不倒翁), 즉 '오뚝이처럼 넘어지지 않는 노인'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운명의 여신은 몹시 장난을 즐긴다. 우리의 인생길 곳곳에 갖가지 시련과 역경을 숨겨 놓았고, 어렵고 귀찮은 문제를 툭툭 던진다. 힘든 상황에 부딪힐 때 대응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크게 실망하고 좌절하여 그냥 자포자기해 버리는 사람도 있고, 훌훌 털어버리고 금방 힘을 회복하여 더욱 분발하는 사람도 있다.

악성(樂聖) 베토벤은 "인간의 가장 뛰어난 점은 고난을 이겨내고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후 두 동생에게 유서처럼 쓴 편지에는 음악가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극심한 고통을 말하고서 힘든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다.

인간은 역경을 통해서 오히려 성장하는 놀라운 내면의 힘을 지닌 존재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아무리 넘어뜨려도 발딱발딱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복원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은 넘어지면 습관적으로 다시 일어난다. 대단히 회복력이 강하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에게 닥친 크고 작은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힘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한다.

회복탄력성은 유연한 사고에서 발현된다. 마음이 유연하면 곤란한 일을 당해도 쉽게 낙담하지 않는다. 자신의 역량을 신뢰하고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쏟는다.

기원전 300년경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던 그야말로 난세였다. 처절한 비명과 애간장을 태우는 울부짖음, 피비린내가 그치지 않았던 그 와중에서도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믿었다. 과연 인간의 본성은 맹자의 믿음처럼 선한 것인가? 맹자 사후 2,3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세상의 문명은 놀랍도록 발달했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은 여전히 탐욕스럽다. 남의 것을 빼앗고 훔쳐서라도 더 움켜쥐려는 탐욕스런 자들에 의해 온갖 추악한 사건과 문제가 만들어진다. 따지고 보면 맹자의 시대나 오늘날이나 세상은 부조리하다. 가진 것이 없고 힘에서 밀리면 억울하고 슬픈 일을 당하고 시련에 빠지는 것은 부지기수다.

그 시련과 역경에 대처하는 마음과 자세가 사람의 크기를 결정한다. 사람의 성격과 정신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 단련된다. 강철도 더욱 강한 철이 되기 위해서는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가서 담금질 되어야 한다. 마음의 아픔과 육신의 고통은 더 큰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시련과 역경은 인간을 겸손하게 하고, 판단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인간을 성장시킨다.

맹자의 '천강대임론'은 시련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금언이다. 특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젊은이의 가슴을 파고든다면 마음의 근육을 단련해 주는 긍정적인 주술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참고 견디면서 노력하면 좋은 날은 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진리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축성여석의 방)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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