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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시간 노동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모든 후보들이 연간 평균 노동시간을 1800시간대로 낮추겠다고 했지만, 무제한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근로기준법 59조 폐기조차 국회에서 쉽사리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간 문제를 이렇게 회사나 사업장마다 맡겨놓아야만 할까? 법적으로 노동시간을 규제한다면 얼마나, 어떻게 가능할까? 한국보다 연간 300~400시간 적게 일하는 다른 나라의 노동시간 기준은 어떻게 돼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외국의 노동시간 관련 기준을 한국 현황과 비교해보는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교대제, 노동시간 양적 규제, 휴일과 휴가 규정, 모성 보호와 노동시간 등 다양한 주제로 해외 사례와 비교하여 한국의 규제가 어느 수준인지 확인하고,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기자 말

육아
▲ 육아 육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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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①] 마타와 존은 만 12세, 만 10세, 만 5세, 6개월의 네 아이의 부모로, 마타는 치과 간호사, 존은 자동차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마타는 주 2일 16시간, 존은 주 4일 36시간인데 하루 9시간씩 근무하고 있다. 첫째, 둘째, 셋째는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직 아기인 막내는 하루는 보육시설에, 하루는 존과, 나머지는 마타와 함께 보내고 있다. 첫째, 둘째, 셋째가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존이, 다른 하루는 할머니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시간부터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한 시간 반 정도 돌봐주고 있다.

[사례 ②] 아나와 케이스는 만 5세, 만 3세 두 아이의 부모다. 아나는 사회복지 기관장의 비서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12시간 근무한다. 목요일 하루는 종일 근무로 8시간 일하고, 4시간은 재택 근무를 한다. 목요일 하루는 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일하고 있는 케이스가 아이를 돌본다. 이 부부는 둘 다 당분간 이렇게 육아휴가를 파트타임으로 받아 사용하면서 지낼 생각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끝날 때는 육아휴가를 다 쓰고, 둘 다 정상근무를 해야 한다.

여름방학 후 부터, 아나는 주 2일 종일근무 16시간에, 자택근무 4시간을 해야 하고 케이스는 주 5일 근무를 해야 한다. 아나가 근무하는 주 2일은 엄마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조금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대신, 아빠가 이틀 일찍 퇴근하고 학교가 끝나는 시간인 3시 30분에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리고 오기로 했다. 직장에 일주일에 이틀 수업을 일찍 빼달라고 신청한 상태이다.

이상은 네덜란드 맞벌이 부부들이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사례들이다. 유연한 노동시간 제도와 차별의 금지 조항 등을 통해 육아를 위한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네덜란드뿐 아니라 독일, 영국, 핀란드 등의 근로 기준 관련 법률을 살펴보면 일, 가정 양립에 관한 세심한 배려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이를 입양했을 때에도 입양된 아이와 부모의 적응을 위해 2주에서 4주의 입양 휴가를 주게 되어있다. 또 미성년자 혹은 직업 교육 중인 자가 출산한 경우, 낳은 아이의 조부모가 육아 휴직을 쓸 수 있게 한다. 노동자가 임신했음을 알리면 고용주가 노동자의 업무 위험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이나 작업 전환 등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들에게 이러한 사례와 제도는 꿈같은 이야기다. 임신과 출산은 축복받아 마땅하지만 이를 행복하게만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맞벌이하던 부부는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지 종일 육아 시설이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물론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도 있고, 심지어 아빠의 육아 휴직도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인사상의 불이익과 경제적 어려움을 생각해 쉽게 포기하게 된다. 육아휴직을 적절히 사용한다 하더라도 1년이라는 기간 자체가 매우 짧다. 네덜란드의 사례와 같이 일상적인 단시간 노동이나 출퇴근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선 결국 퇴사나 종일 보육 위탁을 선택하게 된다. 

한국의 일·가정 양립에 관한 법률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별도의 법을 통해 꾸준히 발전되어 가고 있다. 또 임신한 노동자에 대한 보호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 법이 현실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 74조의 2. 태아 검진 시간의 허용'을 보면 임신 중 태아 검진과 관련된 시간을 임금 삭감 없이 확보해주도록 되어있다. 이는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현실에선 연차 사용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다. 2014년부터 같은 법 74조 7항에 임신 중 일정 기간 동안 임금 삭감 없이 매일 2시간의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명시했지만, 이를 신청하려면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인디언 오마스 족의 격언은 부족사회를 한참 벗어난 현대사회에서도 아직 통하는 진리이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온 마을이 아닌 사회와 제도가 이에 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2014년 한국 노동연구원은 여성 고용률이 높은 국가에서 출산율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정성미,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 국제비교」, 노동리뷰 2014년 9월호(통권 제114호), 2014.09, 75-77)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의 25∼54세 여성 고용률은 61.2%, 합계 출산율은 1.3명으로 조사되었다. 반면, 노르웨이(82.1%), 스웨덴(82.5%), 네덜란드(78.9%), 덴마크(79.1%), 영국(74.3%), 프랑스(76%) 등 여성 고용률이 높은 나라들에서 합계 출산율이 1.7∼2.0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정성미 연구원은 "영유아 자녀 양육지원, 육아휴직, 유연한 근무 시간제 등 일·가정 양립 관련 제도의 차이뿐만 아니라 제도 사용이 가능한 기업문화와 육아·가사가 여성에게만 집중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가진 선진국은 높은 고용률과 함께 출산율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의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온 마을의 노력이란 이런 것이다. 제도만 변해야 하는 건 아니다. 기업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 나아가 노동 시간으로 차별받지 않으며 유연한 변경이 가능한 노동 시간 제도의 적용 등이 필요하다. 아이의 양육과 가정의 행복을 위해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이뤄가야할 것이 많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권종호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펴내는 '일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노동시간, #육아정책, #과로, #해외_노동법, #출산휴가_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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