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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화순군 능주에 있는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 조광조는 정일하고 은미한 의리를 강조했다.
 전남 화순군 능주에 있는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 조광조는 정일하고 은미한 의리를 강조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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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함께 도모했던 왕은, 배신했다. 유약한 왕은 청산해도 시원찮을 적폐세력과 손잡고 그를 유배 보냈다. 하필이면 전라도 능주(綾州)였다. 능주의 옛 이름은 '이릉부리', 큰 고을이라는 뜻이다. 

이릉부리로 유배온 지 한 달 만에 조광조(趙光祖, 1482~1519)는 왕이 내린 사약(死藥)을 받았다. 중종 14년 12월이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동지의 배신. 그는 통한 서린 절명시(絶命詩) 한 편을 남기고 사약을 삼켰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였고/ 나라를 내 집처럼 근심하였네/ 해가 아랫 세상을 굽어보니/ 충정을 밝게 비추리."

그리고 약 150여 년이 흐른 1667년, 후대들은 그의 유배지에 적려유허추모비(謫廬遺墟追慕碑)를 세운다. 유허비 설립을 주도한 이는 능주 목사 민여로였다.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썼고, 송준길의 글씨를, 민유중이 전서로 새겼다.

유허비는 '한 인물의 자취를 밝히어 후세에 알리고자 세워두는 비'를 말한다. 후대들이 후세에 알리고자 했던 조광조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조광조는 의리(義理)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왕에게조차 "의리에 대해서 생각이 짧기도 하고, (의리를) 계속 쌓으려는 노력도 부족해서 정사(政事)를 처리함에 있어 시비가 일어 근심스럽다"라고 대놓고 쓴 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조광조가 유달리 강조했던 의리는 어떤 의리였을까. 그는 "정일(精一)하고 은미(隱微)한 의리"라고 잘라 말했다. 정일(精一), 마음이 매우 깨끗하고 한결같다는 말이다. 은미(隱微), 안 보일 정도로 희미하고 섬세하다는 말이다. 조광조가 말하는 의리는, 깨끗한 마음이 한결같고 매우 섬세한 의리이다.

 지석강에 비친 풍경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자태 아름다운 정자, 영벽정(映碧亭).
 지석강에 비친 풍경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자태 아름다운 정자, 영벽정(映碧亭).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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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벽정 옆 고목이 제 자태를 지석강에 드리우고 있다.
 영벽정 옆 고목이 제 자태를 지석강에 드리우고 있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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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가 말한 '진짜 의리'

요새 어느 배우가 하는 것처럼 주먹을 불끈 쥐고 휘두르며 '의리'하고 폼 잡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이득 주는 놈에게 줄 서며 서약하는 비굴함도 아니다. 한결같이 당당함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곧추 세우고, 매우 섬세하게 상대를 헤아리는 자세가 조광조가 강조한 진정한 의리다. 참된 의리는 진정한 사랑이기도 하다. 나의 자존을 지켜 모든 이를 편견 없이 사랑하는.

유달리 '정일하고, 은미한 의리'를 강조했던 조광조는 무엇보다 언로가 막힘없이 열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공평무사한 잣대로 인재를 선발해서 등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즉, 할 말이 있으면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고, 사심 없이 공평하게 능력 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 '진짜 의리'라는 얘기다.

정암 조광조 선생이 비명에 간 지 약 500년이 되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의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또 강조해서 말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의리는 요란스런 구호를 외치듯 다짐하는 것도 아니고, 똘마니들의 충성을 미끼로 패거리를 짓는 것도 아니란 것을 조광조는 일갈한다. 언로가 봉쇄되지 않는 열린 세상, 공평한 기준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진짜 의리'있는 세상이 아닐까.

조광조 유허비를 나와 영벽정(映碧亭) 으로 향한다. 지석강에 비친 풍경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자태 아름다운 정자. 연구자들은 영벽정 건립 시기를 조선 명종 때나 선조 때(16세기 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자는 대부분 사대부들이 자신만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벽정은 독특하게 사대부 개인이 아닌 관에서 세운 정자다.

타고난 이력이 다른 정자, 영벽정.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푸른 강변에 우아하게 선 영벽정을 찾아와 위로를 받는다. 정자를 '산으로 가는 배'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 배를 타고 어디로 가고픈 것일까. 배는 푸른 물결을 따라 방주처럼 편하게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배를 스치며 흘러간다. 소중한 인연, 아름다운 추억.... 관계에 대한 의리를 지켰기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안타까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스스로가 작아질 때마다 자기 연민보다는 자신을 사회화시키려 노력했다. 그대와 나, 우리 안에서 다시 바라보고 싶었다. 순정한 만큼 비굴하고 싶지 않았다. 

 능주 삼충각은 물길, 도로, 기찻길 어느 길로 가든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능주 삼충각은 물길, 도로, 기찻길 어느 길로 가든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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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가 궁금하거들랑

배는 능주 삼충각(綾州 三忠閣)을 지난다. 삼충각을 가운데 두고 물길과 도로, 기찻길이 이어져 있다. 어느 길로 들어서던 시야에서 삼충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늘 바라보며 새기라는 삼충각에 새긴 정신은 충(忠)이다.

삼충각은 능주 출신 최경회, 문홍헌, 조현을 기리는 정려 건물이다. 최경회와 문홍헌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했다. 조현은 을묘왜변(1555년) 때 해남에서 전사했다. 싸우다 죽음으로써 충을 지킨 사람들. 그들이 죽음으로 지킨 나라 조선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미 군정기를 거쳐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잔업철야를 밥 먹듯 하며 가난에 찌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학살자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서 자유와 평등을 되찾아왔다. 위임받은 권력을 방치해버린 무능한 대통령을 한겨울 내내 싸워 내쫓아 버렸다.

나라는 우리를 배신했어도 우리는 항상 국가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우리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빼먹었어도 나라에 대한 충성을 한시도 놓아본 적 없다. 그러니 헛된 의리 강요하지 마시라. 그러니 헛된 맹세 다그치지 마시라.

정일하고 은미한 의리 지켜야할 자들은 누구인가. 어설픈 권력에 취해 주권자인 시민에게 시건방 떨며 건들거리는, 바로 그대들이다. 말의 다짐이 아닌 행동으로 충성을 입증해야할 자들 누구인가. 제 나라의 운명과는 상관없이 힘 센 나라에 사대하는 비굴한 먹물들, 바로 그대들이다. 전남 화순 능주로 오시라. 의리가 얼마나 깨끗하고 섬세하고 구체적인 사랑인지 그대 몸이 먼저 얘기할 것이다.

 삼충각은 능주 출신 최경회, 문홍헌, 조현을 기리는 정려 건물이다.
 삼충각은 능주 출신 최경회, 문홍헌, 조현을 기리는 정려 건물이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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