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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믿고, 금융권을 믿고 사업했습니다. 나라의 기둥으로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매출) 8000억 원 짜리 회사가 한순간에 없어졌다는데 말이 안 되는 상황이죠."

지난 11일 저녁 키코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동위) 송년회 자리에 참석한 박용관 전 동화산기 회장의 말이다. 앞서 2008년 이른바 '키코사태'가 터진 뒤 수백 개의 중소·중견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박 전 회장의 회사도 키코로 크게 손실을 입고 매각됐다. 이듬해까지 피해기업들은 함께 모여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지만 이후 공동위는 사실상 와해됐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1대, 2대를 거쳐 3대 공동위가 출범한 이후 지난 6월부터 피해기업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공동위는 이후 매달 모임을 갖고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11일 오후에 열린 공동위 회의에는 피해기업 50여 곳의 대표들이 참석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참석률을 보인 것이다.

2009년 이후 다시 모인 키코 피해업체들..."웃는 날 왔으면"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회관에서 열린 '키코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동위) 대책 회의'에서 조붕구 공동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회관에서 열린 '키코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동위) 대책 회의'에서 조붕구 공동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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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knock-in, knock-out:KIKO)는 환율이 일정 구간 안에서 움직일 경우 미리 정한 환율로 달러를 팔 수 있도록 만든 금융상품을 말한다. 은행들은 지난 2007년 말~2008년 초 키코를 '환 헤지(위험회피)'가 가능하고, 수수료가 0원인 상품으로 소개하며 수출 기업들에게 판매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으로 폭등하자 약속한 환율의 2~5배를 물어주게 된 수많은 기업들이 손실을 입고 파산했다.

이날 회의가 끝난 뒤 키코 피해 기업들은 금융계, 학계 인사들을 초청해 송년회를 열었다. 함께 자리한 일성하이스코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말을 했다. 그는 "2010년에 입사했다"며 "잘 커오던 회사가 키코로 무너진 때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회생을 겨우 마무리하고 다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며 "잘돼서 웃는 날이 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일성(현 일성하이스코)에서 근무하다 키코 이후 퇴직한 뒤 자영업을 하고 있는 직원의 말이 이어졌다. 그는 "장세일 전 일성 회장과 2012년까지 일하다 퇴사하고 지금은 조그맣게 전자상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기계산업 3대 업체 키코로 없어져...제대로 밝혀주길"

이와 함께 기업회생 절차를 밟던 코막중공업의 감사를 맡았던 회계사도 이날 송년회에 참석했다. 이일섭 회계사는 "회계감사를 하면서 키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많은 중소기업들이 고통 당했다"고 했다. 이어 이 회계사는 "키코 문제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가 요즘 다시 부각되고 있다"며 "정부 쪽이든 어느 곳이든, 중소업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키코 관련 문제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뤄지리라는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더불어 옛 성진지오텍 직원도 이날 자리해 발언에 나섰다. 그는 "일성, 지에스엔텍과 함께 동종업계로는 울산에서 가장 큰 업체 중 하나였다"며 "전부 키코 때문에 거의 망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회사(성진지오텍)는 없어졌다. (직원이) 750여명이었는데 50여명 밖에 안 된다"며 "키코 피해금액만 약 4000억 원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이자까지 합하면 6000억 원 가량 될 것"이라며 "한번 잘못된 상품에 가입해 모두가 집에 갔다"고 부연했다. 이어 이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울산에서 가장 큰 업종은 조선업, 기계산업이었습니다. 키코 때문에 기계산업 업종이 완전히 없어졌죠. 회사들이 없어졌습니다. (우리 나라) 경제에 미친 영향도 상당히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학계, 경제계 등에서 제대로 밝혀주셔서 원상복구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우리 경제 1세대 주역들이 이렇게 돼..." 안타까움 속 기대감 드러내

또 이날 송년회에는 옛 성진지오텍과 거래하던 금융회사의 임원이었고, 현재는 키코 피해기업들을 물밑에서 돕고 있는 금융권 인사도 자리했다. 박준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해외투자본부장은 "3년 전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며 "미래에셋에 있을 때 (키코 피해기업이) 펀드에 투자했고 2008년까진 좋았다"고 말했다. 이에 옛 성진지오텍 직원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설립 이후 가장 큰 금액을 투자한 곳이 우리 회사였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어 박 전 본부장은 "2009년에 (키코 피해기업이) 고생을 많이 했다"며 "저도 금융전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키코라는 상품을 처음 보며 '어떻게 이런 게 있을 수 있나' 많이 당황했다"고 했다. 또 그는 "조붕구 회장이 3~4년 전부터 (피해기업들의) 재기를 지원한다고 해서 열심히 돕고 있다"며 "여러 가지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대륭의 신석균 사장도 인사말에 나섰다. 신 사장은 "저희 회사가 상당히 어려워졌을 때 조 회장이 기꺼이 도와 고마웠다"고 운을 뗐다. 대륭이 키코 피해기업은 아니지만 어려움에 처한 적이 있어 그 심정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성, 대경기계 등은 우리 경제의 1세대 주역들"이라며 "그 분들이 (경제를) 크게 만들어놓으셨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신 사장은 "앞으로는 결과가 좋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내보였다.


태그:#키코, #키코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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