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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의 소설 <벨 자>는 당시 사회를 휩쓸던 매카시즘을 비롯하여 여성에게 요구되던 성 역할, 그 유리종과도 같은 억압 속에 갇혀 지내야 했던 여성의 삶 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충격적인 부분은, 신경증에 대한 치밀하고도 처절한 묘사가 아닐까 한다.

주인공 에스더가 병원에서 받아야 했던 치료들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충격요법이라는 명목으로 전기치료가 행해지고, 그녀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사랑해 마지않는 엄마마저 그녀의 고통을 "자기에 대해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생긴 병"으로 여긴다.

소설이지만,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저자 실비아 플라스는 여러 번의 자해를 하고, 결국 서른이 겨우 넘은 나이에 자살로 세상을 떠난다.

의학의 발달로 그때보다 나은 약물요법과 치료법이 존재하겠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전문적인 심리상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섣부르지만, 누가 알겠나. 그녀가 누군가에게 이해받았다면, 빛나는 재능을 더 오래 세상에 떨칠 수 있었을지도.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 책표지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 책표지
ⓒ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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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를 읽으며, 내가 가진 심리상담에 대한 오해들을 떨쳐내게 되었다. 몸이 아프면 그러하듯, 마음이 아파도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러면서도 알게 모르게 가진 편견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심리상담에 대한 벽을 없애기 위한 두 저자(아래 저자)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심리상담의 역할이 위로가 전부가 아니며, 분명한 목표 설정이 선행된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면 상담자와 함께 목표를 정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목표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특별한 목적이나 주제가 없는 수다나 잡담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심리상담은 서양에서 시작되었지만 문화적 특성상 한국과 서양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남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한 서양에서는 심리상담가에게 공감과 위로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면, '나'보다 '우리'가 우선시되는 한국에서는 지인들로부터 감정적 지지를 받기에 그보다는 변화를 기대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심리상담을 받으려면 마치 특별한 조건이 필요한 것처럼, 자신이 심리상담을 받는 것은 '유난떠는' 것처럼 생각하며 망설이는 것에 대해 작가는 명료하게 말한다. "당신이 느끼는 것이 고통이면, 그것은 고통이다"라고.

정작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잘 살고 있는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상담을 받게 되는 역설에 대해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의 삶은 관계로 맞물려 있으므로,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의 변화는 주변사람들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물론, 내가 아무리 변해도 상대가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어지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러나 상대가 변하지 않고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 그들이 변하지 않더라도 내가 변한다면 더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답니다."

책은 집단 상담에 대한 오해도 풀고 있다. 영화나 기타 매체에서 스치듯 본 집단상담 장면으로, 나는 그것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고백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집단상담은 개인의 과거사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감정과 생각에 더 집중한다고 한다. 구성원들끼리 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우울이나 불안을 줄이고,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개인상담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다고 하니, 나와 같은 오해는 하루빨리 없어져야겠다.

우울의 여러 측면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감정의 우울'은 우리가 흔히 우울하다고 할 때의 느낌인 처지고 힘 빠지는 기분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생각의 우울'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비관적인 생각이고, '행동의 우울'은 앞의 두 우울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자해나 자살, 수면장애 등의 증상으로 표출되는 우울을 말한다고 한다.

약물은 그 중 감정의 우울을 조절하는데 탁월하지만, 생각은 약으로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심리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리상담에 대해 퍼져 있는 일반의 오해들을 풀어나가면서도, 저자는 심리상담이 "나를 치유해줄 마법의 알약"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례도 가감 없이 밝히고, 상담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저자는 심리상담이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수차례 강조한다. 상담자와 내담자는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마음을 탐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상담자는 숙련된 기술과 방법이 있으나, 탐험을 위한 지도를 가진 것은 내담자 자신뿐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저자가 강조하듯, 내담자의 적극적인 자기표현은 상담에 매우 중요한 듯하다.

책은 첫 장부터 아주 명료하게 시작했다.

"심리상담은 미친 사람만 받는 게 아니야."

그런 극단적인 편견이야 이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며 내게도 알게 모르게 심리상담에 대한 오해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개하기 불편한 지점도 있었을 텐데, 심리상담에 대한 허와 실을 낱낱이 드러내며 대중이 가진 벽을 허물려고 한 작가들의 노력이 고맙게 여겨진다. 쉽고 명료한 문장과 친근하게 다가오는 삽화도 큰 몫을 했다.

심리상담이 절실하게 느껴져도, 혹시나 하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여전히 망설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책을 인용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이것은 미래의 나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니 왠지 억울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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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 #와이즈베리, #강현식, #서늘한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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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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