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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난 지 넉 달 된 길고양이 꼬미예요.
한강 가까운 아파트 지하실에서 나고 자랐어요.
여덟 살 송이를 만나 '꼬미'라는 이름도 얻고,
제대로 된 음식도 처음 맛보았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를 예뻐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닌가 봐요.
어느 날, 우리가 사는 지하실에 철커덩 자물쇠가 채워지고,
쾅쾅 창문마다 빗장이 질러졌어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양이 별로 떠나야 하는 걸까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6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에서는 길고양이들이 감금 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한강맨션 고양이 억류사건'이다.

길고양이들이 지하 전기시설을 건드려 정전사고를 일으키고, 악취를 풍긴다며 이 아파트 운영위원회가 지하실 9곳의 철문을 용접한 것이다. 운영위원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하실 주변에 덫을 놓았다. 이 사건으로 지하실에서 몸을 피하던 길고양이들이 떼죽음을 당해야 했다.

참혹하기 그지없었던 한강맨션 고양이 억류사건은 한 편의 동화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길고양이들의 삶을 사진과 글로 담아온 이용한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책 작가인 이미정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림을 맡은 동화 <고양이 별>이 바로 그 책이다.

이용한 작가는 주인공 아기 고양이 '꼬미'의 시선으로 그때의 일을 재구성한다. 꼬미는 한강 가까운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꼬미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 알록 이모와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 코코 아저씨, 미루 언니와 함께 살아가는 길고양이다. 꼬미는 길 위에서 태어났고, 다른 주인공들은 인간과 함께 살다가 버려져 길 위를 배회하는 처지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주인공은 코코 아저씨다. 푸른 빛이 살짝 감도는 짙은 회색과 연두색 눈빛을 가진 코코 아저씨는 다른 길고양이들의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꼬미는 코코 아저씨를 만물박사라고 부르며 따른다.

"코코 아저씨는 모르는 게 없는 만물박사에요. 궁금한 게 있어서 엄마에게 물어보면 늘 '코코 아저씨한테 가서 물어봐'라고 하지요. 코코 아저씨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어떤 고양이보다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코코 아저씨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아요." - 본문 7쪽

길고양이들의 멘토라고는 해도, 코코 아저씨 역시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아픔을 겪었다. 코코 아저씨의 아픔은 한강맨션 주위에 버려진 길고양이들의 사연을 축약해 놓은 듯하다. 한강맨션은 한때 부유층이 살았었고, 이들은 코코 아저씨 같이 고급 품종묘들을 키우다 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좋아하고 쉽게 싫증을 내지. 행복한 아기 고양이 시절은 금세 지나가는 법이야. 내가 아기였을 때는 날마다 안아 주던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어. 털이 너무 많이 빠진다고 침대에 올라오지도 못하게 하고, 사룟값도 못 한다며 툭하면 굶겼지. 난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 갔단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기 지하실 앞에 버려진 거야." - 본문 11쪽

꼬미 가족에게 닥친 비극

<고양이 별>은 2006년 있었던 '한강맨션 고양이 억류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길고양이 작가 이용한은 당시를 고양이 꼬미의 시선을 재구성한다. 이미정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은 여운을 더한다.
 <고양이 별>은 2006년 있었던 '한강맨션 고양이 억류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길고양이 작가 이용한은 당시를 고양이 꼬미의 시선을 재구성한다. 이미정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은 여운을 더한다.
ⓒ 책읽는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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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 위에서 삶을 살아가던 꼬미네 가족들에게 최대 위기가 닥친다. 운영위원회 주민들이 꼬미네 가족들이 살던 지하실 문을 막아 버린 것이다. 마침 계절은 겨울이어서 꼬미 가족들은 추위와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 다행히 꼬미 엄마는 감금을 피했다. 그러나 지하실 주변에 사람들이 놓은 덫에 걸려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알록 이모가 지하실에서 낳은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도 배고픔과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고양이 별로 떠난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남은 고양이들은 서로를 껴안으며 위기 상황을 버텨 나간다. 작가의 글에서 길고양이들의 절박함이 묻어난다.

"우리 셋은 서로 꼭 껴안고 체온을 나누었어요. 한 마리보다는 두 마리, 두 마리보다는 세 마리가 훨씬 따듯했어요. 굳었던 몸이 조금씩 풀리자,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어요. 알록 이모와 코코 아저씨는 잠들면 큰 일 날 수 있다며 계속해서 나를 핥아 주었어요." - 본문 71쪽

한강맨션 고양이 억류사건은 사건의 심각성 탓인지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심도 있게 다룬 바 있었다. 무미건조한 보도 기사를 통해서도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그런데 고양이의 시점에서 바라본 그때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야말로 잔혹동화다.

그러나 <고양이 별>이 그저 사건의 참혹상을 재구성한 데 그치는 건 아니다. 그보다 작가는 차분하고도 호소력 강한 어조로 길고양이들에게도 저마다의 '삶'이 있었음을 일깨워준다.

이용한 작가는 지난 9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책과 사진을 통해 '사람과 고양이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 같은 작가의 시선은 이 책에 잘 스며 있다. 이미정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도 책의 여운을 더해준다.

길고양이들은 흔하디 흔하다. 가끔씩은 사람들로부터 끔찍한 해코지를 당하고, 이 가운데 일부 사례는 언론에 나오기도 한다.

부디 간절히 호소한다. 말만 못할 뿐이지 길고양이들도 각자의 삶이 있는 존재들이다. 살아 숨쉬는 이유만으로도 이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말 못한다고, 약하다고 해코지하는 건 범죄다. 사람들의 괴롭힘 때문에 가뜩이나 고달픈 삶을 살아내야 하는 길고양이들이 고양이별로 떠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고양이 별은 여기처럼 춥지 않겠지? 고양이를 괴롭히는 사람도 없을 거야. 그렇지?" - 본문 69쪽


고양이 별

이용한 지음, 이미정 그림, 책읽는곰(2017)


태그:#고양이 별, #이용한 작가, #한강맨션 고양이 억류사건,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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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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