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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따뜻해진 일요일 아침이다. 침대에 맞닿은 창에서 내리쬐는 햇살이 '그만 일어나'라며 극성스럽게 깨워대고 있지만, 이불 안의 포근함을 놓치지 않겠다며 애쓰는 지금이 여유롭다. 아, 게으름으로 뒹굴뒹굴하던 아침을 즐기고 있었는데 오후의 중요한 약속이 '화들짝' 정신을 깨운다. 그렇다. 오늘은 회사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한 날이다.

따뜻하고 게으른 일요일 아침이네요 포항에도 조금씩 일상이 돌아오고 있긴 합니다. 오랜만에 일요일 아침의 햇살을 즐기며 게으름을 부리다가, 깜짝 놀라서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 따뜻하고 게으른 일요일 아침이네요 포항에도 조금씩 일상이 돌아오고 있긴 합니다. 오랜만에 일요일 아침의 햇살을 즐기며 게으름을 부리다가, 깜짝 놀라서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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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까지 (포항 지진 이재민 대피소 중 하나인) 흥해 공업고등학교 운동장으로 오세요."

지난달 15일 포항 지진 이후로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불안이 일상의 평온을 잠식한 것은 물론이고, 집 안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서 퇴근 후에 몇 시간씩 집 주변을 방황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3주 정도 지난 지금은 여진도 잠잠해 안정감을 느끼곤 하지만, 진앙 근처의 주민들은 아직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 분들이 많다. 오늘은 그분들을 위한 대피소 중 하나를 찾아서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곳에서는 너무 크게 웃거나 소란스럽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인솔하신 동료의 한마디로 이곳의 무거움은 내 것이 됐다. 내가 살고 있는 포항시 남구에서 북쪽으로 20분 정도 운전해서 올라가면, 이번 지진으로 가장 피해가 큰 흥해읍에 도착한다. 현재는 흥해 체육관, 흥해 공업고등학교 체육관, 포스코 월포수련원 등을 이재민 대피소로 운영하고 있는데, 오늘 찾아갔던 흥해공고 체육관에는 200여 분의 이재민이 머물고 있다고 하신다.

흥해공고의 학생들은 그들의 학교를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 주었다. 운동장은 대부분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고, 중앙에는 모래 먼지가 가득하게 얹혀있는 다양한 천막들이 배치됐다. 각 천막들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심리 치료를 위한 상담을 하거나, 배식 봉사자들을 위한 공간 또는 식당으로 쓰이기도 했다. 운동장의 한 쪽 끝에는 가족들이 머무시는 체육관이 있었고, 반대쪽 끝에는 가족들의 세탁을 위한 이동 세탁봉사차가 와 있었다.

 포항 지진으로 대피한 이재민들이 흥해실내체육관에 가득 모여 있다. 이들은 여진과 조그만 땅흔들림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포항 지진으로 대피한 이재민들이 흥해실내체육관에 가득 모여 있다. 이들은 여진과 조그만 땅흔들림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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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운동장에 물을 좀 뿌려야겠어요."

가뜩이나 몇 달동안 비를 보기 힘들었던 포항이라, 모래 먼지는 거침없이 모두에게 공격을 가했다. 비가 내려주면 제일 좋겠지만, 일단은 푸른색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건조한 바닥을 달래본다(물론, 한낮의 햇살로 금세 말라버려 허탈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물을 뿌리다 보니, 다급하게 봉사자들을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식당 안 장판을 좀 평평하게 만들고 싶어요. 장판이 울퉁불퉁하게 들고일어나서,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시다가 자꾸 넘어지시거든요."


문제의 발단은 식당의 모래 바닥에 깔려있는 장판이었다. 천막 내부를 덥히기 위해서 난로를 사용하고 있는데, 난로의 열기로 장판이 불규칙하게 울면서 바닥이 우글쭈글해져버렸다. 가뜩이나 걷기가 힘드신 어르신들이, 평평하지 않은 장판 위를 걸어 다니시면서 자꾸 넘어지신다는 얘기였다. 이런 설명을 듣고 있는데, 어르신 한 분이 힘들게 식당을 나가시면서 '괜찮다'하시는데 위태로워 보인다.

"장판을 좀 무거운 매트 같은 것으로 눌러놓는 게 좋을 텐데요."
"지금 당장은 구할 수 없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들 중 한 무리는 식당의 장판에 칼집을 내어서 울퉁불퉁하게 늘어난 면을 조금이라도 늘여서 평탄하게 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고, 나머지 한 무리는 이재민 분들이 거주하는 체육관 안을 청소하기로 한다. 체육관 안에 들어서니 개별 가구별로 머무실 수 있도록 텐트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고, 몇몇 텐트 안에서는 주무시는 분들도 계셔서 조심스럽게 통로를 중심으로 바닥을 훔쳤다. 이곳의 바닥에도 장판이 깔려 있었는데, 식당에서와 동일하게 울퉁불퉁하게 울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환경에서 사용하기에 적절한 재질이 아닌 모양이다.

청소를 끝내고 나왔더니, 식당 바닥의 평탄화 작업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우글쭈글 해진 장판을 절개하고 양쪽을 당겨서 청테이프로 다시 붙여놓았는데, 임시방편이기는 하지만 무척이나 평평해져 있었다. 고생하신 동료들을 도와서 작업을 마무리하고, 식당이 비어있는 틈을 타서 내부 청소를 했다. 주민들은 배식 봉사를 하는 분들에게 식사를 받아서 '만남의 광장'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공간에서 식사를 하시는데, 이곳도 외부에서 날아들어온 모래 먼지의 공격으로 초토화돼 있었다. 날씨가 좀 더 추워지면 이렇게 식사하시는 것도 힘들 텐데, 큰일이다.

남은 청소를 끝내고 한 번 더 운동장에 물을 뿌려주고 나서 오늘의 봉사 활동을 정리했다. 어느덧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모래가 마르는 속도가 확실히 더뎌지긴 했지만, 그만큼 추위가 움직임을 움츠러들게 한다. 이곳에서 지내시는 분들은 이 추위를 견디셔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니, 잠깐의 도움을 거두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식당도 체육관 내부도 많이 정리가 됐어요. 그리고, 힘드시겠지만 앞으로도 신경을 좀더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진이 발생하고 난 다음 3주 정도 지나가면서, 자원봉사자분들이 많이 줄어들어서 일손이 많이 필요했거든요. 아직도 이재민이 800여 분 이상 남아있는데, 관심 거두지 말고 계속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도움뿐만이 아니라, 훼손된 주택을 복구하는 일에도 도움이 필요해요. 건축, 전기 공사 등에 전문성이 있으신 분들은 그런 곳에도 관심을 좀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또 뵙겠습니다."

활동을 정리하는 자리에서 자원활동 담당자께서 한 말이다. 생각해보니, 3주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곳에서 지내시는 분들의 보금자리가 회복되기까지는 아직도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물론, 주택의 복구작업까지 자원봉사자가 해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는 잠시 의문이 들었으나, 우리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등이 되어 주는 것이 절실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흥해 중학교 강당은 붕괴 위험이 있습니다 지진이 나고 1주일이 지나서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잠시 흥해 체육관에 들렀었는데, 방역과 개별 텐트 설치때문에 들어가지는 못했었네요. 그 때, 지나가는 길에 만난 흥해 중학교의 강당에서 반짝이는 표지에 놀라서, 사진을 남겼습니다.
▲ 흥해 중학교 강당은 붕괴 위험이 있습니다 지진이 나고 1주일이 지나서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잠시 흥해 체육관에 들렀었는데, 방역과 개별 텐트 설치때문에 들어가지는 못했었네요. 그 때, 지나가는 길에 만난 흥해 중학교의 강당에서 반짝이는 표지에 놀라서, 사진을 남겼습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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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난 직후에는, 오직 '내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 순간에도 우리의 이웃을 위해 도움을 나눠주신 자원봉사자분들의 희생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지진의 복구는 결코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일이 아니고, 우리의 이웃에게 나눠줄 수 있는 관심을 거둘 때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오늘이었다. 이재민 대책이나 대피소의 사정에 대해 이것저것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나아질 것을 믿는다. 그리고, 아픈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 손을 내어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첨언 :  자원봉사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포항시 자원봉사 센터 홈페이지 (http://phvc.pohang.go.kr/phvc)에 방문해 공지사항을 확인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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