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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부천의 한 노숙인 쉼터에서 시 한 편을 적었습니다. 문제의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혼의 집>

지상에 방 한 칸 가질 수 없어서
마음 한 자리
집을 짓는다.

정갈한 거실


밀레의 '만종'
걸어 놓는다.

저무는 황혼
노동의 들녘에
궹이를 손에 쥐고
고개를 숙여

저 경이로운 감사기도를
드리게 하는 것은

가족의 힘
돌아가 쉴 수 있는
집의 힘

그래서 나는
남루한 영혼에
천상의 집 한 채 가진
사람이 된다.

인생의 상처가 냄새처럼 맡아지는 사내들과 좁은 방 안에 어깨를 부딪히며 잠들고, 일어나 청소하고 체조도 하고,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만드는 교도소 무용담도 듣고, 청계천에서 세탁소를 했다던 김선생의 맞지 않던 틀니도 걱정하고, 식탁을 펴고 국과 밥을 끊여 주던 맑은 눈의 경상도 사내(이름이 기억나지 않음)와 형 아우하며 지내던 시절에 적은 시입니다.

아, 그런 집에 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말입니다. '그 꿈은 하늘에나 가야 이루어지겠구나' 하면서.

저의 직업은 다양했습니다. 영화사 조감독, 잡지사 편집기자, 연극 연출, 이벤트 연출 등 중구난방이었습니다. 치기 어린 시절이었지요. 그 후, 엑스포도우미 내레이션 교육을 시작으로 여러 기업체의 고객만족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래도 좋게 생각하셨는지, 강의 중 조는 사람 없이 재미있어 한다고 대기업에서도 교육을 맡겨 주었습니다. 그러던 마흔 넷, 지금부터 바야흐로 십삼 년 전이군요. 흔히 말하는 유산싸움에 휘말려 쉼터로 피해 다니고 결국, 부친이 돌아가시자 끝이 나더군요.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간략하게 적어봅니다.

그리고, 고시원 생활. 좁은 방 안에 누워, 시비하는 문밖의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 불안해하며 잠들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과거 연극배우였던 김완규 님은 십여 년 동안 고시원과 쉼터를 떠도는 생활을 하면서도 연기와 관련된 책들을 버리지 않았다.
 과거 연극배우였던 김완규 님은 십여 년 동안 고시원과 쉼터를 떠도는 생활을 하면서도 연기와 관련된 책들을 버리지 않았다.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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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십여 년의 알코올. 술이 개입된 십여 년의 풍경은 늘 똑같습니다. 갈망, 음주, 해방 및 일탈감, 탈진, 분노, 자기연민, 엄습하는 불안. 조금 일하다가 며칠씩 술을 마셔 무단결근으로 잘리고, 술취한 언행과 치행으로 피해를 본 주변 사람들로부터 거리낌을 받아야 하는 순간들.

그렇게 고시원과 쉼터를 전전하다가 고마운 분들의 손길로 작년 10월,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5년 전의 그 시 속에서 꿈꾸던 방과 똑같은 방. 정갈한 하얀 벽,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옷장 등이 모두 갖추어진, 벽 너머 코 고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안 들리고, 모두 같은 시간에 행동해야 하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행복하우스. 기적 같았습니다.

김완규 님의 '집'. 김완규 님은 지원주택 행복하우스에 살면서 근처 기타교실에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김완규 님의 '집'. 김완규 님은 지원주택 행복하우스에 살면서 근처 기타교실에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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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십여 년의 파행된 습관이 비수처럼 나타나 넘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결심과 행동이 다른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곳 지원주택에 와서야 알코올중독 치료를 시작했고, 사력을 다한 복약이 왜 소중한지를 몸서리치며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환경의 기회 속에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고, 부축해주실 때 건강한 걸음을 내딛고 싶습니다.

바로 생활하지 않으면 정말 지원주택이 필요한 어떤 분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니, 열심히 일하고 늘 돌아와 쉬고 싶은 안온한 이곳에 있을 때 힘을 다해 건강한 삶을 되찾고 싶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이와 같은 집에 들어와 소생할 수 있도록 관심과 힘을 보태주십시오.

'2017 길리언 토크콘서트'의 연출을 맡은 김완규 님이 행사 진행 큐시트를 설명하고 있다.
 '2017 길리언 토크콘서트'의 연출을 맡은 김완규 님이 행사 진행 큐시트를 설명하고 있다.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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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청소미화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배우 김완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의 연극과 지원주택 입주민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지원주택 입주민들과 함께 하는 토크콘서트에 초대합니다.
 지원주택 입주민들과 함께 하는 토크콘서트에 초대합니다.
ⓒ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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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지원주택, #행복하우스, #홈리스, #노숙인, #탈시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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