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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청소년개척단'을 조직한 박정희 정권은 부랑자, 고아들을 충남 서산에 가뒀습니다. 바다를 막아 땅을 일구게 했습니다. 이들과의 강제 결혼을 위해 부녀자도 끌려왔습니다. 보상 대신 그들 앞에 놓인 것은 20년 상환으로 갚아야 할 빚 뿐. 대부업자는 국가입니다. [편집자말]
이조훈 영화감독은 “61년부터 67년까지 그들이 6~7년 간 당한 고통이 개척단으로 끝나고도 끝나지 않았다”며 “국가는 계속 도둑질 하고 있고 그들은 계속 농락 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조훈 영화감독은 “61년부터 67년까지 그들이 6~7년 간 당한 고통이 개척단으로 끝나고도 끝나지 않았다”며 “국가는 계속 도둑질 하고 있고 그들은 계속 농락 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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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걸리면 죽어유, 거적때기에 묻어버리고"

겨우 눈물을 참았다고 했다. 개척단원으로 끌려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개구리를 날로 뜯어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아니었다고 했다. 굶어 죽고, 앓다 죽고, 맞아 죽은 이야기들은 충격적이었기에 또 그만큼 실감이 덜 날 수 있었다. 수놓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 말에 속아 왔더니, 생판 처음 보는 남자와 강제로 결혼시켰다는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을 들을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서산 개척단원들 관리자 중 한 명을 어렵게 찾아 인터뷰를 했다. 그동안 확보한 증언을 바탕으로 개척단에서 죽은 사람이 많지 않냐고 했더니 없다고 하더라. 그랬던 사람이 눈물을 터뜨렸다. (사망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말했다고. 없었다는 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죽은 친구들 생각난다고 많이 우시더라. 그때 특히 울컥했다."

이조훈 감독(2015년 개명 전 이름 이훈규)은 이렇게 이 사건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박정희 정권이 민간인을 강제로 가두고 '대한청소년개척단'이란 이름으로 간척 사업에 부려먹고, "개간하면 땅을 준다"는 약속마저 어긴 이 사건. 그 약속을 놓고 아직도 국가와 싸우고 있는 개척단원들의 이야기. 이 사건을 이 감독은 오랫동안 추적했다.

17년차 베테랑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이었지만, 이 사건은 그에게 참 남다른 듯했다. 이 감독은 주로 노동이나 사회 문제를 다뤘고, 해외 지역 취재도 다수 경험했다.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전세계 농민 공동 행동의 날' 행사 현장에서 고 이경해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신자유주의 열풍에 승선한 민영화의 문제점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딜>을 만들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박정희 까는 다큐를 만든다는 것

이조훈 영화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박정희 정권 당시 사회적 약자를 끌어다 강제노동을 시킨 ’대한청소년개척단’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4년 동안 취재한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이조훈 영화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박정희 정권 당시 사회적 약자를 끌어다 강제노동을 시킨 ’대한청소년개척단’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4년 동안 취재한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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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다큐멘터리의 경우는 제작비 마련부터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표현 그대로 옮기면 "박근혜 정권인데 박정희 까는 거 만들자고?", 탄핵 국면 이전에는 제작비 지원을 받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영화제, 모태펀드, 지상파 방송사 등 다양한 창구를 두드렸지만 "다 까였다"고 한다. 지난 9월에 와서야 4년이란 시간 동안 들어갔던 비용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제작비 지원금을 일부 확보한 상태다.

28일 이 감독을 만났다. 제작비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2013년 9월부터 오랜 시간 동안 그로 하여금 이 사건을 추적하게 만든 힘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1961년 일어난 사건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노출되지 않은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 사건의 본질에 더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왜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극장에 올리고 싶어하는지도 들어봤다.

- 이 사건을 처음 어떻게 알게 됐나.
"KBS <1박 2일> 유일용 PD로부터 처음 들었다. 대학 선후배로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유 PD가 어릴 때부터 서산에 살면서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강제로 끌려왔고, 강제로 노역하고, 강제로 결혼하고, 탈출하다 맞아 죽은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부터 개척단 분들이 너무 힘들어한다고, 다큐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 처음 이야기 들었을 때 믿어졌나.
"아뇨. 처음 듣는 얘기라 자료를 찾아보겠다고 했는데, '대한청소년 개척단' 기사들이 있긴 하더라. 1960년대 나온 기사가 대부분이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역사적 과오 아닌가. 그런데도 어떻게 개척단 운영 잘 되고 있다는 식의 홍보성 기사만 있는지, 그게 더 놀라웠다. 알고 있는 건 지역 주민뿐이겠다는 생각에 가서 개척단 분들을 만났고 신빙성이 있고 현재진행형 사건이었기에 다큐로 만들기로 했다."

박정희 좋게 평가하는 피해자들... 그 아픈 사연

이조훈 영화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1966년 당시 서산개척단 단원들이 농지개간을 비롯한 운영 문제 등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청와대에 보낸 탄원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조훈 영화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1966년 당시 서산개척단 단원들이 농지개간을 비롯한 운영 문제 등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청와대에 보낸 탄원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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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상한 일이다. 서산개척단이 공식 해체됐을 때가 1966년 9월이다. 그 후 박정희 정권은 비극적으로 끝났고 전두환씨와 노태우씨를 거치면서 민주화가 진행됐다.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졌어야 하는 사건이란 뜻이다. 게다가 개척단이 어렵게 일군 간척지가 국유지로 편입되면서 국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이 시작된 것 또한 1990년대 중반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이들의 이 충격적인 이야기는 이렇게 꼭꼭 감춰져 있었을까.

"아직도 할머니들이 신분 노출을 꺼린다. 강제 결혼으로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셨으니까. 인터뷰 설득에 이르기까지 3년이 필요했다. 인터뷰를 하고서도 여전히 두려워하시고 망설이신다. 자제분들이 강제 결혼 사실 등을 알게 됐을 때 받을 충격을 걱정하시는 거다."

- 그래서 피해자들 이야기가 더 세상에 안 알려진 것 같다.
"피해자라 하더라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를 여기 데려다 놓고 잘 먹고 잘 살라는 의도는 좋았다는 식이다. 공무원들이 잘못했다고 판단한다, 아직도. 공무원들이 행정 실수를 해서 우리가 고통받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보니 '나는 이 땅에서 삶을 갱생한 거야'와 같은 생각? '내가 과거에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는? 그런 생각이 무의식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일종의 세뇌가 된 것이다. 그러니 발설하고 싶지 않은 거고,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거다."

- 언론에 제보할 수 없는 사건이란 생각이 든다.
"노출하기 싫으니까. 그럴 수 있다."

- 이 사건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이유를 짚는다면?
"이 사건 배후에는 박정희 정권, 그러니까 미국의 원조 사업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한 정치적 음모가 있다. 이런 음모가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개척단 사업이 부정적 의미로 알려지는 걸 막으려고 한 것 같다. 개척단원들이 문제를 고발하려고 탄원서를 작성하고 그랬는데 막아버렸다는 증언도 있다. 정권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감추려고 했다는 증거가 많이 있다."

"일본 만행과 다르지 않아... 박정희판 위안부 사건"

이조훈 영화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1963년 당시 대한청소년개척단 125쌍 합동결혼식 모습이 담긴 영상물을 보여주며 “결혼식에 참석한 신랑, 신부들이 장례식장도 아니고 전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너무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조훈 영화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1963년 당시 대한청소년개척단 125쌍 합동결혼식 모습이 담긴 영상물을 보여주며 “결혼식에 참석한 신랑, 신부들이 장례식장도 아니고 전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너무 이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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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픈 사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피해를 당했음에도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매우 어려운 사건. 사랑하는 가족 또는 친구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두 이 사건과 엮여 있으니 말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정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다. 이 감독도 동의했다.

"스토리펀딩 4화, '박정희 시대 강제 결혼, 나는 끌려왔다' 편을 SNS에 공유하면서 '박정희판 위안부 사건'이란 글을 달았다. 거의 유사한 거 같다. 국가가 추진하는 사업에 남성들을 강제로 동원했고, 힘들어하고 탈출하려 하자, 그들의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여성을 강제로 납치해서 결혼시켰다. 결혼이란 행사만 공식적으로 있었다 뿐이지, 그 외 내용은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것과 다름없다. 할머니들은 그 얘기를 꺼낼 때마다 눈물을 흘리신다. 지금도 한이 많이 맺혀 계시다."

한이 맺히기는 앞서 소개한 개척단 '관리자(이 감독은 이들을 가해자라고 표현하지 않았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감독은 "박정희 정권과 기획자들이 죽이라고 지시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아무 뒤탈이 없도록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며 "그러니 도망가면 매질하고 그러다 죽어버린 사람들도 있었으니, 비록 직접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았어도 얼마나 큰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겠느냐"고 했다.

이 감독은 이 개척단 관리자의 인터뷰를 담은 티저 영상을 곧 공개할 예정이다. 이 감독은 현재 다큐멘터리 영화 후반부 편집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예정 런닝 타임은 90분에서 100분, 설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얘기를 들으며 해결해야 할 질문 하나가 남아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왜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꼭 극장에 올리고 싶어하나.

-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을 활용해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경로도 중요하다. 중요한데, 하지만 다큐멘터리 주인공이 누구고, 무엇을 원하느냐도 중요한 포인트다. 이 분들은 넷플릭스 모른다. 인터넷도 잘 할 줄 모르고, 스마트폰 말고 폴더폰 쓰는 사람도 많다. <그것이 알고 싶다>인지, <추적 60분>인지, <PD 수첩>인지, 이 분들에게는 그게 중요하지도 않다. 방송에만 나갔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래서 방송사 접촉해봤는데 계속 막히니까, 영화 다큐멘터리 상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주범들'을 쫓고 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대한 인권 유린 사업을 누가 기획했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1960년대 미국은 개발도상국에 국토 개발 사업에 원조를 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양곡 등을 포함해 70조 원 이상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서산 개척단만 있는 게 아니다. 1960년대 말까지 이런 간척사업장, 국토개발사업장이 140개 있다는 걸 공식 문서 통해 확인했다. 프레이저 보고서에 미국 원조사업을 이용해 박정희 정권 초기 부정축재를 했다고 나온다. 어르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의 잘못이었다는 걸 꼭 알려드리고 싶다. 그것이 개척단원 어르신 무의식에 박혀 있는 '내가 잘못'이란 착각을 풀어줄 방법이다."

이 감독이 아직 풀어낼 수 없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많았다. 그는 여전히 '주범들'을 쫓고 있다. 그의 용의선상에 '거물 정치인' 이름이 올라 있는 상태다.


태그:#서산개척단, #1박2일, #이조훈, #블랙딜, #유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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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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