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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에 정답은 없다 (일러스트 : 에이삐)
 행복에 정답은 없다 (일러스트 : 에이삐)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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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흔히 말하는 '집순이'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편하고 좋다. 혼자 미국 드라마를 몰아 보거나,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것이 즐겁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함께 하기도 한다. 난 현재 직업이 없는 백수이며, 내년에 남자친구와 결혼할 예정이다.

간혹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엄마 될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라벨을 붙여 주곤 한다. 어차피 결혼하면 취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남자친구가 경제적인 몫은 해낼 테니, 내가 할 일은 얼른 아이나 낳아 기르면 된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나를 위해 희생한 엄마를 배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범대에 진학해 교사가 된 후 비혼으로 살기를 바라던 엄마는 가족들의 성화에 떠밀려 급하게 결혼해야 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정을 꾸리는 삶에 행복과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포기해야 했던 다른 삶을 늘 동경했다.

두 아이의 엄마, 누군가의 남편이 아닌 오로지 한 여자, 개인의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삶을. 엄마는 내가 그런 삶을 대신 살아주기를 바랐다. 나 역시 TV나 영화에서 보던 멋진 여성들의 삶을 동경했다. 그래서 결혼과 출산은 내가 상상하는 어른의 모습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학 생활의 절반을 마무리할 때쯤, 고백을 받았다. 같은 동아리 선배였다. 나 역시도 호감이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사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응원해 주는 친구이자, 선후배이자, 연인이 됐다.

내가 여러 번 취업에 실패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방황하는 동안, 남자친구는 취업에 성공해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서로의 부모님께 인사도 드렸다.

자연스럽게 '얼른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라'는 주변의 간섭도 들어야 했다. 만약 내가 취업에 성공해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다면, 우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남자친구 역시 이따금 '우리가 아이를 낳는다면 어떤 부모가 될까?'라는 이야기를 했으니까. 나 역시도 결혼을 한다면 임신과 출산은 필수불가결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10년차 커플이 되자, 어른들은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권유에서 '얼른 결혼하라'는 강요로 자세를 바꾸셨다. 아직 확실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뭘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나는 결혼이 코앞에 다가오자 너무나 두려웠다. 먼저 결혼해서 엄마가 된 동기들이 잘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해 오롯이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는 페이스북 글들을 볼 때마다 '곧 내가 저 위치에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몸서리쳐졌다. 한국의 많은 여성이 그렇듯,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만 남을 게 뻔히 보였다.

대학생에서 취업 준비생, 다시 수년간 직장인으로 살았던 남자친구의 생각은 어느새 변해있었다. 설령 우리가 맞벌이를 한다 하더라도 아이를 키우기에는 벅차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달에 짧으면 사흘, 길면 이주일 정도는 야근을 하는 남자친구는 그나마 쉴 수 있는 주말을 육아로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혹시나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쉽게 이직을 하기 위해서라도 아이가 없는 게 낫다고 판단을 내렸다.

부모+자녀가 정답은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하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동의했다. 주변 사람들과 부모님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의 행복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돼 준다면, 둘이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계속 '조금 더 방황해도 괜찮다'고 응원해 주고 있다.

내년이면 부부가 될 우리는, 5년 후, 10년 후 어떤 생활을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함께 취미생활을 하고, 여행을 가는 모습들을 상상해 본다. 그 속에 아이는 없다. 우리의 결정을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전부 알리지는 않았다. 우리가 아이를 '포기'한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비정상적인 형태의 가정을 꾸리는 일이라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결혼이 곧 출산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다양한 형태로 인연을 만나 여러 가지 모습의 커플이 되듯, 가족이라는 것 역시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뿐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모습을 특정 세대의 이기심, 혹은 특정 세대가 겪어내야 할 고통으로 묶어 버린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게 마땅한 이 시대에 꼭 특정 세대를 한꺼번에 낙인찍어야만 할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지원을 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청년들에게 같은 방식의 삶, 그러니까 출산은 곧 의무라는 식의 강요를 하는 것은 엄연한 폭력이다. 누구도 그런 폭력을 겪어야 할 이유도 의무도 없다. 산아제한정책이 당연시되던 1970년대식 사고방식은 이제 버릴 때가 한참 지났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갓 태어난 아기 사진들을 종종 본다. 대학 동기와 선배들의 계정에서 올라온 사진들이다. TV를 보면 아이를 둘은 낳으라고 권하는 공익광고가 나온다. 그 광고가 끝나면 귀여운 아이들이 값비싼 옷을 입고 일반 가정은 상상도 못 할 체험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있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내가 큰 죄를 짓고 있다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가끔'고령화 가족', '인구절벽'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뉴스들을 보다가 우리 커플이 훗날 국기를 문란하게 만든 반역자로 체포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해 본다.

완벽한 가정의 형태가 꼭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복과 희생을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정을 꾸리고, 행복을 찾고 싶다. 그렇기에 현재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른 거라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청년네트워크 3기의 '글쓰기모임' 회원인 민트초코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이 기사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홈페이지에 중복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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