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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아래>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로, 가장 낮은 곳에서 진실을 밝히고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 기자 말

2001년 말, 한국 사회에서 오태양 씨가 최초로 공개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이는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개인의 실천을 넘어 사회적 운동으로서 시작된 계기가 되었고, 2002년 2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가 결성되었다. 1년 뒤엔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고 병역거부 운동을 이어나가는 단체 '전쟁없는세상'이 만들어졌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UN 회원국 중 징병제 국가로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36개국뿐이며, 2000년 이후로 매년 수백 명의 병역거부자가 처벌받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현재 병역 거부에 대한 무죄 판결은 계속 늘고 있으며, 징병제 폐지와 대체복무제 전면 도입에 관한 긍정적인 논의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한국 사회를 조금씩 바꾸어나가고 있는 병역거부 운동의 중심엔 항상 '전쟁없는세상'이 있었다. 병역거부는 평화운동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평화운동가가 생각하는 베트남 전쟁과 '진정한 평화'란 어떤 것일까. '전쟁없는세상'에서 병역거부 캠페인을 담당하는 이용석 활동가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쟁없는세상'과 병역거부

-'전쟁없는세상'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전쟁없는세상은 병역을 거부할 권리와 대체복무제 도입을 외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후 더 다양하고 보편적인 평화 의제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간 단체예요. 병역거부 운동의 첫 시작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라는, 병역거부자들과 활동가들의 비공개 모임이었습니다. 타국의 병역거부 사례도 찾아보고 평화에 대한 논의들을 하다가, 병역을 거부한 우리가 직접 병역거부를 공개적인 사회 운동으로서 확장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껴 공개 단체인 '전쟁없는세상'을 결성하게 됐죠.

그런데 활동을 하게 되면서 단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어요. 병역을 거부해도 감옥에 끌려가지 않도록 하는 인권의 측면뿐 아니라, 우리가 군대를 거부하는 것이 평화와 관련해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많아지게 됐죠. 이런 고민을 통해 보편적인 평화 의제로 '전쟁없는세상'의 활동 영역을 넓혔고,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 등에도 함께했어요. 요즘은 전쟁 위기를 의도적이고 정치적으로 조장해 무기를 팔고 이득을 취하는 군수 산업체 등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에 맞서는 무기거래 감시 운동'도 펼치고 있고요. 이뿐 아니라 다른 평화 관련 이슈들이 있을 때도 여력이 되는대로 연대하고 있습니다.

단체 내부의 민주주의와 사회 운동의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지향하는 '비폭력 트레이닝'이라는 활동도 있습니다. 병역거부 운동과 대체복무제 도입 운동에 10년 넘게 몰두하다 보니 점차 활동가들이 지치고, 마음이 상한 적도 많았어요. 외적인 운동의 성과에만 힘쓰다 보니 단체 내부의 부족한 점들에 대한 성찰은 다소 미흡했던 거죠. 그래서 조직 내부의 운영부터 민주적이고 평화로워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많은 활동가들이 지쳐가고 있는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외국에서 비폭력 트레이닝이라는 것을 배워 이를 '전쟁없는세상' 내부에 도입했어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들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뿐 아니라 많은 고위 관료들이 대체복무제가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만 있고, 정작 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는 게 문제예요. 아직 실질적인 변화는 없죠. 다만 사법부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데, 2004년에 처음으로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난 이후로 무죄 판결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올해엔 벌써 서른 건이 넘는 무죄 판결이 있었죠.

예전에는 무죄를 선고해도 다시 입영 영장이 나오니까 현실적으로 병역을 완전히 거부하긴 힘들 것이라는 타협적인 판단으로 유죄 판결을 많이 내렸다면, 이젠 그래도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징병제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일종의 의사 표현을 하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변화라고 봅니다.

물론 대체복무제가 실제로 도입되어도 초창기엔 많이 미흡한 형태일 가능성이 커요. 반대하는 이들과 제도적 도입의 과정에 있어서 정치적 타협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여전히 반인권적인 측면이 남아있을 테니 그런 부분도 해결해야 할 것이고요."

-병역거부는 평화운동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을까요?
"병역거부는 전쟁에 일절 반대하는 '시민의 불복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병역거부를 하는 이유는 다양해요. 예컨대 최근에 출소한 어떤 분은 자신의 형이 군대에서 큰 장애를 입었는데 군 당국이 책임을 지지 않아서 병역을 거부했어요. '전쟁없는세상'에서는 전쟁에 저항하는 운동으로서 사회적인 의미를 담은 병역거부를 하고 있어요. '전쟁없는세상'은 군수산업에 대한 감시와 반대 활동 또한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징병제 문제를 해결하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더라도, 저희가 할 일은 무궁무진할 거예요. 대체복무제를 인권적인 측면에서 더욱더 섬세하게 개선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고, 군수산업과 무기거래에 대한 반대 행동을 계속 이어나가야겠죠."

2017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환영리셉션 행사장 앞에서 직접행동을 펼치는 평화활동가들. ‘아덱스 저항행동’은 무기박람회의 본질을 알리고 이에 반대하기 위한 캠페인이다. 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해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참여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피스모모, 한베평화재단 등의 시민단체와 많은 평화활동가가 ‘아덱스 저항행동’에 함께하고 있다.
▲ 2017 아덱스 저항행동. 2017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환영리셉션 행사장 앞에서 직접행동을 펼치는 평화활동가들. ‘아덱스 저항행동’은 무기박람회의 본질을 알리고 이에 반대하기 위한 캠페인이다. 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해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참여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피스모모, 한베평화재단 등의 시민단체와 많은 평화활동가가 ‘아덱스 저항행동’에 함께하고 있다.
ⓒ 아덱스 저항행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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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으로부터 제 삶을 최대한 떨어뜨려 놓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병역거부라는 길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병역거부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겪으셨나요?
"대부분의 징집 대상 남성들이 그렇듯, 저도 그저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20대 초반이었을 시절엔 병역거부라는 말 자체가 없었고, 따라서 병역거부에 대한 생각조차 전혀 없었죠. 2001년에 오태양 씨가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일이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논쟁의 계기가 되었는데, 저는 이때 병역거부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군대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전까지는 상상조차 못 했으니까요.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위기가 고조되는 정세 속에서, 제 주변에서도 평화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생겼어요. 그렇게 병역거부자들을 만나보고 이와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차츰 병역거부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된 일은 없었지만, 평화운동에 몸담게 되면서 군대가 얼마나 폭력적인 공간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군대에 가야 할 이유는 점점 없어지게 되는 동시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점점 늘어났어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하던 도중, 2006년에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갔다 오게 되었죠. 그 당시엔 군대에 간다는 것, 즉 내가 누군가에게 맞을 수도 있으면서 누군가를 때려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두려웠어요. 폭력으로부터 제 삶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른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병역을 거부했던 이유에서 당시의 시대상이 많이 드러나요. 2005년 초중반의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이라크 전쟁 파병 반대를 병역거부의 이유로 들었죠. 2006년 이후의 병역거부자들은 평택 대추리에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동원된 군대 이야기를 많이 했고, 2009년 이후의 병역거부자들은 용산 참사 때의 경찰 진압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자신이 그 경찰, 그 군인이 될 수도 있었던 거니까요."

-병역거부라는 선택이 개인에게, 그리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에 어떠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평화운동을 하던 도중에 회사를 다니면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그때 병역거부 경험이 많은 힘이 되었어요. 한 마디로 "감옥까지 갔다 왔는데 뭘 못하겠어?"라는 자신감이 생긴 거죠. 입영 영장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살아가면서 개인의 양심과 현실의 조건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게 되는 일이 많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병역거부라는 선택을 했다는 걸 스스로 계속 떠올리게 돼요. 물론 그런 상황에서 현실적인 타협을 택할 때도 있지만, 그러한 고민을 이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병역거부가 개인의 삶에 분명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병역거부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가 탈 군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 F. 케네디가 남긴 말 중에 "전쟁은 오늘날 전사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존중과 명예를 병역거부자들이 받게 될 때 끝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바로 병역거부의 사회적인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독재 국가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복종이나 협조, 혹은 묵인이 있지 않으면 권력을 행사할 수 없어요. 전쟁 또한 같다고 생각해요. 전쟁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전쟁을 수행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어지겠죠.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병역거부를 했는데, 그것이 병역 수급 자체에 아주 큰 타격을 줘서 전쟁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들었거든요. 물론 한명 한명의 행동이 끼친 영향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 작은 개개인이 모이면 절대로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또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차츰 옆으로 퍼지기 마련이잖아요. 예를 들어 병역을 거부한 친구의 후원회장을 맡아준 분이 계셨어요. 그분은 이미 군대에 갔다 오셨지만,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셨죠. 이렇게 병역거부라는 개인의 선택과 평화를 향한 신념은, 더디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퍼져나간다고 봐요. 또 그 개인들이 모이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가 점점 약화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의 '탈영'

-베트남 전쟁 시기를 포함해 과거에는 병역거부가 '탈영'이라고 불렸는데, 그 당시의 '탈영'과 현재의 병역거부는 어떻게 다를까요?
"저는 과거의 탈영과 현재의 사회 운동으로서의 의미를 담은 병역거부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평화주의자는 숭고한 신념에 의해 병역을 거부하지만, 어떤 사람은 죽거나 다치기 싫어서 '탈영'을 하죠. 저는 그것이 자신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반전운동으로서의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병역거부라고 천명하지 않아도요.

베트남전 당시 미국에서는 전쟁 반대의 의미를 담은 병역거부 운동이 대중적으로 일어났고, 한국군 내에서도 병역거부가 분명히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아쉽게도 병역거부가 사회적 운동으로까지는 확장되지 못했지만, 미국에서는 유명 복싱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병역을 거부해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하고 재판까지 받는 등 병역거부 운동이 수면 위로 떠 올랐죠. 당시 미군은 일본을 거쳐서 베트남으로 갔는데, 일본의 평화운동가 오다 마코토가 속한 '베헤이렌'이라는 평화단체가 그렇게 탈영한 미군 병사들을 안전한 제3국으로 망명시키는 활동을 했었죠. 그 탈영병 중에는 한국계 미군 병사도 있었고, 한국군 병사도 있었다고 해요."

"폭력은 권력에 의해 작동한다"

-앞서 말씀하신 일본의 평화운동가 오다 마코토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가해자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한 한국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사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무 자르듯 분리된다고 보긴 힘들어요. 특히 폭력에 의해 일어난 사건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민간인을 학살한 군인은 가해자이면서도 사회와 권력 구조에 의한 피해자예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 군인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정 집단이 유독 전쟁에 내몰린 것은 분명히 피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의 사상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하였을 여지는 있기에, 그들이 가해자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그 가해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묻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 폭력에 대해 근원적이지 않은 책임을 진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오히려 폭력을 왜곡하고 숨기는 일인 거죠.

오다 마코토가 말했듯, 우리는 베트남전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군인들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임을 인정하고, 다각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며 그 각각에 대한 조치들을 모두 취해야 한다고 봐요. 가해자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국가폭력의 피해자로서 국가의 보상 또한 필요하겠죠. 폭력이 어떠한 관계 속에서 어떤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고 또 피해자로 만드는지, 그 과정을 종합적으로 바라봐야만 이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거예요."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에 의해 죽은 미군과 한국군, 민간인도 많았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폭력을 동원해 폭력에 저항하는 '대항폭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지금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당시 남, 북베트남 모두 총을 들고 싸웠고 전쟁범죄를 저질렀을 거예요. 그렇지만 북베트남이 미군, 한국군과 같은 폭력을 저지른 것이라는 주장에는 반대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부 독립운동가들이 전쟁범죄에 준하는 활동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일제의 폭력과 같은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폭력에도 권력에 따른 층위가 나뉠 수밖에 없고, 그것들을 모두 똑같다고 하는 것은 폭력이 권력에 의해 작동한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죠.

사회운동에서도 공권력에 대한 '대항폭력'이 저항의 수단으로써 많이 사용되는데, 폭력이 동원되었을 때 과연 사회운동의 궁극적 목표가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해요. 제3세계의 독립운동가들을 예로 들자면, 독립이 이루어지고 정치적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뒤에 독립운동가가 독재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북한의 김일성도 한때는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지만 해방 이후엔 독재자가 되어 민중을 탄압했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많은 독립운동가들도 독립이 실현된 이후 그 타락의 과정을 거쳤어요.

저는 폭력적 수단을 동원한 독립운동이 그런 현상들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폭력에 의존한 독립운동은 어떤 면에서는 빼앗긴 권력을 되찾아오는데 수월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빼앗아온 권력을 재구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폭력이 좋은 수단이 되지는 못했던 거예요.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던 사회에서는 결국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권력을 쥐게 되겠죠. 물론 약자가 권력에 맞서 총을 들면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우리가 거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폭력과 비폭력의 기준을 도덕적인 잣대로 정하기보다는, 어떤 것이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효과적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이에 대한 고민이 없는 '대항폭력'은 예를 들어, 일단 시위대 내부를 '신체가 건강한 남성'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어버리는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어요. 당장 눈앞의 목표를 해결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려면 대항하는 방법 또한 민주적일 필요가 있는 거죠."

"평화란 저항이다"

-현재 한국과 동아시아의 정세는 평화롭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평화운동가로서 지금의 상황에 대한 판단과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지금의 동아시아는 평화의 반대편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물론 6·25 전쟁이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으니 우리는 늘 전쟁의 위기 속에 있었지만, 지금은 특히나 전쟁 위기가 고조되어 있어요.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엔 사드 배치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했지만 최근 전쟁위기가 고조되자 결국 배치를 강행했는데, 이건 대통령 개인의 신념에 의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위기를 우려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서 노골적으로 무기를 더 팔 것을 밝혔듯,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군비 증강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힘을 얻게 되는데 그런 것이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봐요. 평화를 위해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는 말은 북한 정권의 논리와 다를 것이 없다고도 생각해요. 북한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이 한반도에 무기를 배치하는 것 자체가 평화를 우리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으로 생각해요. 군사적인 경쟁이 아닌 군축과 대화가 평화로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 정부가 그런 길로 갈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에게 진정한 평화를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전쟁 없는 세상이라는 것은 단지 전쟁을 하지 않는 수동적 상태는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전쟁 없는 세상이란 무엇이고, 평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전쟁 없는 세상'이 상태가 아닌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평화의 상태를 상정하는 순간 숨어있는 많은 모순이 가려질 것이고, 이것도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한 것이 되겠죠. 현실에서 완벽한 평화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전쟁과 폭력을 거부하고 이에 저항하는 지속적인 과정 자체가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전쟁 없는 세상'은 우리가 결국 도달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해나가는 과정이고, 그 노력이 저희에게는 전쟁과 폭력에 대한 저항과 불복종인 거죠.

우리를 평화롭지 못하도록 하는 권력이나 폭력에 계속해서 저항해야만 평화로 다가갈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저항이 평화라고 볼 수는 없죠. 평화적인 수단과 방식, 평화적인 목표를 위한 저항이 평화라고 생각해요."

‘평화란 (평화적인 수단과 방식을 통한) 저항이다’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있는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활동가.
▲ '평화란 저항이다' ‘평화란 (평화적인 수단과 방식을 통한) 저항이다’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있는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활동가.
ⓒ 연꽃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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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연꽃아래,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평화, #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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