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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지도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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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환율이 1100원 선 아래로 내려갔다.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3.0%로 상향하고, 뒤이어 IMF도 우리 경제의 올해 성장률을 3.2%로 보고 있다. 북핵 리스크는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어서, 투자자들의 마음속을 떠난 듯하다. 원화 강세가 어디까지 갈지, 한 번 생각해 보자.

환율은 두 개의 시장에서 결정된다. 실물시장에서 수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외화가 넘쳐나서 외환의 값, 즉 환율이 떨어진다. 달러가 싸지니 원화는 비싸진다. 또 하나의 시장인 금융시장을 보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투자금액이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나가는 투자금액보다 크게 되면 역시 원화 강세가 발생한다. 금융시장에서 돈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국가간 금리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 금리가 높은 쪽으로 돈이 이동하는 것이다. 물론, 신용 위험, 즉 돈을 떼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신용도가 낮은 나라는 위험을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의 추가금리가 있어야 외국투자가 유입된다.

금융시장에서는 실물시장 결제액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차원으로 큰 돈이 움직인다. 그래서 대개 금융시장 조건이 실물시장 조건에 비해 환율에 대해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생활과 직접 연관이 있는 재화들은 실물시장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실물시장 균형이 장기적인 환율을 결정한다. 즉, 환율은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 균형, 장기적으로는 실물시장 균형을 반영한다.

문제는 실물시장과 금융시장이 반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물시장에서 예컨대 수출초과로 경상흑자가 발생한 경우를 보자.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외화 과잉 상태이므로, 그것을 외국에 투자해야 균형이 달성된다. 즉 자본수지 적자가 발생한다. 한쪽 시장에서 원화 강세 요인이 발생하면, 다른 시장에서는 원화 약세 요인이 발생한다. 그것이 환율의 자연적 균형 기제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등장했다. 게다가 그 나라는 1970년대에 금태환 중지 선언을 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예전에는 달러를 미국에 가져가면 금으로 바꾸어 주었는데, 더 이상은 그런 교환을 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현재 세계 외환시장은 미국의 신용에 기반하여 움직이는, 경제학자 대부분이 언제 파탄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설명하는, 그런 체제다.

여기에서 미국 달러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미국 달러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므로, 미국은 충분한 달러를 공급해서 유동성을 확보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국이 달러를 공급한다는 것은, 미국이 달러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윤전기에서 돈을 찍어내서 그걸 그냥 쓴다는 말이다. 짐바브웨가 미국을 따라 했다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나라가 휘청거린 경험이 있다. 미국이라고, 돈을 마구 찍어내서 쓰는 행위가 정당화될 이유는 사실 별로 없다. 미국이 찍어낸 달러를 가지고 언젠가 미국에 가면 미국이 물건으로 바꿔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달러를 받는 것인데, 미국이 망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현재의 자유 변동환율제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이다.

미국 달러의 딜레마가 현재의 세계 외환시장의 딜레마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외상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실물시장과 금융시장 사이에서 자동적으로 맞추어져야 하는 환율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다. 파생 금융상품의 등장과 IT 기술의 발전 덕에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 세계 자본시장의 변동성은 환율 시장의 불안정성을 더욱 증가시켰다.

앞으로 원화 환율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자. 일본은 아베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앞으로도 약한 엔화를 추구할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로 무역적자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고, 이것이 약달러로 나타나고 있다. 금과 더불어 달러의 움직임에 반대로 움직이는 실물 자산, 석유의 가격도 오름세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도 원화 강세를 막을 요인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가간 금리 차이를 생각해 보자. 아베의 일본은 앞으로도 양적 완화를 지속할 것이기 때문에 금리가 오르지 않을 것이다. 신임 연준 의장인 제롬 파월의 비둘기파적 성향을 볼 때, 미국의 금리 인상 역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은 미국과의 금리 역전을 바라지 않을 것이므로 미국의 금리 인상 수준에 맞추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금리에 의해 결정되는 금융시장 균형을 볼 때에도 원화는 최소한 엔화에 대해서 강세 기조를 이어갈 것이다.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가 원화 환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환율은 기본적으로 실물시장, 즉 실물경제를 반영한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은 어떨 것인가 하는 질문도 필요하다.

올해의 한국 경제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반도체가 하드캐리했다고 보아도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는 어떨까? 전문가들의 상당수는 반도체 빅사이클이 과수요 단계로 돌입, 향후 몇 년간은 현재의 추세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한다.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4차 산업 혁명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를 생각해 보면, 이 추측은 설득력이 있다.

중국이 막대한 투자를 통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과수요가 해소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현재 증산을 통해 후발주자에 치킨 게임을 걸고 있으며, 둘째, 중국의 설비 증가를 고려해도 공급을 크게 앞서는 수요의 폭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연결되는 모든 물건에 반도체가 들어가는 것이 사물인터넷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원화 강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및 일본 정부가 달러와 엔화의 약세 기조를 유지할 것이고, 한국경제의 견고한 성장세 역시 몇 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베와 트럼프의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반도체 빅사이클의 이번 상승파가 향후 몇 년간은 이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기 때문이다. 북핵 변수, 유가의 움직임, 보호무역주의 대두 등의 변수가 있지만, 큰 흐름은 원화 강세다.


태그:#원화 강세, #달러 약세, #엔화 약세, #반도체 빅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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