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들은 왜 죽어서도 동쪽을 향해 묻힐까?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켁에서 20키로쯤 떨어진 곳에 고려인들의 무덤이 있다.
'쵸나릭"이라 불리는 이곳 공동묘지에는 이슬람의 키르기즈인들과  러시아정교회를 믿는 러시아인들, 그리고, 러시아의 원동에서 강제이주 당해 온 고려인들의 무덤이 있다.


이 무덤들의 특이한 것은 무슬림들은 '알라'신이 있다는 서쪽을 향해 묘비를 쓰고,  러시아인들은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유독 고려인들의 묘비는 한결같이 동녁을 향하고 있다.

죽어서나마 아버지, 할아버지의 나라인 원동을 그리워 한 애타는 심정에서 이다.
고려인들 묘역이 동녘을 향하고 있는 곳은 이곳 키르기스스탄뿐만 아니라, 우즈벡이나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묘역도 마찬가지였다.
어설픈 한글로 써 내려간 묘비명 '유가이 아나톨리'  '고가이 알렉산드로'등등...!
죽어서도 올바른 성과 이름을 갖지 못한 이들만의 비애를 누가 알까?
"고가이" "노가이" "유가이" "허가이"......
원래 이런  성들은 고씨,노씨.유씨.허씨등으로 불러야 하는데 러시아 정부기관에서 등록을 하면서 "성이 뭐냐?"고 물을 때 '고가입니다." "노가입니다"'라고 답했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함경도 방언의 연음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고가이, 노가이"등으로 이렇게 변질된 것 이라고 한다.

죽어서도 이들은 묘비에 그대로 "허가이 0000"라고 새겨놓았다..
대부분 고려인 강제 이주 1세대들이 묻혀있는 이곳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없이 그렇게 떠 밀려 살아 온 서러운 1세대들의 마지막 안착지이다.

고려인들은 심정적으로 마음의 고향인 원동.. 즉 연해주라 불리는 러시아 영토인  지금의 블라디보스톡 인 연해주지역이다.  대개의 고려인들은 아버지의 나라 ,할아버지의 나라인 러시아의 원동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러시아로 이주하는 과정이란 쉽지가 않다. 
항공료 또는 열차비용도 만만치 않거니와 지금 당장 움직일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이며 국적문제도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대개의 경우, 친인척이 있는 중앙아시아의 가까운 곳으로 점점 다가와 다시 재도약의 기회를 삼는 유입이 만연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이주조건이 여의치 않으므로 생활환경과 거주국가의 불리한 처우에도 부득히 남아 있을수 밖에 없는 형편이지만....이들은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로 돌아갈 것이다.


장군의 무덤도 동녁으로...
역시 필자랑 교분이 두터운 고려인출신으로서 키르기스스탄 국방부차관의 자리에 까지 올랐던 '유가이 보리스"씨가 몇해전 갑자기  운명을 달리했다.
그가 장군으로 첫 진급을 했을때 가장 먼저 달려 간곳이 그의 아버지가 묻혀있는 '쵸나릭" 공동묘역이라며 그곳을 다녀와서 필자에게 "죽어서도 조국이 없다는 게 가슴아프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동녘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자기 부친의 비석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도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의 고향 원동을 그리워하며 러시아어로 된 묘비명에 "유가이 보리스"라는 이름으로 동녘을 향해 누워 있다.

고려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장례다.
고려인의 장례는 러시아 정교식도, 이슬람식도, 순수 한국식도 아닌 독톡하게 혼합된 형식을 띠고 있다.
묘비에 사진을 조각해 넣는 러시아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거의 사라진 3년상을 지금까지도 지내고 있다.
제사는 4월 한식과 가을 추석 일년에 두 번 지내며 보통 상을 당하고 3년은 기일에 제사지낸다.
고려인들의 가장 큰 명절은 설날과 추석,한식과 단오로 몇 대가 비록 조국을 떠나 있어도 말과 글은 몰라도 그들의 정체성은 어쩔수 없는 한국인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