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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높은 빌딩 옥상쯤인 것 같다. 높은 담 그 너머로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걸 보면. 여자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두커니 혼자 서 있는 뒷모습을 보면. 빌딩이 아니고 옥탑방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벼운 옷차림에, 심지어 '쪼리'를 신고 있는 걸 보면. 커피라도 한잔하고 있는 것 같다. 에코백을 걸친 한쪽 팔이 계속 접혀 있는 걸 보면.

무엇보다 언젠가 내 모습을 누가 몰래 찍어준 것도 같고, 누군가 저러고 있는 모습을 내가 찍은 것 같기도 한 평범한 사진 한 장. 한쪽에 '←TO'라고 쓰인 표지판도 눈에 띈다. 그제야 이 여자의 마음이 읽힌다. 이 이미지가 전하려는 말도 들린다.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혹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현남 오빠에게> 책 표지 이야기다.

 조남주, 최은영 외 <현남 오빠에게>
 조남주, 최은영 외 <현남 오빠에게>
ⓒ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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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정체성은 분명하다. 페미니즘 소설. 출판사 다산책방 소개 글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글을 쓰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30, 40대 작가들이 국내 최초로 '페미니즘'이라는 테마 아래 발표한 소설집'이란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를 필두로, <쇼코의 미소> 최은영,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김이설, <지극히 내성적인 사람> 최정화, <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국경 시장> 김성중 작가의 작품 7편을 모았다. 소설마다 실린 작가 노트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책의 발문을 쓴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저자 이민경씨는 말한다.

"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나란한 방향으로 놓여 있기만 해도 마음을 놓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편집자는 좌불안석이었을 것 같다. 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묶어 놓은 책의 표지를 무엇으로 해야 하나, 머리 터지게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산책방 정민교 편집자에게 물었다.

- 소설 <현남 오빠에게>가 페미니즘 단편 소설 7편을 묶은 책이어서 표지 콘셉트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페미니즘은 사회에 만연한 여성을 향한 차별을 이야기하는데, 그 수많은 이야기를 단지 '담론'과 '언어'가 아니라 '이야기'로 어떻게 독자들의 가슴에 남기면서 변화로 이끌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게 편집자로서 이 소설 기획의 시작이었습니다. 일곱 명의 작가님들도 같은 문제의식으로 청탁을 수락하셨고요.

디자이너님 또한 페미니즘은 '이슈'가 아닌 '일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다소 추상적인 표현이긴 하나) 일상적 사진이 표지에 쓰이면 좋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성, 자연스러운 빛, 일상적인 공간, 차림새나 포즈 등 평범한 풍경이지만 그 주인공은 나일 수도, 주변인 일 수도 있는 그런 장면이 담긴 사진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표지 속 저 사진을 발견하셨고, 여성의 뒷모습에서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하셨습니다. 뭔가를 다짐한다고 볼 수도 있고, 망설이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지쳐 있거나 어떤 생각에 잠겨있다고 볼 수도 있고 해석은 자유입니다.

'옥상'이라는 공간의 해방감과 더불어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사진에서 살짝 빈티지한 느낌을 갖게 하면서 트렌디한 감성을 담아 20, 30대의 젊은 층 독자들이 무엇보다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지난 13일 열린 <현남 오빠에게> 출판기념회 현장.
 지난 13일 열린 <현남 오빠에게> 출판기념회 현장
ⓒ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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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를 자세히 보면 오른쪽에 잘려나간 영문 글자가 눈에 띈다. 원래 그런 이미지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잘라낸 것인지 궁금하다.
"원본 사진에는 TO 다음에 목적지가 영문으로 쓰여 있는데요. 보이지 않게 의도적으로 잘랐습니다. 화살표와 TO까지만 나오도록 하여 다음 방향에의 궁금증을 주려는 의도였습니다. (페미니즘을 화두로)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은 어디일까, 라는 생각을 각자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 소설 중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지만, 강현남의 현남은 한남의 다른 표현인가요?
"'현남'은 소설 속에서 해랑 강씨 성의 남자주인공 '강현남'의 이름입니다. 서른이 된 주인공 여성 '나'가 스무 살 때 대학에서 처음 만나 사귀어온 남자친구의 이름이 바로 '강현남'입니다. 현남을 시쳇말로 '한남'으로 생각하시는 독자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네이버 사전연재를 보신 분들에게는 더 그렇게 인식되는 것 같은데요. 사회 분위기상 <82년생 김지영> 세대에 그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 같습니다만, 꼭 그렇게 읽히기를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 이 표지로 독자들에게 기대하는 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뭘까요?
"페미니즘을 주제로 동시대의 여성 소설가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낸 소설집이기 때문에, 그간 나온 페미니즘 인문서들과는 다른 느낌의 책으로 독자들이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나의 모습이 표지 속에 있는 것처럼 눈길을 사로잡아 책을 집어 들게 되고, 그럼으로써 수많은 공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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