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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희생 소년 위령제, 위령무
 선감학원 희생 소년 위령제, 위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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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희생 소년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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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을 하는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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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유해 발굴된 곳에 꽃을 놓고 있는 허일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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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에 절을 하는 선감학원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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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소년 강제수용소 선감학원 희생자 유해 발굴을 위한 사전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유해 존재 여부 등을 알아보기 위한 GPR(Ground Penetrating Radar, 지표투과 레이더)을 진행했다. 발굴 장소는, 희생자 유해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선감묘역(선감도 배꼽산)이다.

발굴 작업은, (사)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맡았다. 실질적인 발굴 책임자는 박선주 충북대학교 명예교수다. 박 교수는 세월호 희생자 유해 감식, 한국전쟁 희생자 유해 발굴, 동학농민혁명 희생자 유해 발굴 등 굵직한 발굴 작업을 직접 주도하거나 참여했던 유해 발굴·감식 권위자다.

8일 오전에는 희생자 영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가 선감묘역에서 열렸다. 발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게 해 달라는 기원을 담은 위령제다. 위령제에, 선감학원 피해자와 (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소속 연구원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굿패의 길놀이가 위령제 문을 열었다. 곧이어 위령무가 펼쳐졌고, 농부 시인 홍일선이 지어 위령비에 새긴 시 '한 역사'가 낭독됐다.

한 역사

어둠 속 섬에서
동트는 새벽이 있었으련만
아주 오랜 날 유폐된 섬 속에서
소년들이 있어야만 했으니
저물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이 정녕 역사일진대
삼가 오늘 무릎 꿇어
그대들 이름 호명 하나니
선감도 소년들이시여
어머니 기다리시는 집으로
밀물 치듯 어희 돌아들 가소서
이 비루한 역사 용서하소서

선감묘역은, 8~9세 어린 나이에 모포를 물어뜯고 세상을 떠난 고 허일동씨 유해가 지난 2006년 발굴되면서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이 유해를 발굴한 이가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다. 무덤에서 나온 꽃신은 선감박물관에 전시됐고, 유해는 고인과 함께 선감학원에 끌려갔던 쌍둥이 동생인 허일용씨가 집에 보관하고 있다.

위령제에 참여한 허씨는 형님 유해가 발굴된 자리에 국화꽃을 얹어 놓는 것으로 쌍둥이 형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선감학원은 일제 강점기인 1942년부터 1982년까지 안산 선감도에 있었던 소년 강제 수용소다. 일제 총독부가 운영하던 것을 해방 이후 경기도가 맡아서 운영했다. 선감학원에서는 강제노역, 폭행, 굶주림 같은 인권유린이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망치다 바다에 빠져 죽거나 병에 걸려 죽고, 맞아 죽은 소년이 부지기수라는 게 피해자들 증언이다.

추모시 낭송
 추모시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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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R 작업
 GPR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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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선감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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