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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흐르는 길은 너릿재터널을 지나 광주와 화순을 잇는 국도 22호선 화보로이다. 그 곁에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 길이 있고, 굽이쳐 올라와 너릿재 옛길이 된다.
▲ 너릿재 정상에서 보이는 화순읍 가운데 흐르는 길은 너릿재터널을 지나 광주와 화순을 잇는 국도 22호선 화보로이다. 그 곁에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 길이 있고, 굽이쳐 올라와 너릿재 옛길이 된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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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을 다룬 영화가 몇 편 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영화를 꼽으라면 <화려한 휴가>와 <26년>, 그리고 올해 개봉한 <택시운전사>를 들 수 있다. 80년 광주를 담는 영화들이 공통으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은 '터널' 내지 '고개'가 등장하는 것이다. 고립된 섬, 광주와 외부를 이어 줄 통로이자 갈망이 그 지점에 담겨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근래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제 존재가 확인되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관심을 가진 대목이 하나 있다. 김사복과 한츠 피터는 어떤 경로로 탈출했을까 하는 부분이다. 광주의 실상을 외부로 알린 유일한 메신저는 이들이었다. 알려진 것처럼 80년 이후 김사복은 실재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고 피터는 그 길을 재생해낼 만한 지식과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산길을 통해 고개를 넘어 주암 방면을 통해 순천으로 탈출한 것으로 대략 그리고 있다.

지도를 펴놓고 보자면 광주에서 남쪽을 향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차가 넘을 수 있는 고개라면 광주 동구 선교동과 전남 화순군 화순읍을 잇는 너릿재 아니면 무등산을 돌아 담양군 남면을 통과하는 유둔재를 비롯한 담양 방면의 고개가 후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사복이 증언하지 않았으니 이를 고증할 길은 없다. 위로 장성 방향이나 멀리 나주를 돌아가는 길도 있겠으나 나주 방향은 목포로 이어지는 길목인지라 계엄군의 통제가 심했다고 한다.

너릿재를 등장시키는 이유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는 딸만은 살아서 야만을 넘어서는 훗날을 이어가길 원했던 아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딸 신애와 동반자로서 민우를 내보낸다. 민우가 도청에 남아있는 흥수와 시민군을 두고 떠날 수 없어 신애와 갈라서는 장면에 등장하는 터널이 있다. 이 터널이 바로 광주와 화순을 넘겨주는 요충지이자 길목으로써 염두에 두고 영화 속에 담고 있는 너릿재 터널로 알려져 있다.

너릿재를 모티브로 담았지만, 이 장면의 실제 촬영지는 전북 진안과 완주를 이어주는 모래재 터널이었다.

박흥수 사장으로부터 신애를 부탁받은 민우는 이 터널에서 신애를 보내려 하지만 신애는 차를 몰고 돌아와 가두에서 방송을 하며 '우리를 잊지말아주세요'라고 외치고 다닌다. 이 장면의 실제 촬영지는 전북 진안의 모래재이다. 사진은 영화에서 캡춰.
▲ 영화 '화려한 휴가'속 너릿재터널 박흥수 사장으로부터 신애를 부탁받은 민우는 이 터널에서 신애를 보내려 하지만 신애는 차를 몰고 돌아와 가두에서 방송을 하며 '우리를 잊지말아주세요'라고 외치고 다닌다. 이 장면의 실제 촬영지는 전북 진안의 모래재이다. 사진은 영화에서 캡춰.
ⓒ 기획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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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재가 중요한 요충지의 고갯길이기는 하지만 화순의 너릿재는 근현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역사 속의 고개라 할만하다.

'택시운전사'에서 너릿재를 떠올림은 근거가 없는 나의 상상 속 이야기일 뿐이다. 또한 '화려한 휴가' 속의 너릿재 터널 역시 픽션 속의 소재일 뿐이다. 하나 5.18 당시 중요한 격전지나 요충지였음은 분명하다. 시민군이 외부로 광주의 소식을 알리기 위한 통로였으며 화순탄광에 보관되어있던 다이너마이트를 가져와 무장하기 위한 출격로 였다. 주남마을 학살로 알려진 민간인에 대한 총격 사건도 바로 너릿재 길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너릿재는 동학 농민전쟁 당시의 농민군 학살 장소로 전해진다. 너릿재 바로 아랫마을 이십곡리로 전해진다. 우금티 전투에서 패배하고 아래로 밀려 내려오던 농민군이 이곳에서도 학살당했다고 한다. 일본군은 농민군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후환이 생길 것을 염려하여 아래로 밀어 바다까지 밀어붙였다.

해방 후에는 화순탄광의 노동자들이 815 해방 1주년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광주로 가다가 미군과의 충돌로 너릿재에서 100여 명이 사상당했다고 한다. 이를 다룬 뮤지컬 <1946, 화순>이 지난해 공연되기도 했다. 6.25에서도 이곳은 등장한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광주항쟁에서 등장한다.

조선조 중종 시절 개혁가였던 조광조를 비롯해 남도 땅 화순, 보성, 장흥, 고흥 등지로 유배를 가던 이들이 넘었을 고개가 너릿재였다(조광조의 유배지로 향하는 길은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화순군 능주로 향하던 그가 너릿재를 넘었음이 기록에 남아있다).

그 길의 원형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근래 터널이 두 개가 뚫리고 길로서의 기능은 많이 상실했으나 현대사 깊숙한 기억을 담고 있는 길이다. '화려한 휴가'에서 너릿재 터널의 대역을 맡았던 모래재는 전주와 진안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이웃한 보룡고개(흔히 소태정 고개라고 잘못 부르는)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

일제가 1912년경에 닦은 곰티 신작로에서 대형 교통참사가 벌어졌고 1971년에 모래재가 완공되었다. 그 모래재에서도 1989년에 대형 교통사고가 벌어지고 오늘날의 보룡고개에 국도의 자리를 넘겨주고 지방도로 남아있다. 이와 달리 깊은 역사성과 요충지중 요충지로써 너릿재가 읽히는 대목이다.

모래재와 너릿재 옛길 모두 지형을 그대로 길에 담아두고 있어서 구불구불 나 있고 경관이 아름답다. 자동차를 위주로 하는 교통에서의 역할이 미미해져 이제는 라이더들의 훈련장소로 긴요하게 쓰이고 있다. 최근엔 너릿재의 자동차 진입을 완전히 차단하고 자전거와 산책객들에게만 길을 허락하고 있다.

고개 치고 이야깃거리가 남아 있지 않을 고개가 없을 것이다. 너릿재에 남겨진 무수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특별하다.

그만큼 중요한 길목이었고 어떤 방향으로의 선택이 그 길을 차지하고 지배를 허용하는지에 따라 역사가 달라지기도 했다. 너릿재가 그런 위치에 있다.

김사복과 한츠 피터에게 길을 허락한 (알 수 없는 어떤) 고개가 바로 이를 증명한다. <화려한 휴가>에서 신애와 민우는 둘 다 죽음의 길을 선택하였다. 김사복과 피터가 넘은 고갯길은 육신의 살아남음을 뛰어넘어 역사를 넘는 순간이 되었다.

화순읍 이십곡리와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을 잇는 너릿재 옛길, 거리는 5Km 남짓으로 화순구간은 소아르 갤러리까지 비포장구간이다. 자전거와 보행객을 제외한 자동차의 진입이 통제되고 있다.
▲ 너릿재 옛길 화순읍 이십곡리와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을 잇는 너릿재 옛길, 거리는 5Km 남짓으로 화순구간은 소아르 갤러리까지 비포장구간이다. 자전거와 보행객을 제외한 자동차의 진입이 통제되고 있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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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마을에서 나무 터널을 지나면 고개 넘어 너릿재 터널 입구 소아르 갤러리까지의 거리가 5Km가 채 못 된다. 단풍과 벚꽃이 아름답고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이는 너릿재 옛길을 거닐 것을 권고하고 싶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잘 아는 이 길의 맛, 그 맛을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하고자 너릿재를 다루었다. 넉넉하게 두 시간이면 근현대사를 소화해내며 기막히게 아름다운 자연의 향기를 보너스로 얻어 갈 수 있음을 확신하며 마친다.

바로 이즈음 11월 초가 제격이다. 너릿재 옛길 나무터널, 그 사이로 간간이 들어오는 햇볕이 화려하게 산란되며 산책할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산란되는 빛 속에 담겨있는 역사의 향기가 그윽하게 흐르는 산책길이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많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길가의 숲이 바람을 통해 넌지시 들려줄 역사를 기대해봄 직 하다.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들에겐 훌륭한 훈련장이고 산책을 하는 이들에겐 적당한 부하를 주며 청량감을 주는 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맛이 모두 다르다.
▲ 너릿재 옛길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들에겐 훌륭한 훈련장이고 산책을 하는 이들에겐 적당한 부하를 주며 청량감을 주는 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맛이 모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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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두 바퀴로 만나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자전거 여행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 매체인 '전북 포스트'에 동시에 보냈습니다.



태그:#너릿재 옛길, #화려한 휴가, #자전거 여행, #고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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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한의사, 자전거 도시가 만들어지기를 꿈꾸는 중년 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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