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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책방에서 여행을 하고 있다.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남들 여행 다녀온 얘기나 읽으면서 낄낄거리고 있다. 아니 이건 여행인가? 독서인가? 그래, 책을 읽는 건 여행의 재미가 있다. 새로운 것을 보고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혹은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일상을 더 잘 버틸 수 있다.

책이 여행을 대신할 수 없고 여행이 책을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만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앉은 자리에서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식견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도 구애받지 않고 과거로 넘어갈 수도 있고 미래에 먼저 도착할 수도 있다. 그러니 책을 읽는 건 가장 쉽고도 간편한 여행이다. 나는 그런 여행을 남에게 권하고 싶다. 나는 그만하고 싶다. 뭐, 그만하지는 않겠지만 일년 넘게 너무 '독서 여행'만 한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이 글은 남에게 권하는 독서 여행.

지난번에 사진 없는 여행책을 한 권 소개했는데, 사진 없는 여행책을 한 권 더 소개할까 한다. 제목이 조금 길다. <이토록 진지한 유럽 여행기 혹은 이렇게 가벼운 대안경제 여행기> 얼마나 진지하고 얼마나 가볍길래 두 수식어를 모두 붙였단 말인가? 읽어보면 안다.

 대안 경제를 얘기하는 여행기
▲ 이토록 진지한 유럽 여행기 혹은 이렇게 가벼운 대안 경제 여행기 대안 경제를 얘기하는 여행기
ⓒ 정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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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나영은 비영리단체에서 8년을 근무했다.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기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재사용 자선 가게를 운영하고, 사회적기업 판로 지원 업무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안 경제에 관심이 많고 여행지에서도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대기업 물건 구입하지 않기 등의 여행 원칙을 세웠다. 이거 쉽지 않은 일인데? 일상에서야 지킬 수 있어도 여행지에서라면 예외적으로 허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 옛적 거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가 일본 여행 갔을 때, 간편하다는 이유로 일회용 칫솔, 일회용 비닐, 일회용 컵, 일회용 가방, 일회용 우비 등 온갖 것을 일회용으로 들고 다니다 모조리 버리고 온 적이 있다. 오는 길도 가는 길도 가벼웠지만 그렇게 나 하나만의 가벼움만 추구한 것이 이제까지 부끄럽다.

환경을 생각하고 소외받는 이웃들과 같이 사는 방법을 도모한다면 일상에서뿐 아니라 여행지에서도 예외가 없어야 할 것이다. 하긴 일상의 소비 습관이 여행지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겠지만 말이다. 반성해야지.

저자는 독일에서 옥스팜(국제 NGO 단체로 재사용 매장을 운영. 아름다운 가게의 모태가 됨) 매장을 체험하고, 인권의 길을 걷고, 동물을 상업적으로 다루는 일에 분노하고, 이탈리아의 생협을 이용하고, 영국 자선가게에서 활동가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문구에 감동한다.

그래서 진지한 유럽 여행기인가? 누가 여행기에 이런 내용을 담겠냐고요? 하지만 나는 이 얘기들이 유명 관광지의 야경을 묘사하거나 위대한 미술가의 작품을 보고 쓴 감상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읽혔다(그렇다고 관광지에 대한 얘기가 없는 건 아니다).

여행이라고 해도 결국 그곳에서 살다가 오는 것 아니겠는가. 내 일상이 여행에서도 이어지는 건 변함이 없다. 그저 재미있고 마냥 즐거운 것도 여행일 수 있겠지만 스스로 추구하는 것을 지키면서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라 말하고 싶다.

내가 책을 읽으며 추구하는 것도 그러한 것이다. 책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길 바란다. 이렇게 말하면 제발 분리하라고 주변에서는 얘기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책방지기는 오늘도 책을 읽으며 한참 여행하고 여독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아니 잠깐, 이건 남에게 추천하는 독서 여행인데 내가 또 빠져버리고 말았네.

덧붙이는 글 | 여행하지 못하는 책방지기의 슬픈 독서 여행담



[POD] 이토록 진지한 유럽 여행기 혹은 이렇게 가벼운 대안경제 여행기

정나영 지음, 부크크(bookk)(2017)


태그:#이후북스, #독립책방, #독립출판물, #이토록진지한유럽여행기혹은이렇게가벼운대안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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