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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삼아서 엄마를 업어 보고
겉그림
 겉그림
ⓒ 필요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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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무나도 가벼움에 울다가
세 걸음도 못 걷네 (21쪽)

거울 가게의 앞에 와서
문득 놀라버렸네
추레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나여서 (33쪽)

노래를 짧게 읊어 봅니다. 글잣수를 맞추기도 하고, 조금 홀가분하게 이야기를 펼치기도 하는 짧게 읊는 노래에는 삶을 지으면서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을 담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짧게 노래를 읊으나, 글을 안 쓰는 사람도 짧게 노래를 읊어요.

꼭 종이에 글로 적바림하지 않더라도 입으로 가만히 읊으면서 기쁨이나 슬픔을 노래합니다. 곁에 있는 동무나 이웃한테 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노래를 물려받습니다. 일하다가, 놀다가, 쉬다가, 살림하다가, 문득문득 짤막하게 노래를 읊습니다.

참 슬픈 것은
목이 마른 것까지 참아가면서
추운 밤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 때 (61쪽)

어떤 사람이 전차에서 바닥에 침을 뱉는다
여기에도
내 마음 아파지려고 하네 (79쪽)

<한 줌의 모래>(필요한책 펴냄)는 1886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숨을 거둔 이시카와 다쿠보쿠라는 분이 지은 석 줄짜리 짧은 노래를 들려줍니다. 기쁠 적에는 기쁜 마음을 가만히 담고, 슬플 적에는 슬픈 마음을 눈물로 담습닏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가 볼 적에는, 또는 서른이나 마흔이나 쉰이나 예순……이라는 나이로 볼 적에는, 스물일곱 앳된 나이에 숨을 거둔 이웃나라 시인 한 사람이 백 해도 앞서 남긴 짧은 노래가 대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적거나 많아야 기쁨이나 슬픔을 더 느끼지 않아요. 젊은 사람도 짊어져야 할 삶이란 무게가 있어요. 젊기 때문에 딛고 서야 할 살림이란 무게도 있고요. 그리고 누구는 서른 마흔 쉰 예순 ……을 살더라도 서른조차 못 살고 이 땅을 떠나니, 스물일곱 젊은 시인이 읊는 노래에 흐르는 기쁨이나 슬픔은 퍽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가 그동안 사 모은 이시카와 다쿠보쿠 책들, 1960년에 <혼자 가리라>라는 이름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글쓴이가 그동안 사 모은 이시카와 다쿠보쿠 책들, 1960년에 <혼자 가리라>라는 이름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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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누워서도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은
열다섯 살 때 나의 노래였던 것이니 (98쪽)

헤어져 있으면 여동생 그립구나
빨간 끈 달린
게타 갖고 싶다고 울던 아이였는데 (120쪽)

노랫말은 길지 않아도 됩니다. 다문 한 줄로 읊는 노래도 얼마든지 노래입니다. "밤에 누워서도 휘파람을 불었다" 이 한 줄로도 노래입니다. 교과서를 읽듯이 힘 없는 목소리가 아니라면, 곁에 살가운 벗님을 마주하면서 가만히 읊고 나직이 노래하며 사랑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헤어져 있으면 여동생 그립구나" 하고 적바림하는 글줄은 얼마든지 노래라고 느껴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이런저런 꾸밈말을 꼭 안 붙여도 됩니다.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기쁨이나 슬픔을 읊으면 됩니다. 힘들기에 "아이고 힘들어"라든지 "죽도록 힘들어" 하고 읊는 노래가 있어요. 힘겹지만 "그래도 일어서야지"라든지 "사는 데까지 살 테야" 하고 읊는 노래가 있습니다.

일본에는 "게타 갖고 싶다고 울던 아이"가 있으면, 한국에는 "댕기 갖고 싶다고 울던 아이"가 있을 테지요. 말도 삶도 살림도 숲도 다른 한국하고 일본입니다만,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 흐르는 마음은 서로 맞물리거나 이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오래된 책을 펼쳐서 새로운 책을 견주어 함께 읽어 봅니다.
 오래된 책을 펼쳐서 새로운 책을 견주어 함께 읽어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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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구나 내가 가르쳤었던
아이들도 또
이윽고 고향 마을 버리고 떠나겠지 (124쪽)

무엇 하나도 생각하는 일 없이
그날그날을
기차 기적 울림에 마음을 맡겼다네 (214쪽)

1800년대에서 1900년대로 넘어서는 일본에서 '시골(고향)'을 버리고 '서울(도시)'로 가는 아이들이 또 있었다는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겨 봅니다. 한국에서는 어느 무렵부터 서울바람이 불었을까요. 이 땅이든 이웃 땅이든 구태여 서울로 가야만 무언가 할 수 있거나 이름을 드날릴 만할까 궁금합니다.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삶을 지으면서 새롭게 꿈을 지필 수 있을까요. 시골숲에 깃들어 찬찬히 살림을 가꾸면서 드넓은 하늘을 품는 사랑을 피울 수 있을까요.

백 해라는 나날이 흘러도 마음으로 새기는 이야기는 한결같으리라 생각해요. 1930년대에 일본에서 나온 책을 펼치면서.
 백 해라는 나날이 흘러도 마음으로 새기는 이야기는 한결같으리라 생각해요. 1930년대에 일본에서 나온 책을 펼치면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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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 한 줄에 흐르는 마음은 차분히 노래가 됩니다. 글월 한 줄에 옮긴 마음은 애틋한 노래가 됩니다. 글월 한 줄로 또박또박 밝힌 마음은 해가 가고 달이 가더라도 두고두고 따사로운 노래가 됩니다.

<한 줌의 모래>는 2017년에 한국말로 새로 나온 책이에요. 저한테는 1930년대에 일본에서 나온 이시카와 다쿠보쿠 님 시집이 있습니다. 거의 아흔 해를 가로지르는 두 책을 나란히 책상맡에 놓아 봅니다. 그동안 틈틈이 사 모으면서 읽은 다른 이시카와 다쿠보쿠 님 책들도 함께 쓰다듬으면서 삶이랑 노래를 헤아립니다.

덧붙이는 글 | <한 줌의 모래>(이시카와 다쿠보쿠 글 / 엄인경 옮김 / 필요한책 펴냄 / 2017.5.18. / 13500원)



한 줌의 모래 - 이시카와 다쿠보쿠 단카집

이시카와 다쿠보쿠 지음, 엄인경 옮김, 필요한책(2017)


태그:#한 줌의 모래, #이시카와 다쿠보쿠, #시집, #삶노래, #문학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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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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