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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국회 병무청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원내 대표인 정진석 의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무슨 얼어 죽을 양심이냐"라고 작심 발언을 시작했다. 뒤이어 국민의당 비례대표 군장성 출신 김중로 의원도 정진석 의원의 발언을 적극 옹호했다. 국방차관 출신인 새누리당의 백승주 의원도 '양심적 병역거부'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거들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가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에 대해서 다소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고, 또 사법부의 무죄 선고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보수 의원들 사이에서 용어 시비로 나타 나고 있다.

언론이 발언 내용을 큰 따옴 부호로 전달한 것을 보면 의원들의 분기탱천을 가감 없이 전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병역거부에 '양심적'이란 말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표현으로 이해가 되지만, 병역거부가 공론화 된 2000년 이래 이렇듯 과격한 발언이 나온 국정감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양심적'은 분노의 기폭제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 5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 및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병역거부자 및 엠네스티 관계자들이 옥중 기자회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 5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 및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병역거부자 및 엠네스티 관계자들이 옥중 기자회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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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토론회나 무죄 선고가 보도될 때마다, 반대자들은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면, 병역 이행은 비양심적이냐고 성토한다. 거의 대부분 '양심, '비양심'의 구도가 되면서 평상심을 잃은 다툼으로 토론이 마무리가 되었는데, 이제는 국회에서 생산적인 정책 토론 대신 용어 시비를 해서 병역거부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의원들이 '양심'이란 용어가 법률상의 양심임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병역이행자들의 피해의식을 자극시켜 공분을 일으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무슨 얼어 죽일 양심이냐"는 발언을 예사롭게 한다. 제 1 야당의 4선 중진인 원내대표의 발언이 왜 적절하지 않았는지 집어 보자.

해방이후 지금까지 원내대표의 그 "무슨 얼어 죽을 양심" 때문에 2만여 명의 청년들이 징역형을 선고를 받았다. 당사자들은 "얼어 죽을 양심"이 아니라 '얼어 죽지 않았던 양심'이었다고 말한다. 정진석 의원이 종교명을 가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시기에 병역거부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가톨릭의 교리를 잘 아시고 계실 것이지만, 연일 종행무진의 의정 활동으로 인해 혹시나 교리를 간과하신 것 같아서 짧게 간추려 드려야 할 것 같다.

1965년에 발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79항에는 "양심의 동기에서 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위한 법률을 인간답게 마련하여, 인간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되어 있다. 1997년에 개정된 가톨릭교회교리서 2311항은 "양심상의 이유로 무기 사용을 거부하며 다른 방법으로 인간 공동체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국가가 공정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며 대체복무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정 원내대표의 이번 발언은 진실한 가톨릭 교인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회의원의 신분과 가톨릭 신자의 신분 중 어느 편이 우선인지를 밝혀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어느 한 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새로운 작명이나 개명을 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국제적 통용어로 고유명사화 되어 있다. 2001년 경, 국방부는 '양심적'이라는 표현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전문가 집단에 의뢰해서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병역 거부자'라는 명칭을 공모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9년 주류 개신교계의 반발 때문에 또 '입영 및 집총 거부자'로 바꾸었다. 거부가 종교적이면 병역 이행을 하는 개신교가 비종교로 비쳐질 우려가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글자 수가 가감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 의원들의 요구가 있었으니, 또 어떻게 바꾸어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휘 구사로 유·무식을 가릴 수가 있는데,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는 신분은커녕 노소 남녀 불문하고 돋아진 핏줄로 얼굴을 망가뜨리는 요술어가 되어 병역 거부자조차도 마음 놓고 사용하기가 조심스러운 정도가 되었다. 본래 새로운 명칭은 신속하게 확장성이 있어야 하는데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방부에서만 사용될 뿐, 다른 유관기관의 호응이 전혀 없다. 경찰, 검찰의 신문 조서, 각급 법원의 판결문,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법학계의 논문은 일관되게 양심적 병역거부다. 대체할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국어사전, 백과사전에서도 동일하다.

국제적 통용어는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

국제적 통용어를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이며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국제 사법계, UN은 '양심적 거부'로 통용하고 있다. 양심 뒤에 낙태가 나오면 '양심적 낙태 거부' 병역을 거부하면 '양심적 병역거부' 왜 양심이 들어가느냐고 항의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뿐이다. 가톨릭교는 낙태를 금지하는 교리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양심적 낙태거부'가 된다.

본래 개명이나 작명은 당사자들의 불평이 있거나 부적합 하다고 여겨질 때, 스스로 또는 요청에 의해서 중지를 모은 후에 가장 적합한 호칭을 선택케 하는 것이 수순이다. 전 세계 병역 거부자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양심적 병역거부' 라는 호칭이 자신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함부로 개명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 헌법 제 19조의 '양심의 자유'를 헌법재판소는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와 일치하게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은 70년간 처벌을 감수하고 있다. 가변성의 '신념적' '사상적'이란 단어는 '양심적'을 대체할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병역거부자에게 투옥이나 처형의 위협은 아무 소용이 없었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양심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병역거부자들 앞에서 "얼어 죽을 양심'이란 말보다 더한 모욕은 없다. 원시 기독교에서 유래한 종교적 가르침에 의한 병역거부는 세월이 흐르면서 생명 존중 사상, 정치적, 철학적, 평화적 신념의 이유로 다양화 되었다. 이를 이유별로 분류해서 그 뒤에 '생명 존중 사상에 의한 병역거부' 식으로 길게 부르기보다 짧게 총칭해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부르는 것이 경제적이다. 단순하게 '입영 및 집총거부자'로 해 놓으면 또 다시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국회의원들의 노기 띤 얼굴을 회의록 동영상을 보면서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어떤 병역거부자가 병역이행자를 비양심이라고 폄훼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들어본 적도 해 본 적도 없는데, 모든 탓을 병역거부자에게 돌리고 있다. 혹시 병역이행의 억울함을 해소키 위해서 병역거부자들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께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교훈하셨는데, 병역거부자들이 어찌 스승의 가르침을 배반하겠는가? 오해다.

국회의 책무

기독교 문화권인 서구에서는 병역거부자들을, 일반 범법자와 구분하기 위해서 병역거부의 발원지가 '양심'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일반인들의 오해를 바로 잡았다. 이처럼 병역거부의 동기와 근원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대체복무라는 출구를 마련하여 민간인의 신분으로 공동체에 기여 할 수 있게 하자는 합의를 이끌었다. 개신교, 가톨릭 신자도 병역거부를 했기에 아무도 '종교적 양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교계지도자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두에서 반대하는 모습은 세계 종교 역사가들이 풀어야 할 난제다. 반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만큼 군복무 이행으로 인한 박탈감이 크고 형평성에서 차별을 당했다는 인식이 팽배한 나라일수록 일반인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려면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고 설득을 해야 한다. 국회의 입법이 있어야 대체복무가 가능하기에 보수정당의 대표가 그 역할을 해 주면 '보수 혁신'의 상징으로 이미지 쇄신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기대해 본다.

그동안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군필자들과 일반인들의 분노를 유도하기 위해 '양심적'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오해를 확대시키는데 전력투구해 왔다. 그 결과 70년간 2만여 명의 병역거부자가 처벌을 받았다. 아직도 '시기상조'라면 도대체 언제쯤 '시기도래'가 될 것인가? 해는 지기 시작하고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기만 하면 국회의원들의 "무슨 얼어 죽을 양심이냐"는 발언은 "얼어 죽어서는 안 되는 양심"이라는 격조 있는 표현으로 바꾸어 질 것이다. 그런 말이 나오도록 병역거부자들은 성심을 다해서 대체복무를 이행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징벌적이 아닌 합리적인 기간, 업무 난이도, 병무청이 아닌 국가 기관의 관리 감독을 받는 대체복무를 마련하여 병역거부자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대한민국이 인권침헤국가라는 오명을 벗는 것이다.국회가 용어 시비에 매달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태그:#양심적 병역거부, #양심의 자유, #헌법의 양심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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