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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주>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은 무기력했다. '기레기'라는 조롱도 받아야 했다.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후 한국의 언론은 달라졌을까. <오마이뉴스>는 재난을 겪은 시민들을 만났다. 국내외 기자들과 전문가도 만났다.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한국 언론의 재난 보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언론의 재난 보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잘못된 재난 보도의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우리이기 때문이다. 

21일 오후 경북 경주 황남동에서 와공(기와 기술자)들이 지진으로 파손된 기와지붕을 수리하고 있다.
이날 지진 피해로 수리를 하게 된 집주인은 "당장 급한 대로 집에 물은 새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자비를 들여 보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지진 피해 복구에 대해 물어보면 아직 구체적인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답만 되풀이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급한 대로 자비 들여 보수 시작했다" 21일 오후 경북 경주 황남동에서 와공(기와 기술자)들이 지진으로 파손된 기와지붕을 수리하고 있다. 이날 지진 피해로 수리를 하게 된 집주인은 "당장 급한 대로 집에 물은 새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자비를 들여 보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지진 피해 복구에 대해 물어보면 아직 구체적인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답만 되풀이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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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저녁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으로 경남 김해대로 한 주상복합건물 내 대형 식당 천장 일부가 폭탄을 맞은 듯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12일 저녁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으로 경남 김해대로 한 주상복합건물 내 대형 식당 천장 일부가 폭탄을 맞은 듯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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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2016년 9월 12일 오후 7시 44분 32초.

아라키 준(荒木 潤·53)은 딱 1년 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일본인이었던 그도 살면서 몇 차례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강력한 흔들림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10년을 살아오면서 잊고 있었던 떨림에 그는 단박에 이것이 지진임을 알았다. 두려움에 떠는 한국인 아내를 진정시키고 그는 TV를 켰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저녁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다.

"일본은 지진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바로 TV를 켜는 습관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 (한국)TV는 계속 드라마만 하고 있더라고요. 일본은 각 지역의 진도를 순식간에 표시하고 진원이 어디인지, 쓰나미가 있는지 없는지, 원전 주변의 상황은 괜찮은지가 거의 동시에 속보로 뜨는 시스템이었거든요."

지난 6일 자신의 경주 집에서 기자와 만난 아라키가 당시 TV를 켰던 이유를 설명했다. 마치 세상에 아무 일도 없는 듯 태평한 모습에 아라키는 "한심하다는 느낌과 경험이 없으면 어쩔 수 없겠다는 두 가지 느낌이 들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고는 며칠 호들갑을 떨다가 언론에서 경주 지진은 점차 잊혀 갔다. 이를 지켜본 아라키의 말이다.

"경주가 그렇게 주목 못 받았다는 아쉬움은 없는데, 그런 것보다 걱정되는 게 서울 사람들은 무관심해도 되겠냐라는 생각이에요. 엄청 무서운 일이지만, 같은 규모가 서울서 났다면 반드시 사망자가 발생했을 겁니다. 인구 밀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땅이 흔들리면 언론 대신 '맘 카페'로 달려가는 주민들

경주 통일전의 지붕 기와가 지난 12일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쓸려내렸다.
 경주 통일전의 지붕 기와가 지난 12일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쓸려내렸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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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뽑았다. 임금은 배고 백성이 물인데 배가 물을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의 분노에서 떠올린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주 주민 박찬석(44·직장인)씨는 "우리는 1년 내내 사자성어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이었다"고 말했다. 제각기 살아나갈 방도를 꾀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라키를 만나고 저녁 경주 주민들을 만났다. 지진을 겪은 경험을 정리한 책 <현관 앞 생존배낭>을 기획하고 집필한 주민들이었다. 지진과 여진에 시달리는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재난 보도는 없었다고 했다.

'맘 카페'(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와 밴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통해 주민들끼리 저마다 정보를 공유해야 했다. 힘을 합쳐 낸 책도 경주 지진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언론에서는 늘 저희를 인터뷰할 때 비주얼을 요구했어요.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어야 하는데 저희는 피 흘린 사람도 없고 자극적인 그림도 없었거든요. 언론에서 다루지 않으면 내가 이상한 거냐는 생각이 들게 돼요. 나는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놀라는데…."

심리상담사인 최정진(43)씨는 언론을 향한 불만을 이렇게 토로했다. 지진을 겪은 후로 아직도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불안감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는 주민들을 찍다 '그림'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방송사의 취재팀을 바라보며 주민들의 고립감은 더해졌다고 했다.

주민 속 타들어 가는데 한쪽서는 '검색' 장사

경북 경주에 일주일 만에 또다시 규모 4.5여진이 발생했다. 20일 경주시 남산동 통일전 부근 지역에 지진피해로 깨진 도자기가 쏟아져 있다.
▲ 지진피해로 깨진 도자기 경북 경주에 일주일 만에 또다시 규모 4.5여진이 발생했다. 20일 경주시 남산동 통일전 부근 지역에 지진피해로 깨진 도자기가 쏟아져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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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저도 어쩌면 약과였다. '낚시 기사'에서는 허탈함을 넘어 분노가 밀려들었다. 방송작가 정꽃님(38)씨는 '진도 7.2급 로맨틱 멘트'라는 표현을 쓰며 드라마를 소개하는 걸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아직 본진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라는 문구에 깜짝 놀라 들어간 기사가 소개하는 게 지진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 현안임을 알았을 때는 욕이 튀어나왔다.

올해라고 달라지지 않았다. 강사 윤정임(49)씨가 "올여름 우리는 가뭄 때문에 속이 타는데 언론에서는 서울에 비 오는 얘기만 하더라"고 혀를 찼다. 이들에게 "재난 보도에 있어 한국 언론의 보도를 신뢰하냐"고 물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꽃님씨가 되물었다.

"한국에 재난 보도가 있기는 해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아픔을 보며 반성하고 다짐했지만, 아직 한국의 재난 보도는 아직도 낙제점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언론인들은 우리의 재난 보도를 어떻게 평가할까?

<오마이뉴스>는 최근 3년 사이 재난 보도 취재를 경험한 전국의 언론인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언론인들이 평가한 한국 재난 보도의 민낯을 다음 편을 통해 여러분과 공유하려 한다.

덧붙이는 글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태그:#재난 보도, #경주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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