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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 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8월 30일 보도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 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8월 30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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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도 무서웠지만, 지진이 일어나고 아파트가 정전이 되니 화장실 물도 내릴 수 없더군요. 정말 인간 이하의 삶을 견뎌야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라는 것이 천재지변 앞에서 얼마나 불안정하고 보잘것없는지를 깨달았었죠."
-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일반 시민의 인터뷰 내용

지난 9월 3일은 정말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뜨거웠던 지난 여름을 보내고 모처럼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조기축구 회원들과 축구를 즐겼다.

이날 해루질 동호회 활동을 하는 회원이 지난 주에 잡아온 주꾸미를 가져왔다. 회원 중에는 요식업을 하는 사람들이 몇 있어서 이런 날은 이들이 쉐프가 되어 축구하랴 요리하랴 정신 없이 바쁘다. 주꾸미를 맛있게 데치고 해물 라면도 끓여 주니 이날은 회원들의 입도 모두 즐거웠다.

조기축구의 즐거움 중 하나가 이처럼 회원들이 간간히 찬조하는 음식들을 나눠먹거나 조기회에 비치된 큰 버너로 요리를 해 먹는 것이다. 특히 날씨가 쌀쌀해지면 오뎅탕, 홍합탕 등 뜨끈한 국물 요리가 자주 선을 보이는데 회원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다.

그런데 즐겁게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북한에서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는 심각한 뉴스를 접해야 했다. 이전 핵실험들과 비교하며 그 위력이 과거 2차 대전 당시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몇 배에 달하고, 만약 서울에 떨어진다면 수백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고 결국 서울은 증발하게 될 것이라는 등 무시무시한 뉴스들이 티비 화면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요즈음 계속되던 북핵 위기로 인해 웬만한 뉴스에는 내성이 생긴 상태지만, 이번 핵실험 뉴스는 꽤나 심각했다. 협소한 국토에 인구가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우리 나라에 핵 전쟁이 일어난다면 국토와 겨레의 역사를 순식간에 잃게 되는 파멸을 의미할진대, OECD회원국이 2017년에 이런 불안함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도시 문명에 살고 있는 21세기 현대인들은 늘 불안감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매일 매일의 뉴스들은 세계 곳곳의 천재지변과 인재(人災)들로 인해 개인의 삶 들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이런 뉴스 들을 접할 때마다 지구를 쥐락펴락 할 듯 오만을 떠는 인간들도 대지진이나 태풍 등 천재지변 앞에선 너무나 나약한 존재에 불과함을 확인하게 된다. 선진국이라는 일본과 미국조차 고베와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태풍 카트리나와 하비 앞에선 모든 사회 시스템들은 속수무책이었고, 평화롭던 수 만 명의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이재민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천재지변뿐만 아니라 구제역, AI, 메르스, 그리고 최근의 살충제 검출 계란까지 결국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여러 문제들로 인해 사회 시스템은 무력화되고 국가 조직마저 우왕좌왕 자가당착에 빠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제는 한 술 더 떠 자연에 존재하는 원자핵을 인위적으로 쪼갰다 붙였다 하면 엄청난 폭발력과 열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인간들이 핵폭탄이라는 엄청난 살상무기를 만들어 서로 으르렁대고 있으니, 위험한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린 우리 인간의 운명은 과연 어찌될 것인가?

우리의 소중한 일상들은 너무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서 허락되고 있다는 생각에 나 역시 불안감을 쉬이 떨칠 수 없다. 천재지변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전쟁과 같은 인재(人災)는 우리가 조금씩 양보하고 변화한다면 막을 수 있을 테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아집과 독선에 눈 먼 어리석은 인간들은 결국 파국에 마주쳐서야 후회를 했으니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곰곰이 지금의 북핵 사태의 원인이 무언지를 생각해 보았다. 남과 북은 본래 한민족이고 한 국가였다. 무엇 때문에 사이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일본 제국주의와 주변 열강에 의해 남과 북으로 갈리게 되었고, 극단으로 반목하게 된 이유는 북한의 남침으로 촉발된 동족상잔의 비극 6.25때문이다. 한 핏줄의 형제끼리 죽도록 싸운 엄청난 일이 우리 민족과 국토에서 벌어진 것이다. 크나큰 전쟁의 상처는 종전이 된 지 40여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덧나고 아물지 못한 채, 우리는 아직도 반목하고 싸우고 있다. 결국 핵까지 들이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북한을 두둔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북한이 저리 막 나가게 된 데 우리의 책임은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지금 세계에서 깡패 국가로 낙인 찍혀 있다. 여태까지 우리는 태생이 같지만 마치 집안에서 내 논 자식처럼 주변국들이 북한을 깡패라고 몰아칠 때 함께 맞장구를 쳐왔다.

내 형제가 만약 주위에서 깡패라고 낙인 찍히고 모두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을 때, '저 녀석은 태어났을 때부터 집안의 우환이었죠. 내놓은 자식이었습니다'하고 이웃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비난을 퍼부으면 형제인 내 책임은 없어지는가? 내 형제가 그리 망가지게 된 대는 이유가 있을 테고, 그 이유는 핏줄인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몹쓸 깡패 동생은 언젠가 내게 도움을 청했을 수도 있고 혹은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원하는 눈빛이라도 내 비쳤을 것이다. 그럴 때 진심으로 눈을 맞추며 그 손을 잡아 준 적이 있었던가?

북한이 중거리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일본 상공을 넘어 북태평양에 떨어뜨린 지난 8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뉴스를 보고 있다.
 북한이 중거리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일본 상공을 넘어 북태평양에 떨어뜨린 지난 8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뉴스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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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신문 사설 제목이 있다.

"남북은 냉엄한 비즈니스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어느 날, 모 보수 신문의 사설 제목이다. 난 당시 그 사설 제목을 봤을 때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 사설을 쓴 사람이 과연 우리나라의 헌법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다음은 우리나라 헌법 전문 중 일부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평화통일의 사명에 입각해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해야 할 우리지만, 동포애보다는 저런 제목의 사설이 버젓이 대문짝만하게 실릴 만큼 이해타산적인 장사치 논리로 북한을 바라보고 대했던 것이 여태까지 우리 사회의 분위기였다.

그 동안 남한 정부는 화해와 상호존중보다는 '비핵 개방 3000'이라며 핵을 포기하면 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를 보장해 주겠다는 오만한 대북정책을 발표하더니, 급기야 '통일은 대박'이라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정책까지 남한 최고 지도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 동안 우리는 전혀 상대를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한 정부는 놀부마냥 온갖 있는 채를 다하며 북을 몰아세웠고, 헐벗고 굶주리며 흥부 같던 북은 급기야 자존심이 상해 마음을 꼭 닫고, 두고 보자며 불철주야 핵개발에 매진해 온 것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좋은 의미의 시작이었지만, 남한 정권들의 부침 속에 그 의미는 지속되지 못했고 결국 앙금과 불신만 남게 되었다. 이런 상호불신이 팽배한 상황하에서 뒤 늦게 현재의 정부가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동안 북의 핵 기술력을 조롱하고 무시하다가 치명적인 핵무기가 완성된 것을 확인하고는 요즘 언론과 정치권은 책임을 떠 넘기려고 난리가 아니다. 부끄럽지 않은가? 상황을 이렇게 악화되도록 부추기던 자들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이젠 누구를 비난하려 든단 말 인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놀부건 흥부건 둘 중 누군가는 진심으로 먼저 손을 내밀어야만 결국 두 손은 맞잡을 수 있다. 어려운 때이지만 이번만큼은 우리 남측이 먼저 손을 내밀었으면 한다. 그리고 북은 폭주를 멈추고 그 손을 잡아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할 한 민족 한 핏줄이다. 자국의 이해를 떠나 남과 북의 이러한 특수 관계를 이해하고 우리를 도와 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북의 6차 핵실험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인해 지금 온 남한 사회와 정치권은 당황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함을 잃지 말고 문제의 근인을 파악하여 이성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우리 한민족이 하루 빨리 이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평양과 서울에서의 경평(京平) 축구 경기를 즐길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 날엔 우리 조기축구 회원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아 한반도기를 흔들며 목청껏 남과 북을 응원할 것이다.



태그:#경평축구, #조기축구, #북한핵, #평화,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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