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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를 흔히 '종군기자'라고 부른다. 얼핏 종군기자 하면 왠지 멋져 보인다. 그러나 20년 넘게 전선을 누빈 정문태 기자는 종군기자라는 이름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또 종군기자란 이름이 품고 있는 환상적 이미지마저 여지없이 부숴 버린다. 그의 책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은 이 같은 문제의식과 기자로서의 자의식이 담긴 책이다.

먼저 이 책은 정 기자가 버마, 아프가니스탄, 예멘, 동티모르 등 국제분쟁의 현장을 발로 뛰면서, 발에 밟히는 진실을 모은 것이다. 원래 이 책은 2004년 초판이 나왔는데, 12년이 지난 시점인 2016년 개정증보판을 냈다.

일제 침략전쟁에서 자란 '종군기자'

20년 간 국제분쟁을 취재한 정문태 기자의 책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
 20년 간 국제분쟁을 취재한 정문태 기자의 책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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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정 기자는 독자들을 국제분쟁의 현장에 데려가기에 앞서 전쟁보도사부터 풀이해 준다. 이와 더불어 자신이 왜 종군기자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지도 말해준다. 이 지점에서 '종군기자'란 말은 타파해야 할 적폐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자에서 따온 종군기자(從軍記者)란 걸 풀어보면 말 그대로 '군대를 따르는 기자'가 되고 만다. 이 '종'(從)자는 '따른다'거나 '좇는다'는 겉뜻 말고도 '복종한다'거나 '거역하지 않는다'는 심란한 속뜻을 지녔다. 그러니 이 '종군'이란 말을 쓰는 한 독립성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기자가 군대에 복속당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 본문 21쪽

"아시아·아프리카·유럽 출신 기자들과 머리를 맞대봤지만 '군대를 따르는 기자'라는 말을 이해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 종군기자란 말은 19세기 말 일본군의 침략전쟁과 함께 자라온 군국주의 용어고 따라서 이는 역사관의 차이다. 일본 언론이 퍼트린 군국주의 용어 가운데 좋은 본보기가 바로 종군위안부다. 일본 군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성폭력 피해자들을 두고 '군대를 따라다니며 성을 파는 여성'이란 뜻을 지닌 종군위안부라 불러온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마찬가지로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침략전쟁에 나팔수로 데리고 다니던 기자들한테 갖다 붙인 말이 바로 종군기자다." - 본문 23쪽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의 생명은 독립성이다. 이 같은 원칙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현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더구나 전선을 책임지는 군 당국은 어떤 식으로든 유리한 정보만 부각시키려 한다. 이런 현장에서 군을 추종하면 결과는 오로지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나팔수 노릇뿐이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2001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기자들을 군대에 '박아 넣은'(embed) 소위 '임베디드 저널리즘'이다.

정 기자는 '종군기자'란 말을 거부하며 스스로를 '전선기자'라고 이름 짓곤 갈등이 첨예한 국제분쟁 현장을 누볐다. 그가 안내한 현장의 실상은 '처참하다'는 형용사로는 부족하다. 더욱 경악스러운 건 국제사회의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CNN, BBC 등 유력 외신이 국제분쟁을 대하는 태도다.

잇속 따지는 국제사회, 현장 없는 취재하는 국제언론

먼저 국제사회의 무지와 무관심부터 살펴보자. UN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평화니 비폭력이니 하는 달달한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러나 정작 갈등이 첨예한 분쟁에서 국제사회는 잇속부터 따지기 일쑤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아프가니스탄이다.

"냉전이 막바지를 향해 가던 소비에트러시아 침공시절(1979~1989년) 미국의 대리전쟁터 노릇을 했던 아프가니스탄은 1990년대 초부터 새로운 국제대리전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국제세력들은 제 입맛에 따라 골라잡은 아프가니스탄 각 정파한테 비밀스레 손길을 뻗었다. 이웃 파키스탄은 전통적으로 파슈툰족 한 혈통인 헤크마티아르를 지원하면서 지역 맹주를 꿈꿨고, 미국은 러시아의 남하정책 봉쇄와 중앙아시아를 낀 정치적, 경제적 이권을 노려 마수드를 밀었다. 러시아는 철군 뒤에도 여전히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잇는 전략지대 아프가니스탄에 미련을 못 버려 우즈벡족 군벌 도스텀을 도왔다. 이란은 같은 시아파 무슬림인 마자리의 뒤를 받쳤다. 국제대리전이 그렇게 어둠 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 본문 131쪽

우리는 구소련 침공에서 내전, 탈리반 지배, 미국의 침공으로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국CNN, 영국BBC 등 '주요 외신'이 현지에서 타전하는 보도를 열심히 번역해 재가공한 정보가 전부 아닐까?

실제 한동안 대다수 언론사의 국제면을 차지했던 탈리반 뉴스는 이런 식으로 생산, 유통이 이뤄졌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하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바로 이들 주요 외신이 왜곡된 시각으로 뉴스를 생산했다면? 하는 질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은 한동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탈리반이 통치했다. 이들은 이슬람 율법을 들먹이며 여성에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정 기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정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탈리반은 카불을 비롯한 점령지역에서 여성 사회활동과 교육을 금지했지만 정작 자신들 본거지는 손대지 않았다. 지금껏 세상에 알려졌던 '탈리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을 금지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 시절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댄 동남부 파슈툰족 지역의 600여 개 학교는 여전히 문을 열었고 3만 넘는 여학생이 아무 탈 없이 학교에 다녔다. 이건 탈리반이 자신들 혈통인 파슈툰족과 자신들 종파인 수니파가 어우러진 지역에서는 결코 여성을 해코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 본문 156쪽

이 지점에서 두 가지 의문이 든다. 탈리반 관련 뉴스는 한동안 외신에서 넘쳐났는데, 왜 그간 이런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았을까? 주요 외신들은 왜 이슬람 근본주의자라는 시선으로 탈리반을 바라봤을까? 답은 간단하다. 국제언론들이 현장 취재 없이 '보이지 않는' 힘이 던져주는 떡밥을 덥썩 문 결과다. 정 기자의 말이다.

"그 시절 아프가니스탄 취재 경험이 많은 기자들은 무엇보다 똑같은 논조로 똑같은 내용을 하나같이 흘려대는 국제언론을 보면서 '틀림없이 가이드라인을 주는 제3세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탈리반을 취재했던 기자 수가 지구를 통틀어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데, 어떤 경로로 그 엄청난 탈리반 뉴스가 쏟아져 나왔는지부터가 수상했던 탓이다." - 본문 163쪽

국제정치가 본질적으로 힘의 논리로 작동한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가이드라인을 주는 제3세력'은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국제분쟁 현장 곳곳에 미국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은 곳이 없다.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이 극명하게 드러난 곳 중 하나가 바로 코소보다. 일반적으로 코소보를 비롯한 발칸 분쟁은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유고 연방에 민족-종교간 분쟁이 불거지면서 해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 기자는 유고 연방 붕괴가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관철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미국은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을 불법지원한데 이어 1995년 보스니아 침공을 거쳐 1999년 코소보전쟁을 통해 기어이 유고연방 해체작업을 마무리했다. 동서남북을 잇는 세계적 전략요충지인 발칸반도의 맹주였던 유고 연방은 사라지고 미국은 그 땅에 친미정권을 세웠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최대 군사동맹인 나토를 부려 유고를 침략함으로써 잠재적 적인 러시아 차단과 세계 지배전략을 실험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 본문 301~302쪽

혹자는 이 같은 지적이 반미감정을 자극하려는 시선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제국으로 군림하면서 세계 도처의 분쟁에 적극 개입하거나 눈감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해왔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다. 1980년 신군부가 광주에서 군인들을 중무장시켜 학살을 자행했음에도 미국은 정치적 이유로 방관했으니 말이다.

'전선'은 국가란 허울을 뒤집어쓴 정부가 군대를 앞세워 이익을 추구하는 현장이다. 이런 현장에서 진실을 부여잡기란 쉽지 않다. 아니, 진실은커녕 현장 접근조차 쉽지 않다.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한다. 군 당국은 이런 약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즉, 안전 보장을 미끼로 전황을 유리하게 보도해 줄 것을 압박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기자도 그가 속한 국가, 민족, 종교, 인종에서 자유롭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점이 면책사유는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아야 하는 진실은 있기 때문이다. 전선기자가 진실을 외면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사회의 몫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 기자의 외침은 큰 울림을 던져준다.

"전쟁은 국가로 위장한 정부가 저지르는 가장 극단적인 정치행위다. 하여 모든 정부는 전시언론통제에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들이댔다. (중략) 전선기자들은 국가와 정부를 혼동하며 제 발로 애국이니 민족이라는 함정에 빠져들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전선기자가 '반공' '반이슬람' '백인 우월주의' '미국중심주의' 깃발 아래 거리낌 없이 호전 나팔수로 전선을 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사회 몫으로 돌아왔다.

예컨대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에서 전선기자들이 승전보만 전하는 전령사 노릇을 마다하고 다부지게 군대를 감시했더라면 그 많은 시민학살 기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선기자들이 베트남전쟁 본질을 파고들었더라면 우리 젊은이들이 남의 해방전쟁에 뛰어들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듣는 이에 따라 거북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게 국가나 민족에 앞서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전선기자들 일이고 숙명이다." - 본문 29쪽

국제언론이 '보이지 않는 제3의 세력'이 내린 지침에 따라 생산한 정보가 만연한 풍토임을 감안해 볼 때 정 기자의 존재는 참으로 소중하다. 정 기자의 활약상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현장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또 자신감을 얻는다. 열심히 현장을 누비면 덩치만 컸지 속빈강정인 국제언론을 능가하는 특종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물론 어려움은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한동안 양놈 기자보다 몇 갑절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현장을 뛴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다. 일이 틀어질 때마다 취재원이 한국 언론을 무시한 탓이라고 주절거리며. 그런 강박감에서 벗어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록 어려움이 없진 않지만 한국이나 아시아 기자도 '뛰는 만큼 통한다'는 매우 단순한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흘린 시간이었다."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

정문태 지음, 푸른숲(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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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펜으로 투쟁한다!

태그:#정문태 기자, #종군기자, #탈리반, #코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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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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