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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초소를 전망대로 개조했다는 규모큰 강화도 전망대
 군인 초소를 전망대로 개조했다는 규모큰 강화도 전망대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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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한국 냄새를 맡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은 호주에서도 실시간으로 한국 방송을 접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오랜만의 한국 방문에 마음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면 호주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전쟁 위험이 없느냐'는 것이다. '김정은'이라는 이름도 정확히 발음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걱정한다. 호주 뉴스에서 요즈음 한반도 정세를 방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전쟁 위험을 수없이 겪으며 살아온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다. 가벼운 웃음으로 이웃에게 답하며 짐을 꾸린다.

한국 비행기에 올랐다. 단체 여행객이 있어 그런지 비행기는 만원이다. 심지어는 아내와도 떨어져 앉아 있어야 할 정도로 빈자리가 없다. 한국말로 하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비행기가 이륙한다. 지금부터 10시간을 혼자 앉아 있어야 한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려고 명상을 시도해 본다. 수도사들은 수많은 날을 명상한다는데, 초보자이긴 하지만 몇 시간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눈을 감는다. 비행기는 가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털털거린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이 오가는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 보기도 한다. 눈을 감으니 평상시에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이 새로이 다가오기도 한다.

나름대로 한 명상 때문인지 생각보다 편하게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친척과 반갑게 소식을 주고받으며 공항을 벗어난다. 차창 밖으로 불빛이 요란하다. 호주에서 보기 힘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여느 복잡한 도시와 다름없이 도로가 막히기도 한다. 공해 때문일까, 눈이 까칠하다. 아내는 목도 칼칼하다고 한다. 호주 시골의 촌사람으로서 겪어야 할 통관의례다.

다음 날 아침 강화도를 가자고 한다. 계획 없이 찾은 한국이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다. 선뜻 동의하고 강화도로 향한다. 자동차가 넘쳐나는 도로를 달린다. 가끔 시드니에 들를 때면 끼어드는 차에 신경이 쓰이곤 했었는데 한국은 호주보다 더 심한 것 같다. 급한 일이 있는지 위험하게 차선을 바꾸며 달리는 자동차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강화도는 인삼 재배지로 나에게 기억되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들렀을 때 인삼이 들어간 비빔밥을 먹었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인삼 재배지가 보이지 않는다. 도로도 잘 포장되어 있다. 옛날 모습을 보기 어렵다. 이곳도 많이 개발되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점심을 먹으려고 찾아간 곳은 갯벌만 펼쳐진 곳에 있는 횟집이다. 비슷해 보이는 횟집이 줄을 서 있다. 횟집 주인들이 기웃거리는 손님에게 손짓한다. 내가 보기에는 똑같은 횟집 같은데 친척은 어느 한 집을 골라 들어선다. 인터넷을 통해 가장 좋은 집을 이미 알아 놓았단다.

푸짐하게 차려진 회를 한 상 받는다. 호주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푸짐한 밑반찬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멍게도 한 접시 있다. 대낮이긴 하지만 소주도 한 잔 마신다. 호주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저렴한 소주 가격이다. 한국이기에 즐길 수 있는 푸짐한 밑반찬과 회를 즐긴다.
식당에서 나오니 갯벌 위에 만들어 놓은 산책로가 있다. 천천히 산책로를 걸으며 주위에 빠져보고 싶다. 그러나 많은 곳을 보여 주려고 분주한 친척에게 내 생각을 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민통선에 들어서다

철책선으로 가로막힌 최전방. 북한땅이 바로 앞에 보인다.
 철책선으로 가로막힌 최전방. 북한땅이 바로 앞에 보인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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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적지는 강화도 전망대다. 북한 땅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커브가 심한 시골길을 달린다. 도로 중간에서 트랙터가 공사를 하고 있다. 나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도로 통제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호주 같으면 100여 미터 앞에서부터 도로 통제를 하고 있을 것이다. 지나치는 자동차도 차선이 하나밖에 없는 도로를 대충 알아서 조심하며 달린다. 호주는 너무 호들갑 떠는 것 같고 한국은 너무 안전에 무심한 것 같다.

전망대 입구에 도착하자 군인이 검문한다. 이곳부터는 민통선이라고 한다. 차에서 내려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간다. 강가를 경계로 긴 철책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민족의 비극을 본다.

차를 주차하고 전망대로 향한 가파른 길을 오른다. 확성기에서 나오는 알아듣지 못할 소음이 귀를 거슬린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북한과 남한 모두 틀어대는 확성기 소리라고 한다. 이곳에 근무하는 군인은 물론 직원들에게도 소음일 것이다. 예전에는 서로 확성기를 틀지 않았다고 하던데...

전망대에 올라가 북한을 본다. 드물게 맑은 날씨라고 한다.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보니 북한이 바로 눈앞에 있다. 동네도 보인다. 너른 평야에는 곡식이 추수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농촌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영되던 개성 공단의 통신 탑도 보인다.

북한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호주로 돌아가서 이웃에게 보여줄 생각이다. 한국 여행을 만류하던 이웃들은 최전방까지 방문한 나의 배짱(?)에 많이 놀랄 것이다.

직원 말에 의하면 지금은 여름이라 들판이 풍성하지만, 겨울은 황량한 모습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추위를 피해 양지바른 바위틈에 앉아 몸을 녹이는 주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헤엄으로도 건널 수 있는 짧은 거리지만 70년 넘게 단절된 한국의 현실을 본다. 비극이다.

문득, 한국은 남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헐뜯는 방송으로 시끄러운 나라의 풍요함은 사상누각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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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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