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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양호와 함께 완도를 찾은 가수 한대수.
 딸 양호와 함께 완도를 찾은 가수 한대수.
ⓒ 완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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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 주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행복의 나라'를 부른 가수. 지난해 59세에 낳은 딸 양호의 교육을 위해 한국 생활 12년을 과감히 버리고 미국 뉴욕으로 떠났던 가수 한대수(69)가 최근 완도에 그 모습을 보였다.

지난 7월 9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동화 '할리우드의 피터와 늑대'에 해설자로 나서 1년만에 딸 양호와 함께 한국땅을 밟은 그가 완도에 나타난 이유는 뭘까.

포크가수 이준희씨와 인연

가수 한대수는 완도가 처음이 아니었다. 군외면 당인리에 음악작업실을 짓고 갯바람공원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공연을 하는 포크가수 이준희씨와의 인연으로, 이씨가 완도로 내려옴에 따라 그를 만나러 온 것이 이번이 4회째란다.

요즘 그는 온통 딸 양호 얘기다. 지난해 뉴욕으로 떠난 것도 딸 양호의 교육 때문이었다. 그는 딸 양호를 위해 기꺼이 한국 교육의 비판론자가 됐다.

"초등학교 3년 다니는데 너무 학생들을 고생시킨다. 사모님들이 자기 자식들 너무 성공하라고 학교 가기 전 읽고 쓰게 만들었다. 지나친 경쟁과 의욕은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단호히 결정했다. 딸 양호를 위해 주입식 암기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생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뉴욕에서 생존할 수 있다면 세계 어디 가서라도 살 수 있다. 뉴욕 교육만 받으면 완도에 와서도 잘 살 수 있다. 하나밖에 없는 울딸을 거칠게 키우는 거죠."

딸로 시작해 딸로 끝나는 진짜 딸바보가 따로 없다.

'행복의 나라로', '물 좀 주소' 얘기를 안 꺼낼 수 없었다. 이제는 뭐 노래역사의 한 대목이 되버려 장황한 그의 얘기가 쏟아졌다.

"행복의 나라로 처음 불렀을 때 한국은 너무 가난했다. 미안하지만 북한보다 가난했고, 필리핀을 선진국으로 보고 있을 때다. 이런 상황에서 행복의 나라를 불렀으니 정권이 좋아했겠나. 자기들 입장에서 동백아가씨, 총각선생님 나오는데 '행복의 나라로 가자는 뭔 개소리야' 라고 할 수 밖에."

결국 그는 정권의 체제 전복을 꾀한다는 억지에 실의에 차 미국으로 떠나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져 갔다. 그런 그를 다시 대중의 관심으로 끌어 올린 것은 1997년 일본에서의 공연이었다. 1997년 일본의 록스타 카르멘 마키가 자신의 후쿠오카 라이브 콘서트에 한 대수를 게스트로 초청했고, 공연이 대성공을 이뤘다.

그 후에야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한 대수의 과거 삶을 다시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국 대중의 무관심에 섭섭할만도 하지만, 그는 한국 최초의 히피답게 '쿨'했다. 또 아내와 딸 양호가 태어나 가장이 되면서 '현실적 히피'가 된 그가 일본에서 재조명을 받아 다시 대중의 관심으로 떠오른 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가수 한대수의 완도 사랑 "자연 해치지 말라"

"KBS, MBC 등 방송과 출판사에서 그때 나이 50세인데 공연하고 책을 출판하자고 난리였다. 내가 뭘 위대하다고? 아무튼 그 정도로 인기가 다시 살아났다."

그가 말하길 일본 공연 이후로 이전 앨범 3개 밖에 없었고, 최근 하나도 없었는데 그 이후 앨범이 16개가 되고. 1년에 한번씩 앨범이 나왔단다. 책도 10권이나 썼다고. '와우' 하고 취재 도중 탄성을 지르는데 오히려 한대수는 "락커가 책 10권이 말이 되냐"고 오히려 허점을 찌른다.

가수 한대수는 완도를 대단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완도는 아름다우면서도 큰 섬이다. 아주 독특하게 육지로도 연결되는 섬으로, 관광객이 바글바글한 것도 아니고. 이대로 생활하면서 육지로 연결되는 편리한 섬이다."
"비교적 자연을 해치지 않는 섬. 그래서 완도를 사랑합니다. 준희씨가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이 전복이다. 고급 음식인데. 전복을 사랑하니까! 완도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전부 있다."

그에게서 완도에 대한 칭찬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이번에도 뉴욕으로 출국 전 딱 2군데만 들렸는데, 자신의 고향 부산 광안리 친구와 완도 이준희 친구란다. 인터뷰 마지막 무렵 한 대수가 완도군민들에게 할 얘기가 있단다.

"완도 군민들에게 부탁하는 싶은 것은 제발 자연을 해치지 말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라. 부산 광안리나 해운대도 고층 빌딩 세우느라 매립해 물 흐름이 달라져 바다를 다 망쳐놨다. 이게 다 돈 때문이다. 돈 벌기 위해서 하는 짓인데 완도군민들은 그러한 것을 공부 잘해서 남의 실수를 배워야 한다. 자연을 건들면 안 된다."

"자연이 계속 아름다우면 문화사업은 절로 따라와"

우리가 생각하기에 개발을 해야 관광객이 온다는 것이 일반적인데, 가수 한대수는 "완도의 자연이 계속 아름다워지고 번창하면 자연적으로 문화사업이 필요하게 되고, 관광발전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매년 포크페스티발을 한다든가, 전복, 미역 등 수산물 사업을 계속하면서 번창하고 음악, 미술, 조각 등 이러한 것들도 계속 진행해 국내는 물론 외국 사람들도 올 수 있게 해주면서 완도 군민들도 화폐 많이 벌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논리다.

1960년대 말 독재 시절 그가 불렀던 '행복의 나라' 가사 내용이 오늘 완도와 완도군민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한대수, #완도, #양호, #뉴욕, #어린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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