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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렇게 자란 벼이삭 만큼이나 영글어가는 아이들 서울세명초에서 2학년 아이들과 함께 학교 뜰을 산책하면서 해맑은 웃음 나누면서 마음 나누기를 하면서
▲ 누렇게 자란 벼이삭 만큼이나 영글어가는 아이들 서울세명초에서 2학년 아이들과 함께 학교 뜰을 산책하면서 해맑은 웃음 나누면서 마음 나누기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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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 남 주자' 교육의 실천가, 김익승 교사 정년 퇴임

"오늘 이 자리에 서니 선생이 되고 나서 한 달 만에 하늘나라로 간 종순이가 생각난다. 그래서 그 아이의 저금 돈을 찾고, 신발, 기타 소지품들을 챙겨 부모님을 찾아가 전달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바로 이웃에 있는 서울대왕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는데, 오늘 바로 그 옆에 있는 서울형 혁신학교인 이곳 세명초에서 교직을 마감하게 되다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교직의 마지막 학교인 소통의 공간 혁신 세명초에서 잘하기 위해 몸부림 쳤지만 그 꿈을 다 이루지 못하여 아쉬움이 크다. 은퇴를 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재능이라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주변에 마련하여 실천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여 아쉽다. 그 동안 세곡동 가까이 살고 있는 제자들과 퇴근길에 막걸리라도 한 잔씩 나누며 지내고 싶었던 소원만은 다행히도 이룬 것 같다."

"교육을 하는 동안 '울 줄 아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리고 '배워서 남 주자'는 교육 지향을 가지고 한 평생을 바쳐왔지만 진짜로 정년퇴임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정년퇴임을 한다는 것은 하늘의 운과 나의 운이 맞닿을 때 가능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내가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 글쓰기 교육을 하면서 참 삶을 가꾸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그런 과정 속에서 권정생 선생님과 김교신 선생님을 알면서 '울 줄 아는 아이들'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교직에서 한 평생을 바쳤다.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은 밝게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슬픔을 모르고 눈물을 모르는 웃음은 거짓 웃음이다.

권정생 선생님은 말한다. '우리 아이들이 밝게 자라야 하지만 슬픔과 어려움, 가슴 아픈 곳, 그늘 진 곳들도 경험하고 살피면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이다.' 나는 그런 권정생 선생님이 살아온 길을 존중하면서 글쓰기를 통하여 우리 아이들을 교육해 왔다. 지금도 옛날 제자들을 만나면 글쓰기를 한다. 1981년 자양초 6학년 13반부터 시작한 <그리움> 공책을 담임한 해마다 만들어, 잊고 지내던 글쓰기의 끈을 이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제자들을 만나면 이 공책에 글쓰기를 한다. 그렇지만 제자들이 쓴 글을 읽어 보면 예전보다 마음들이 메말라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앞으로도 제자들과 함께 이웃들과 함께 계속 글쓰기를 할 것이다."


김익승 교사의 퇴임 인사말 '배워서 남 주자'와 '울 줄 아는 교육'을 평생의 교육 철학으로 삼고 참교육을 해 왔다는 김익승 교사
▲ 김익승 교사의 퇴임 인사말 '배워서 남 주자'와 '울 줄 아는 교육'을 평생의 교육 철학으로 삼고 참교육을 해 왔다는 김익승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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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승 교사가 정년 퇴임을 맞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는 1975년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서울의 대왕초등학교로 발령을 받고 난 뒤, 이 학교까지 10개째 초등학교를 거치면서 줄곧 '참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온몸으로 실천해왔다. 

김익승 교사는 글쓰기 교육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사협의회와 전교조 등 교직단체 활동에도 많은 정열을 쏟으면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참교육 실천 활동을 해 왔다.

후배 교사들의 축하 공연 '김익승 샘이 좋다'라고 송별사를 하는가 하면 또한 앨범을 만들고, 시를 낭송하고, 음악 굥연을 하면서 그의 정년퇴임을 축하해 주었다.
▲ 후배 교사들의 축하 공연 '김익승 샘이 좋다'라고 송별사를 하는가 하면 또한 앨범을 만들고, 시를 낭송하고, 음악 굥연을 하면서 그의 정년퇴임을 축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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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교장이나 교감 등 학교 관리자들도 그 식구들이나 교직원 학부모, 학생들을 모아서 퇴임식을 하는 교직 문화가 점점 사라져 가는 마당에 그 많은 세월을 오직 '참 삶이 어떤 것인가'를 찾아 꾸준히 실천해온 그를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하여 후배 교사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후배 교사들은 축시를 써서 낭송하는가 하면, 축하 공연도 하고,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써서 전달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김교사가 살아온 교사로의 길을 동영상에 담아서 회고를 하기도 하고, 접이식 앨범으로 만들어서 기념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등 정성을 다해 준비하여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정년 퇴임식에서 배영직 교장은 "김익승 선생님께서 혁신 세명초를 개교할 때 부임해 오셔서 '공감, 어울림, 기다림'의 세명 슬로건을 만들고, 백창우 선생과의 개인적 인연까지 동원하여 서을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가로 인정받을 정도로 훌륭한 교가를 만드는데 앞장 서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워서 남 주자'는 교육 철학을 앞세워 혁신학교의 기틀을 다지는데 선배 교사로서 중심적 역할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축사를 하였다.

축사를 하고 있는 제자 노현욱씨 김익승 선생님의 가르침 '배워서 남 주자'를 실천하기 위하여 자신도 교육자의 길을 가고 있다고 소개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 축사를 하고 있는 제자 노현욱씨 김익승 선생님의 가르침 '배워서 남 주자'를 실천하기 위하여 자신도 교육자의 길을 가고 있다고 소개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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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1981년 6학년을 맡을 때 제자였던 노현욱씨는 "'배워자 남 주자'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줄곧 '나도 가르치는 자리에 서야겠다'라는 신념을 굳히고 교원대를 졸업하고 더 공부를 하여 '배워서 남 주자'를 실천하기 위하여 '기독교 교육'을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소개를 하면서 김교사와 공부하던 시절을 회고하며 당시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들려주기도 하였다.

이어서 후배 교사들이 '익승 샘은 참 좋다'라는 말로 김익승 교사가 그 동안 동료, 후배 교사들과 맺어온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김교사의 교육을 되돌아보기도 하였다.

백창우의 축하 공연 세명초 교가를 작곡한 공로를 기려 감사패를 받기도 한 어린이 노래 운동가이자 가수인 백창우씨가 김교사의 정년퇴임 축하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 백창우의 축하 공연 세명초 교가를 작곡한 공로를 기려 감사패를 받기도 한 어린이 노래 운동가이자 가수인 백창우씨가 김교사의 정년퇴임 축하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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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게익 자르기 김익승 교사와 가족들, 학교장 등이 기념 케익을 자르면서 정년 퇴임 축하의 마음을 모으기도 하였다.
▲ 축하 게익 자르기 김익승 교사와 가족들, 학교장 등이 기념 케익을 자르면서 정년 퇴임 축하의 마음을 모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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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가수이면서 어린이 노래 운동을 하는 백창우씨가 서울세명초 교가를 작곡하게 된 사연을 소개하면서 김교사와 과거 EBS에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방송 출연을 하다가 그만두게 된 사연 등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백창우씨는 김교사의 퇴임을 축하하면서 자신이 작곡한 몇 곡을 열창하여 참가자들의 큰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글쓰기를 통해 '울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교육은 혁신 교육의 한 방향이다

김익승 교사는 교감이나 교장 등 관리자의 길을 기웃거리지 않고 평생을 평교사로 살면서 글쓰기 운동에 미쳐서 살아왔다. '배워서 남 주자', '울 줄 아는 아이들로 키우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실천해왔다. 김익승 교사는 이오덕 선생이 앞장서서 벌여왔던 '(사)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의 총무(1989~1992년), 사무총장(2007~2008년)과 이사장(2009~2010년)을 맡아 한국 글쓰기 교육 운동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

그는 1985년 이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 가입하여 30년 넘도록 글쓰기 교육 운동에 매진하면서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 아이들의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한 학기에 한 번씩 문집으로 엮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교육을 지속해 왔다.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삶인지'를 터득하고 나누는 교육을 퇴임하는 그날까지 거의 거르지 않고 문집을 내는 활동을 꾸준히 실천해 온 교사이다. 학급 문집을 만들고 나서 그걸 나누어 읽으며 마음 나누기를 통하여 세상을 바로 보고, 남의 어려움을 따뜻한 가슴으로 공감하여 때론 울기도 하며,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해 주며, 더불어 함께 사는 마음 가꾸기 교육을 꾸준히 실천해 온 것이다.

'배워서 남 주자' 마지막 학급 문집  서울세명초에서1학년 담임을 끝으로 정년을 하면서 만들어낸 마지막 문집 '배워서 남 주자'
▲ '배워서 남 주자' 마지막 학급 문집 서울세명초에서1학년 담임을 끝으로 정년을 하면서 만들어낸 마지막 문집 '배워서 남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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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을 하는 이번 학기에도 1학년 아이들을 담임하면서 여름 방학 직전 마지막 문집 '배워서 남 주자'를 만들어 나누었다. 이로써 학교 교실에서의 그의 글쓰기 교육 운동은 끝이 나지만 퇴임을 한 되에도 그의 글쓰기 교육 운동은 과거의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하였다.

한편 이날 김익승 교사의 정년퇴임식 중간에 부인과 딸, 외손자 등의 식구들이 잠깐 참석을 햐였다. 그 때를 이용하여 부인 기경애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평범하지 않은 초등학교 평교사 남자를 남편으로 두어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떠셨어요?
"그렇지요. 우선은 이 사람이 강원도 평창 사람이고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시댁도 그렇고 이 사람과 문화 차이 때문에 힘든 때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은 다 뛰어 넘었지요. 글쓰기와 전교조 운동을 하면서 거기에 집착을 하다보니까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때론 서운한 부분들이 있어 괴로워 하는 것을 보면 옆에 있는 저도 힘들고 괴로울 때가 있기도 하였지요.

전교조 결성 당시에는 각종 집회에 함께 나가기도 하고, 전교조 가입 때문에 직위해제를 당하고, 경찰이 찾아오고, 주변 사람들이 많은 걱정을 하면서 말리기도 했죠. 그럴 때는 저도 남편과 같은 심정으로 많은 갈등을 했지요. 그렇지만 남편이 가는 길을 말리지는 않았어요. 큰 힘이 되지 못했을지 몰라도 항상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노력은 했지요."

- 교직에 있는 남자라면 남들도 하는 교감이나 교장이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제 주변에 있는 분들 중에서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 오히려 잘못하여 좋지 않은 소리를 듣는 것을 적지 않게 보았어요. 제 남편이지만 평교사로서 저렇게 신념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지요."

- 남편이 아닌 교사로서 김익승을 어떻게 평가하고 싶으세요?
"집념이 강하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은 참 좋게 보고 있어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가시밭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왜 저리 힘들게 사나?'하고 말리기도 해 보았지요. 자기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때론 건강까지 잃어가면서 순탄하지 않은 길을 달려가는 김익승 선생님은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 한 교사로서 존경스럽게 보고 있어요. 그리고 참 정이 많은 사람이어요. 6학년 담임을 맡아서 아이들 졸업을 시키고 나면 못내 섭섭해서 밤잠을 못 이루곤 해요. 그래서 요즘도 많은 제자들이 찾아오고 그런가 봐요."

- 김교사가 퇴임을 하고 나면 앞으로 두 분이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신지요?
"지금과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요. 남편과 함께 그 동안 집중하지 못했던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면서 남편이 하고 싶어 하는 글쓰기는 물론 목공 일을 잘 배워서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며 살아야지요."

김익승 교사가 정년퇴임식을 하던 날 머리가 벗겨지고 주름도 많아서 김교사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제자들 20여 명이 몰려와서 눈물의 퇴임식을 하는 것을 보며,  김익승 교사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웅변해 주고 있었다. 서울교대 동기이자 친구이며 교육운동 동지인 정기훈 교사(전교조 전 초등위원장) 등이 무대에 올라가서 '늙은 교사의 노래'를 열창한다.

1970년대 햇병아리 교사들이 유신과 5공, 6공을 거치면서 교육민주화와 참교육을 외치며 전교조 합법화를 넘어 혁신학교 운동까지 함께 했던 노병들은 이제 물러가는구나.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한국 교육 혁신, 그 산 증인들의 어깨동무 너머로 흘리는 눈물이 밑거름이 되어 한국 교육은 크게 혁신되어 그들이 그리던 참교육 세상은 성큼성큼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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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초등위원장,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을 거쳐 현재 초록교육연대 공돋대표를 9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혁신학교인 서울신은초등학교에서 교사, 어린이, 학부모 초록동아리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초록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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