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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문흥동 ‘천·지·인 문화 소통길’을 관람객들이 느릿느릿 산책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문흥동 ‘천·지·인 문화 소통길’을 관람객들이 느릿느릿 산책하고 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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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온다'는 절기, 처서가 지났다. 처서(處暑)는 24절기 중 14 번째 절기로 '더위를 처분한다'는 의미이다. 여름이 흔들리고 있다. 그 틈새를 비집고 가을이 서서히 들어오고 있다. 여름내 극성을 부리던 모기들도 입이 삐뚤어질 때가 된 것이다. 계절의 순환이 느껴지는 시기이다.

이때쯤이면 여름 내내 지쳐 있었던 몸과 마음을 치유해줄 아름다운 숲길이 걷고 싶어 진다.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낭만가도가 그리워진다. 어디로 갈까. 한국에서 가장 걷고 싶고,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선정된 바 있는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광주광역시에도 담양의 그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길이 있다. 키 큰 메타세쿼이아 나무와 그 그늘 아래서 키 작은 보라색 맥문동 꽃이 환상적인 콜라보 무대를 펼치고 있는 길이 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끊임이 없다’ 하였던가!
 ‘길은 길에 연하여 끊임이 없다’ 하였던가!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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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변 후미진 길, 걷고 싶은 명품길로 재탄생

광주광역시 북구 문화동 '시화마을'에서 문흥동을 거쳐 용봉동 비엔날레 전시관까지 총연장 4.2km의 '천·지·인 문화 소통길'이 그곳이다. 문화소통길은 광주광역시 북구청에서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길이다. 무등산 정상의 세 봉우리 천·지·인왕봉에서 길의 이름을 빌려 왔다.

원래 이 길은 문흥지구와 문화동 사이를 관통하는 호남고속도로변의 완충녹지 공간으로, 불법 쓰레기 투기와 농작물 경작으로 지저분하고 후미진 길이었다. 악취와 들끓는 해충으로 생활 민원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1999년에 불법 경작과 쓰레기 투기를 막고자 한 독지가로부터 7년생 메타세쿼이아 나무 천 여 그루를 기증받아 조성된 길이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삶을 욕망하고 있는 메타세콰이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삶을 욕망하고 있는 메타세콰이어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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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이 지난 지금, 그때 심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은 30여 미터 높이로 자라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태양의 삶을 욕망하고 있다. 자로 잰 듯이 반듯반듯한 모범생들의 모습이다. 오와 열이 잘 맞춰진 병정들이 부동자세로 서있다. 길 중간중간에 쉼터와 각종 운동시설·야생화 단지를 조성해 놓았다. 어둡고 후미진 길에서 명실상부 광주에서 가장 걷고 싶은 명품길로 재탄생하였다.

메타세콰이아 밑동의 갈색과 맥문동의 보라색 꽃·초록 이파리. 아름다운 동행이다
 메타세콰이아 밑동의 갈색과 맥문동의 보라색 꽃·초록 이파리. 아름다운 동행이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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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문동'과 '메타세쿼이아'의 환상적인 콜라보 무대

문화소통길 구간 중에서도 문화동 육교 부근에서 오치동 쌍굴다리 까지 약 1.4km 구간은 지금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울 때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사이 맥문동이 활짝 피어나 온통 보랏빛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보라색 물감통을 엎지러 놓은 듯하다. 길 양옆 하늘에서는 햇볕을 받은 메타세쿼이아 바늘잎들이 녹색 물감이 되어 뚝뚝 떨어지고, 바닥에는 맥문동이 보라색 카펫을 깔아 놓았다. 가까이 다가서 보니 가느다란 꽃자루에 작은 꽃잎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보라색 초콜릿을 듬뿍 바른 막대 사탕을 수도 없이 꽂아 놓은 듯하다.

보라색 초콜릿을 듬뿍 발라놓은 막대 사탕 같은 맥문동 꽃
 보라색 초콜릿을 듬뿍 발라놓은 막대 사탕 같은 맥문동 꽃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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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세쿼이아 굵은 기둥의 짙은 갈색과  맥문동의 보라색 꽃·초록의 이파리들이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주고 있다.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 사는 모습도 이래야 되지 않을까.

꽃들이 묻고 있다. 너는 한 번이라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배경이 되어 준 적이 있었느냐고. 늘 중심에 서 있으려 애쓰며 살고 있지 않느냐고. 정말 그랬구나. 안도현 시인의 고백처럼.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메타세콰이어 바늘잎의 녹색과 맥문동의 보라색 꽃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메타세콰이어 바늘잎의 녹색과 맥문동의 보라색 꽃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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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길은 청소년 수련관을 찾는 사람들과 인근 문흥지구 주민들은 물론이며 멀리 외지에서 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셔터를 마구 눌러 댄다. 모델들은 여기저기서 한껏 포즈를 취하며 희희낙락 들떠 있다. 자연이 주는 늦여름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바로 건너편 고속도로의 현기증 나는 속도와 날 선 소음마저도 이곳에서는 '음소거 모드'를 취한다. 여름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는 매미들은 막바지 목청을 한 껏 높여 보지만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알아차린 듯 곧바로 데시벨을 낮춘다. 시간은 기어이 이별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담장 건너 고속도로의 날 선 소음도 이곳에서는 ‘음소거 모드'가 된다
 담장 건너 고속도로의 날 선 소음도 이곳에서는 ‘음소거 모드'가 된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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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도 피어 있다. 상사화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이란다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도 피어 있다. 상사화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이란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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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문동은 백합과 여러 해 살이 풀이다. 꽃보다는 약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반 그늘 혹은 햇볕이 잘 들어오는 나무 아래서 잘 자란다.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특히 키 큰 메타세쿼이아 나무와는 상대적이라서 더욱 조화롭다. 겨울에도 푸른 잎이 남아 있는 생명력 강한 상록 식물이다. 뿌리가 보리와 비슷하고 잎은 부추처럼 생겼으며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기 때문에 '맥문동(麥門冬)'이라 부른다.

키 작은 풀, 맥문동은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9월 초순이 되면 화려한 보라색 꽃을 떨군다. 늦여름 맥문동의 보랏빛 향기를 즐기려면 서둘러야 한다. 곧 서늘한 9월이 다가온다.


태그:#맥문동, #메타세콰이너, #보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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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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