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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재협상을 위한 한미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 특별회기가 22일 서울에서 열렸다. "FTA 이후로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가 2배로 늘어났으므로 시정하자"는 미국 정부의 제안에 따른 회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어로 <불구가 된 미국 -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인가>로 번역된 저서에서 "어떻게 해야 다른 나라에 빼앗긴 우리의 일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 뒤 "그 답은 우호적인 교역 파트너들과 더 나은 무역협정을 맺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이런 트럼프의 인식이 양국을 FTA 재협상의 장으로 끌어냈다.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하는 모습은, FTA가 한국에 큰 이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런 느낌은 FTA 지지 세력인 대기업들의 인식에서도 드러난다. 

일례로, 2015년 5월 27일 현대경제연구원이 간행한 <현안과 과제-한·EU, 한미 FTA의 성과 비교 분석>이란 보고서에서는 "FTA 발효 이후 미국 시장에서 6개 품목의 비교우위가 유지되는 가운데, 4개 품목의 CA 지수(산업별 비교우위지수)가 상승하여 전반적인 수출경쟁력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FTA 활용도를 높이고, 각종 지원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연구원의 공식 의견이 아닌 연구자의 견해임을 밝혀둔다"는 단서를 달아놓았다. 하지만, 연구소 명의로 간행됐으므로 연구소의 인식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정부도 그렇고 위의 보고서도 그렇고, FTA의 손익을 무역수지로만 계산하려 한다. 하지만, FTA는 상품무역뿐 아니라 서비스와 투자 분야까지 망라하고 있다. 미국이 투자 분야는 부각시키지 않는 것은 이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기 때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은 일반 제조업은 약하지만, 군수산업과 금융업은 막강하다. 그래서 금융투자 분야에서는 FTA가 득이 되면 됐지 실이 되지는 않는다. 미국이 이 방면에서 압도적 우세를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가 있다.

미국 기업-한국 정부 소송 가능하게 만든 ISD 제도

'외환은행 먹튀 논란'으로 유명한 미국 투자기업, 론스타 펀드가 바로 그 사례다. 직접적으로 한미 FTA 규정을 법적 근거로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한미 FTA에 규정된 장치와 똑같은 것을 활용해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론스타를 보면, 2010년 타결된 한미 FTA가 1882년 체결된 조선·미국 수호통상조약보다 훨씬 더 미국 중심적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19세기 후반의 조상들이 외교를 못했다고 비판하지만, 실은 우리가 훨씬 더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론스타(Lone Star)는 텍사스주에 본사를 둔 투자기업이다. Lone Star는 그 주의 별명이다. 텍사스주의 깃발에도 별이 하나만 외롭게 그려져 있다. '외로움'은 텍사스주의 역사에도 묻어 있다. 본래 멕시코 영토인 텍사스 땅으로 19세기 초반에 이주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미국인들은, 1836년 알라모 전투에서 미국 정부군의 지원도 없이 멕시코군과 '외롭게' 싸우다가 참패를 당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은 지금도 텍사스 인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텍사스주의 공식 깃발.
 텍사스주의 공식 깃발.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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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텍사스에서 1991년 설립된 론스타는 '멕시코 영토'가 아닌 '한국 영토'로 진출했다. IMF 금융위기 직후인 1998년,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로부터 5천억 원 이상의 부실 채권을 사들이면서 한국 영토에 발을 내디뎠다. 론스타가 인수한 한국 기업 중에 대표적인 것은 한빛여신전문·극동건설·한국외환은행(주) 등이다.

외환은행은 정부가 설립한 특수은행이었다가 1989년 일반은행으로 전환됐다. 무역 촉진을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나중에는 일반 은행으로서 훨씬 더 유명해졌다. 이런 외환은행을, 론스타가 2003년 자회사 LSF-KEB를 내세워 1조 4천억 원 정도의 싼값에 매수했다.

그리고 2012년 약 4조 원에 하나금융지주에 매도함으로써 2조 6천억 원 정도의 시세 차익을 남겼다.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성장한 외환은행을, 우리 국민보다는 론스타 투자자들의 고수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다가 거대 차익을 남기고 팔아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먹튀 논란을 일으킨 론스타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거대한 시세 차익을 얻어놓고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2015년 5월 15일 소송을 걸었다. 외한은행 인수 이후 한국 정부의 잘못으로 손해를 봤다는 이유에서다. 소송 가액은 약 5조 원이다. 제소한 곳은 워싱턴에 있는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다. ICSID는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는 국제부흥개발은행 산하 기관이다.

앞으로는 이런 광경을 자주 보게 될지 모른다. 한미 FTA를 통해 그게 가능해졌다. 한미 FTA 제11장 제2절 제목은 '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 해결'이다. ISD(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로 불리는 이 제도는, 투자유치국의 정책이나 행정 처분 등으로 손실을 입었다고 판단될 경우에 투자자가 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다. 이런 장치가 있기 때문에, 론스타처럼 한국 정부를 만만히 보는 외국 투자자들이 ISD 소송을 남발해 한국 정부를 훼방할 우려가 있다.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불만을 품은 이유는 이것이다.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빨리해줬다면 2007년에 영국계 은행인 HSBC(홍콩상하이은행)에 외환은행을 매각할 수 있었는데,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늦게 해주는 바람에 HSBC와의 거래가 무산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한테서 5조 원을 받아내려 하는 것이다.  

2015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건 론스타의 행위는 가만히 따져보면 상당히 배은망덕한 일이다. 외환은행 인수 당시에 은행법 제15조 제1항에 따르면, 동일인이 금융기관 전체 주식(의결권 있는 주식)의 10% 이상을 매입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의 배려로 론스타는 의결권 있는 주식의 51%를 매입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외자 유치를 명분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 한국 정부의 배려로 싼값에 외환은행을 차지해놓고도, 한국 정부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걸었으니 '배은망덕'이란 표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조미수호통상조약보다 더 강력한 한미 FTA


6월 30일 오전(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 언론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6월 30일 오전(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 언론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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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가 제기한 ISD 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것이 어떻게 끝나든 간에, 유사한 소송이 앞으로 얼마든지 쏟아져 나올 수 있다. 한미 FTA가 그런 길을 활짝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막강한 미국 투자기업들이, 한국 정부의 공익 정책 때문에 손실을 봤다며 이런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가 공익 목적으로 기업 활동에 제약을 가하면 한국 기업들은 말없이 넘어갈 수 있지만, 미국 기업들은 ISD 규정 등을 근거로 제동을 걸고 나설 것이다. 그러면 미국 정부는 'FTA로 빼앗긴 일자리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자국 기업을 후원하려 할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1836년의 텍사스처럼 외롭게 싸우는 게 아니라, 든든한 후원자를 배경에 두고 여유롭게 싸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 정부가 공공을 위한 경제정책이나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데도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한국 정부는 국내에 진출한 외자 기업들의 눈치부터 살피게 될 것이다. 또 상품무역으로 얻는 흑자보다 훨씬 큰 적자가 금융투자 분야에서 확산될 것이다. 론스타처럼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어놓고도, 추가 이익을 얻고자 ISD를 활용하는 사례도 없지 않을 것이다.

22일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끝낸 뒤의 브리핑에서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 효과에 대해서도 상품·서비스·투자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양측이 상호 호혜적으로 이익 균형이 되고 있음을 (미국 대표단에)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론스타 같은 투자기업들이 벌어가는 수익을 온전히 계산할 경우에도 한·미 양국의 이익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이 상품무역에서 얻는 이익이 투자 분야에서 생기는 손실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1882년에 미국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선 시장을 개방시켰다. 미국은 조선에서 활동하게 될 미국 기업과 미국인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조약 제4조에 치외법권을 두었다. 미국 기업이 형사사건이나 민사사건에서 피고가 될 경우에 조선 법원이 아닌 미국 영사의 재판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자국 기업이 조선 정부의 재판을 받지 않도록 보호했다.

그런데 한미 FTA에서는 미국 기업이 훨씬 더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되었다. 단순히 한국 법원의 재판을 피하는 수준이 아니다.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 수준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한미 FTA 하에서 미국 기업은 투자계약 당사자가 아닌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고, 한국 정부와 대등한 힘을 가진 상태에서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고 한국 정부와 싸울 수 있다. 

이렇게 한미 FTA 하의 미국 기업은 자국 정부처럼 막강한 힘을 갖고, 한국 내 사업 파트너뿐 아니라 한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이 '복제판 미국'이 되어 한국 정부를 주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한국 기업도 ISD 조항을 이용할 수 있지만, 한국 기업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대등한 힘을 갖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게다가 한국 기업이 한국 법원을 놔두고 굳이 한국 밖으로 나가 ISD 조항을 활용할 필요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ISD는 사실상 미국을 위한 장치다. 미국 기업이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갖도록 만든 장치나 다름없다.

일개 투자기업인 론스타가 거래 당사자도 아닌 한국 정부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 명칭은 '외로운 별'이지만, 론스타는 결코 외롭지 않다. 하나의 별이 아니라 '50개의 별'을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이다.

론스타뿐 아니라 다른 미국 투자자들도 성조기를 배경으로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ISD만 잘 활용하면, 이익 창출에 방해가 되는 한국 정부를 겁주고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한국의 경제 환경은 미국 투자자들에 유리한 쪽으로 바뀌어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태그:#한미 FTA, #ISD, #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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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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