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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時)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전 남방 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원권 한 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퇴근길의 뻑적지근한 매연 가루, 기름칠한 피로
새벽 1시 병원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시
반지하 연립의 스탠드 켠 한숨처럼
하늘로 오르지도 땅으로 꺼지지도 못해
그래서 더 아찔하게 버티고 서 있는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

절간 뒷간의 면벽한 허무가 아니라
지하철 광고의 한 문장으로 똑떨어지는 고독이 아니라
사람 사는 밑구녁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들 끌어안고 벼리고 달인 시
비평가 하나 녹이진 못해도
늙은 작부 뜨듯한 눈시울 적셔주는 시
구르고 구르다 어쩌다 당신 발 끝에 차이면
쩔렁!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나는 내 시가
동전처럼 닳아 질겨지면 좋겠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책 표지
▲ 서른, 잔치는 끝났다 책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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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집어든 이라면 십중팔구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제목에 끌렸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독자가 나이 서른을 지났거나, 지나고 있거나, 앞두고 있으리란 점에서 이 제목은 매우 영리하다. 모두가 겪어냈으며 겪어낼 게 분명한 서른이란 나이에 대해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하는 이 시집만큼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나온 작품을 나는 얼마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출간 21년 만인 지난 2015년 개정판이 나온 보기 드문 스테디셀러 시집이다. 최영미 시인이 1994년 발표한 작품으로 어느덧 나이 쉰이 된 시인은 이를 '축복이자 저주이며 끝내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시집'이라고 고백한다.

나아가 그녀는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나 혼자 끄적인 시가 아니'라며 '함께 겪은 그대들의 열망과 좌절이, 변화한 사회에 안착하지 못한 세대의 파산한 꿈이 내 몸을 빌려 나온 것'이라고 덧붙인다. 요컨대 <서른, 잔치가 끝났다>는 시인의 눈을 통해 본 시대의 기록이다.

그녀가 등단하고 이 시집을 발표하기까지, 그러니까 1992년부터 1994년까지의 한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북한에선 김일성이 죽었다. 군부독재는 역사의 전면에서 자취를 감췄으며 온 국민이 중산층의 꿈을 꾸는 시대가 열렸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급격한 경제성장의 후폭풍이 몰려왔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같은 그룹이 데뷔해 십대의 우상으로 자리했다. 바야흐로 기존 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바쁘게 지나가던 이 시기에 나이 서른 즈음을 지나고 있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에서 노래한 것처럼 한 시절 꿈꾼 것들과 '매일 이별하며', '점점 더 멀어져'가는 청춘들의 모습. 그와 같은 인식과 감상이 최영미의 시집에서도 곳곳에서 읽힌다.

그녀에게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치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 힘든 노동'(혼자라는 건) 같은 고단함으로 표현된다. 그럼에도 그녀의 곁엔 새 사람도 새 사랑도 없다. 한때 그녀 곁에는 '살아서 팔딱이던 말 / 살아서 고프던 몸짓'이 있었으나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 입안 가득 고여오는 / 마지막 섹스의 추억'(마지막 섹스의 추억)에서 알 수 있듯 지나간 감상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나이 서른의 현실은 고단하다. 시인의 눈에 비친 '오전 11시 지하철은 / 실업자로 만원'(지하철에서 4)이다. '아이든 집이든 서푼 같은 직장이든 / 어딘가 비빌 데가 / 있다는 건 좋은 일(라디오 뉴스)'이지만 그와 같은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무어 더 볼 게 있다고 / 무어 더 바랄 게 있다고 / 사람 사는 이 세상 떠나지 않고 / 아직도 / 정말 아직도 집을 짓는'(새들은 아직도……) 새들을 바라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제의 '잔치는 끝'이 나버렸고 시인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서른, 잔치는 끝났다) 하고 자조한다.

이제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르고 주변을 둘러보면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식당 입구에 줄 없이 서 있'(살아남은 자의 배고픔)는 것이다. 그러니 타협은 불가피하다. '네 몸 안엔 이미 다른 피가 고여 / 녀석과 간음할 생각으로 / 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 // 칼이 칼집에 익숙해지듯 / 자기 안의 욕망에 익숙해지듯 / 네 안의 어둠에 익숙해지리라'(어떤 게릴라)고 시인은 속절 없이 백기를 든다.

시인의 눈에 비친 지하철 풍경을 보자. '밥벌레들이 순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지하철에서 1)처럼 여겨진 바로 그 곳으로 이제 시인이 직접 들어선다. 그곳에서 그녀는 '얼굴 없는 시간에 쫓겨 / 헤어무스 땀내 방귀 정액의 끈끈한 / 주소 없는 냄새들에 떠밀려 / 이리 흔들 저리 뒤뚱'하다가는 '나 혼자만 유배된 게 아닐까 / 지상에서 지하로 / 지옥철로 밀려난 게 아닐까 / 이런 의심 날마다 출근하듯 밥 먹듯 가볍게 해치우며 / 가볍게 잊어버리며'(지하철에서 2) 직접 그 곳을 그 시간을 살아간다.

시집을 낼 당시 막 서른을 넘어선 시인에게 서른 즈음의 풍경은 이처럼 막막한 고단함이었다. 오늘 서른에 당도한 청춘들에게 서른은 과연 어떤 것일까. 개정판이 나온 2015년, 나는 서른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바로 그 즈음 정말 잔치는 끝나버린 것도 같다. 그렇다면 잔치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돌아보면 삶이 있다.

슬픈 카페의 노래

언젠가 한번 와본 듯하다
언젠가 한번 마신 듯하다
이 까페 이 자리 이 불빛 아래
가만있자 저 눈웃음치는 마담
살짝 보조개도 낯익구나

어느 놈하고였더라
시대를 핑계로 어둠을 구실로
객쩍은 욕망에 꽃을 달아줬던 건
아프지 않고도 아픈 척
가렵지 않고도 가려운 척
밤새워 날 세워 핥고 할퀴던
아직 피가 뜨겁던 때인가

있는 과거 없는 과거 들쑤시어
있는 놈 없는 년 모다 모아
도마 위에 씹고 또 씹었었지
호호탕탕 훌훌쩝쩝
마시고 두드리고 불러제꼈지
그러다 한두번 눈빛이 엉켰겠지
어쩌면……
부끄럽다 두렵다 이 까페 이 자리는
내 간음(間飮)의 목격자


뒷담화를 간음으로 표현했다. 가만 보면 한자가 다르다. 오래 생각했으나 끝내 이유를 찾지 못했다. 무엇때문일까. 아는 이는 댓글로 달아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창비 / 최영미 지음 / 2015. 10. / 8000원>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지음, 창비(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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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