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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이 시작된 곳 스바이포(西柏坡)에 가다

섭현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와 기차를 이용하여 밤늦게 스자좡으로 올라 왔다. 빗방울은 슬슬 떨어지고 배낭은 등짝에 무겁게 매달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스바이포로 출발하기 위하여 스자좡 북역 앞 터미날 근처에 호텔을 잡으려 했으나 외국인이 주숙할 수 있는 호텔이 없었다. 밤 12시가 다 되었다. 배낭여행이라 일정이 되는대로 자유롭게 다닌다고 숙소를 예약을 안 했더니 난감했다.

택시를 잡아서 외국인이 주숙 가능한 호텔로 가자고 했다. 휘황찬란한 최고급 5성급 호텔에 데려다 주었다. 이것이 아닌데 하면서 숙박료를 물어보니 하룻밤에 1200위안을 달라고 했다.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저렴한 호텔을 찾아달라고 기사에게 부탁을 했다. 기사는 여러 곳에 전화를 하더니 빈방이 없다는 둥 외국인이라 안 된다는 둥 저렴한 호텔을 찾느라 애를 썼다. 어찌어찌해서 300위안 하는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애써준 기사에게 감사했다. 중국 여행을 하면서 행정적인 면에서는 다소 관료적이고 딱딱한 인상을 받았으나 대부분 개개인 중국인들은 친절했다.

다음날 아침 택시로 스자좡 북터미널(石家庄客运北站)에 도착하여 6시 50분에 버스를 이용하여 스바이포(西柏坡)로 향했다. 한국인들은 스바이포를 잘 모르지만 중국 교과서에 나오는 등 중국 5대 혁명 기지 중 하나이다. 버스는 처음에는 고속도로를 달리었다. 나중에는 점점 산들이 둘러싸인 오지로 들어갔다. 살길로 들어가자 검은색의 태양광 발전 설비가 넓은 바위산을 둘러싸고 있었다. 중국도 환경문제를 생각하여 본격적인 친환경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하는 듯했다.

스바이포로 가는 길가의 바위산에는 태양광 발전이 뒤덮고 있다. 중국도 친환경 재생 에너지에 관심을 갖고 쓸모없는 바위산에 어머어마한 태양광 발전을 건설하고 있다.  산위에 건설된 태양광 발전은 다른 지역에서 자주 목젹되었다. 우리도 골프장 짓지 말고 태양광 발전을 짓자
▲ 바위산을 뒤덮은 태양광 발전 스바이포로 가는 길가의 바위산에는 태양광 발전이 뒤덮고 있다. 중국도 친환경 재생 에너지에 관심을 갖고 쓸모없는 바위산에 어머어마한 태양광 발전을 건설하고 있다. 산위에 건설된 태양광 발전은 다른 지역에서 자주 목젹되었다. 우리도 골프장 짓지 말고 태양광 발전을 짓자
ⓒ 박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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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2시간 반 정도 달려서 호수가 아름답게 펼쳐진 스바이포(西柏坡) 마을에 도착했다. 앞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고 뒤에는 산자락이 버티고 있는 언덕에 조성된 작은 마을이었다.

이곳 스바이포는 1948년 5월에서 1949년 3월까지 중국공산당의 중앙본부와 중국인민해방군 총부가 위치해 있었던 곳이다. 이 마을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마을에서 신중국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이 없다'는 중국에서 아주 유명한 노래가 있는데 신중국은 바로 이곳 작은 마을인 스바이포에서 출발했다. 일제에 항거하던 중국 공산당이 1945년 일본이 물러가자 부패한 구시대의 국민당 정부와 본격적인 내전을 벌였다. 농촌지역을 기반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던 공산당은 점점 북경을 향해 압박해 들어갔다. 스바이포는 스자좡과 가깝고 스자좡에서 베이징까지는 단숨에 진격할 수 있으면서 뒤로는 산자락이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스바이포 정신'은 무엇인가?

마오쩌둥은 이곳 스바이포에서 북경을 점령하면 어떤 중국을 건설할지 구상을 했다고 전해진다. 스바이포 입구 산자락에는 '이곳에서 신중국이 시작되었다'는 큼지막한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 시골구석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대오를 지어서 모여들었다. 대부분 전세버스를 이용하여 단체로 왔다. 학생들도 많고, 제복이나 단체복을 입은 분들, 직장과 모임과 단체에서 온 듯한 남녀노소 많은 분들이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떼를 지어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혁명의 성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스바이포 혁명기지에  학생, 직장, 공무원 등 단체와 개인으로 온 중국인들이 모여들었다.
▲ 스바이포 혁명기지를 찾은 중국인들 스바이포 혁명기지에 학생, 직장, 공무원 등 단체와 개인으로 온 중국인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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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이나 주언라이 등 중국 지도자들의 머물던 집과 사무실 등도 잘 보전되어 있었다. 작은 침대와 작은 책상이 하나 놓여있는 마오쩌둥이나 주언라이의 침실 등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감동하는 모습이었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들이 아주 검소하게 살아온 모습을 보면서 다 자기들과 똑같다고 동일시하면서 존경하는 듯하였다.

스바이포 기지 작전실은 작지만 이곳에서 마오쩌둥, 주언라이 등 중국의 지도자들이 회의를 하면서 혁명정신으로 승리를 가져온 곳이다. 나이 지긋하신 여성분들도 찾아와서 거수경례를 붙이고 묵념을 하였다.
▲ 스바이포 기지 작전실 스바이포 기지 작전실은 작지만 이곳에서 마오쩌둥, 주언라이 등 중국의 지도자들이 회의를 하면서 혁명정신으로 승리를 가져온 곳이다. 나이 지긋하신 여성분들도 찾아와서 거수경례를 붙이고 묵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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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앙에는 길쭉하게 생긴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었다. 그곳은 작전실이었다. 10여 평 남짓 될 만한 작은 공간에서 중국 혁명을 완수하는 중추역할을 한 곳이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 와서 중국 공산당기 양 옆에 걸린 마오쩌둥과 주언라이의 사진을 보면서 거수경례를 하고 묵념을 하기도 하였다.

어떤 단체는 현수막을 펼쳐들고 구호를 외치기도 하였다. 그 현수막에는 스바이포 정신을 계승하여 학업과 일에 정진하자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스파이포 정신이 무엇일까?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하는 독립정신이다. 구시대를 청산하는 혁명정신이다. 신중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이다. 권력을 잡아도 부패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정의롭게 헌신하겠다는 희생정신임을 스바이포 곳곳에 붙어 있는 표어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스파이포 혁명기지 작전실 앞에서 단체로 온 중국인들이 함께 구호도 외치고 스파이포 정신으로 살아가자고 현수막도 펼치고 기세를 올리었다.
▲ 스파이포 혁명기지 작전실 앞 스파이포 혁명기지 작전실 앞에서 단체로 온 중국인들이 함께 구호도 외치고 스파이포 정신으로 살아가자고 현수막도 펼치고 기세를 올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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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이포 기념관

스바이포 혁명 기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스바이포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이 기념관에는 일제에 항거하던 시절부터 최근의 현대사까지의 투쟁과 발전을 담은 사진과 유물 등을 통해 전시하고 있었다. 일제에 항거하는 내용 중에는 닥터 노먼 베쑨에 대한 내용과 사진도 있었다. 외국인이 함께 싸워준 것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고 그의 기록과 흔적을 남기면서 그의 정신을 추모하고 있었다.

스바이포 기념관에는 베쑨의 수술장면 사진을 전시하여 함께 항일전에서 싸운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었다.우리 모두는 사리사욕이 없는 정신을 배워 인민에게 큰 유익을 끼치는 자로 변혁하자고 마오쩌둥은 베쑨을 추모하고 있다.
▲ 베쑨의 수술장면 스바이포 기념관에는 베쑨의 수술장면 사진을 전시하여 함께 항일전에서 싸운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었다.우리 모두는 사리사욕이 없는 정신을 배워 인민에게 큰 유익을 끼치는 자로 변혁하자고 마오쩌둥은 베쑨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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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경작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현수막을 들고 있는 농민들의 함성과 절박한 눈빛을 머금은 흑백 사진도 있었다. 중국 공산당이 농촌에서 왜 열렬한 지지를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사진이다. 국민당 정부와의 싸움, 1949년 이후 발전하는 중국에 대한 내용들이 시대별로 잘 전시되어 있었다.

발전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부패한 공직자에 대한 재판받는 모습과 처벌을 대한 내용도 숨김없이 기록해 놓았다. 어떤 분은 무기징역, 어떤 분은 사형집행을 당한 분들도 여과 없이 전시되어서 부패와 범죄에 대한 단호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국의 농민들은 마오쩌둥을 지지했다. 농촌에서 시작하여 도시로 포위해 들어간 혁명이었다. 토지를 농민에게 주도록 실현하자는 구호와 농민들의 절박한 사진이 스바이포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 중국의 토지개혁 중국의 농민들은 마오쩌둥을 지지했다. 농촌에서 시작하여 도시로 포위해 들어간 혁명이었다. 토지를 농민에게 주도록 실현하자는 구호와 농민들의 절박한 사진이 스바이포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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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몰려드는 중국인들은 안내원의 설명을 들면서 중국의 근현사와 그 시대 상황에 대해 이해하는 듯 머리를 끄덕이기도 하고 크게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자기네 나라의 최근 역사와 발전에 대해 이해하면서 나름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물질문명화되면서 발생한 부패한 범죄에 대하여 단호한 처벌을 했다. 부패한 공직자들을 재판하는 장면의 사진도 전시하고 있다. 어떤 이는 사형, 어떤 이는 무기 징역 등 부패범죄를 용납하지 않았다.
▲ 부패범죄재판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물질문명화되면서 발생한 부패한 범죄에 대하여 단호한 처벌을 했다. 부패한 공직자들을 재판하는 장면의 사진도 전시하고 있다. 어떤 이는 사형, 어떤 이는 무기 징역 등 부패범죄를 용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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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성 있는 독립운동의 기지를 만들어야

우리는 왜 이런 국민적인 혁명기지가 없을까? 국민이라면 누구나 찾아가고 자랑하고 싶은 항일 독립운동 기지나 해방을 위한 혁명 기지가 있으면 그 곳이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좋은 교육장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다. 간간히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들은 우리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씁쓸한 조각들이다. 천안에 독립기념관을 세웠지만 큰 감흥이 없다. 왜? 독립운동의 현장성과 통일성이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 일제와 싸웠던 조선혁명군의 활약상이나 만주나 연해주에서 활동했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 운동사를 배제한 반쪽짜리 독립기념관은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

일제와 싸운 중국의 혁명 기지들은 그 현장성이 있기에 감동이 되고 사람들이 찾아오고 역사와 애국교육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부러웠다. 우리도 역사성이 있고 현장성이 있는 독립운동 기지를 조성하여 일본제국주의와 처절하게 싸운 독립 전사들을 기리고 민족정신과 해방정신을 교육하는 국민적인 장소로 삼았으면 좋겠다.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중국 대륙의 꿈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으로 전 세계를 향해 길을 내고 배를 띄우고 고속철을 깔고 있다. 전 세계를 길과 해양으로 연결하는 제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사람과 물자를 보내고 문명과 문화를 전파하고 받아들이는 발전의 속도가 무섭다. 이러한 추세라면 중국은 21세기 중반에 세계의 중심이자 1등 강국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중화민족의 대부흥의 꿈을 이루자는 시진핑의 글이 스파이포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었고 실제로 그의 꿈은 일대일로라는 정책으로 무서운 속도로 실현되어 가고 있다.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대부흥과 중국몽을 실현하자고 강조하고 있다. 일대일로 정책으로 중국은 전세계로 뻗어가면서 중화민족의 부흥과 중국의 꿈을 실현해 가고 있다. 시진핑이 중앙에서 손을 들고 당당히 서 있다.
▲ 시진핑시대의 중국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대부흥과 중국몽을 실현하자고 강조하고 있다. 일대일로 정책으로 중국은 전세계로 뻗어가면서 중화민족의 부흥과 중국의 꿈을 실현해 가고 있다. 시진핑이 중앙에서 손을 들고 당당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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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는 과거의 비단길처럼 육상을 통해서는 유럽으로, 중동으로, 서아시아와 남아시아로 쭉쭉 뻗어 나가는 하나로 연결된 길을 내겠다는 것이다. 고속전철을 깔고 도로를 이으면서 사람이 왕래하고 교역과 문화와 물자가 왕래하는 번영의 국가로 확장하겠다는 중국의 꿈(中國夢)이다.

또한 해상으로는 일찍이 중국의 정화(鄭和, 1371~1435)장군이 배를 타고 해상 항로를 개척하며 남동아와 인도양을 거쳐서 아프리카에 도달했던 것처럼 해양을 통해서 인도양으로, 태평양으로, 대서양으로 무역과 교류의 띠(帶, 벨트)를 하나로 연결하여 전 세계로 뻗어 가겠다는 정책이다.

미국은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가는 곳곳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나라와 민족을 쪼개고 분열을 조장하면서 전쟁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미군이 가는 곳마다 첨단 무기와 군대가 동원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가는 곳마다 길을 연결하고 낙후된 지역 국가에 경제적인 영향력을 끼치면서 중화의 세계를 건설하고 있다. 이란까지 가는 고속전철을 건설하여 서남아시아로, 파키스탄을 통과하는 고속전철로 인도양에 도달하고, 라오스를 경유하여 태국으로 가는 고속전철로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까지 중화의 경제권을 확장해가고 있다. 부럽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반성이 된다.

분단의 한반도가 나가야할 길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를 보면 딱 보이는 것이 남과 북의 분단과 갈등이다. 중국은 세계를 향하여 질주하는 데 한반도는 갈라져서 고루한 이념과 체제 경쟁을 70여 년간이나 계속하고 있다. 생산이 없는 지독한 이념분쟁이다. 이제는 끝내야할 때가 되었건만 더 독해지고 첨예해지고 있다.

좁은 반도에 핵과 미사일과 무수한 군사무기와 합동군사훈련이 계속되고 있다. 남북의 문제에 미국과 중국이 얽히면서 사드와 경제보복,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가 등장하는 등 동북아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실행하면서 한반도는 아예 비껴 놓는 듯한 인상이다. 골치 아픈 한반도는 제쳐 두고 하나의 벨트와 하나의 길로 연결해서 전세계로 뻗어가기도 바쁜 것이 중국일 것이다.

중국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념하는 북한에 대해서 부쩍 맘에 안 들어 하는 모습이다. 경제발전의 동반자로 여겼던 남한은 미군의 사드가 배치되는 등 유사시 중국을 위협하는 미국의 전쟁기지가 될까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드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남한은 경제적인 손실을 입고 북한도 유엔의 경제 제재로 타격을 받게 되었으니 분단된 반도에 사는 백성들만 고달프다.

섭현 남장촌에서 봤던 '중조한 우의기념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중국과 조선과 한국이 우의를 갖고 평화롭게 지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북이 교류하고 물자와 사람이 오고가면 한반도는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물류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릴 수 있다.

북한이 살 길은 핵과 미사일에 있지 않다. 중국처럼 개혁하고 개방하면서 전 세계와 평화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부강의 길이요, 체제 유지의 길이다. 남한이 살 길은 편협한 이념으로 북한을 적대시하면서 한미연합훈련이나 동맹국의 무기체제에 의존하는 데 있지 않다.

남북이 교류와 대화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한반도의 번영하는 미래가 달려 있다. 대화와 교류를 통해서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의 자원과 노동이 결합하는 그날을 기다린다. 배낭을 메고 중국에서 압록강을 건너 북한 땅을 지나 휴전선을 넘어 부산까지 여행할 그날이 빨리 오도록 통일운동을 다그쳐야겠다. 대륙과 해양으로 뻗어나가는 평화로운 한반도가 되길 기대하면서 하북지역 항일 전사들을 찾아보는 여행기를 마치고자 한다.


태그:#스바이포, #서백파(西柏坡), #독립운동기지, #일대일로(一帶一路), #스바이포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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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 출신. 경기도 광주 거주. 환경, 복지, 여행, 문학, 통일에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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