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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믿어요. 우린 한국을 떠난다고요. 이제 액티브엑스와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는 나라에서 사는 거예요."

호주 멜버른으로 출국 전, 나의 '필수 구매(must buy)' 목록을 점검하던 남편의 눈이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장착된 노트북 구매' 항목에 고정됐다. 그는 거부했다. 해외에서는 애플 제품으로도 모든 관공서 업무와 온라인 쇼핑, 심지어 은행 업무까지 가능하다며, 머잖아 후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불안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안고 멜버른으로 오고 싶진 않았다.

한국에서 인터넷 뱅킹을 하고 싶은 당신, 애플 컴퓨터 사용자라면 골치가 좀 아플 것이다. 가상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따로 설치해야 하고, 속도도 상당히 느려진다. 인터넷 속도의 최강국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느려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번거롭고 귀찮은 일은 그걸로 끝이 아니다. 공인인증서도 받아야 한다. 날이 갈수록 까다롭고 복잡한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통에 나처럼 쉽게 까먹는 사람은 수시로 비밀번호를 갱신하게 된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울화통이 슬슬 치밀어 오를 때쯤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나마 해결이라도 되면 다행이지. 결국 포기하고 은행으로 직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웹페이지를 열면 '액티브액스'라는 녀석을 깔라는 메시지가 뜨곤 한다. 물론 거부할 권리 따위 없다. 몇 번을 설치해야 끝이 날까? 계속해서 OK 버튼을 눌러댄다. 왜 설치하는지를 안내해주지만 나 같은 '컴맹'에게 해독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이제 끝이 보일 듯한데, 아직 아니다. 끈기의 민족 아니던가! 요새는 비밀번호로 모자라, OTP 카드 번호, 마지막에 다시 한번 비밀번호를 요구하며 '확인 사살'을 잊지 않는 치밀함을 갖췄다.

한국에서의 온라인 쇼핑 역시 악몽이었다. '고객이 왕'인 나라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지갑을 열 준비가 된 소비자에게 왜 이렇게 불편하고 짜증 나는 과정을 요구하는지 알 수가 없다. 고객에게 돈을 요구하려면 접근-검색-결재의 과정이 단순하고 쉬워야 하는 게 상술의 기본 아닌가. 결국 나는 온라인 쇼핑을 포기하고 소비를 꺼리는 인간이 되기에 이르렀다.

엑티브 엑스, 공인인증서여 안녕
▲ CommBank App 엑티브 엑스, 공인인증서여 안녕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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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멜버른. 울스워스(Woolsworth, 한국의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유통업체)에서 장을 봤다. 체크카드로 결제를 하려 했으나 승인이 되지 않았다. 계좌에 현금이 모자란 이유였다. 점원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호주에서 거래 중인 은행의 애플리케이션을 열었다. 비밀번호 4자리를 입력했다. 계좌 간 이체하고 싶은 금액을 입력하고 이체 버튼을 클릭. 1분 만에 끝났다.

겨울이 끝나가자 각종 온·오프라인 마트에서 양모 이불 가격 세일을 진행했다. 내년 겨울을 대비해 가장 두툼한 이불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어라. 이거 너무 간편한데. 돈 떼이는 거 아냐?'

요구하는 것은 신용카드 정보뿐이다 보니 괜히 심장이 쫄깃해졌다. 한국에서 번거로운 일들을 시키는 이유가 고객의 신용 안전을 위해서라고 했던 듯한데.

남편의 예언이 적중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한국 밖 인터넷 환경에선 필수조건이 아니었다.

엑티브엑스여, 공인인증서여, 안녕. 너와의 원치 않는 동거, 솔직히 너무 괴로웠어.


태그:#공인인증서, #액티브엑스, #IT 강국, #호주 IT, #멜버른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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