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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한미동맹, 평화와 번영을 위한 위대한 여정! 2017. 6. 29 대한미국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오기함으로 한동안 논란이 일었다. 가짜뉴스 혹은 오보라는 말도 나왔지만 문 대통령 본인이 실수였다고 밝혔다.

실수였기 망정이지 정말 '대한미국'이라면 문제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러 방면에서 대한민국이기보다 '대한미국'인 것 같은 행태가 없지 않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우리는 몸살을 앓는다는 말까지 있지 않나. 이런 한국인의 미국선호사상에 주목한 사람이 있다. <우리, 대한미국>의 작가 이인이다.

그는 "미국에 대한 혐오와 동경을 동시에 느낀다"며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대한'미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미국을 읽으면서 한국을 묻는 작업"으로 이 책을 내놓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대한미국도 아니고 미국의 51번째 주에 사는 사람'도 아니라며, 미국을 맹목적으로 숭상하는 것에 대해 질타한다.

성형수술 된 나라, '대한미국'


<우리, 대한미국> (이안 지음 / 명랑한지성 펴냄 / 2017. 7 / 376쪽 / 1만7500 원)
 <우리, 대한미국> (이안 지음 / 명랑한지성 펴냄 / 2017. 7 / 376쪽 / 1만7500 원)
ⓒ 명랑한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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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었을 때의 기억이 난다. 대학교 후배가 미국서 어렵사리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교수 자리를 알아보던 때의 일이다. 그 친구의 말이 지금도 마음자리 한 구석에 그대로 남아있다.

"미국에서 얼마나 어렵게 박사학위를 받아 왔는데 자리 얻기가 어려워요. 미국에서 박사학위만 받으면 교수 자리 하나 쉽게 얻을 줄 알았는데..."

그땐 어안이 벙벙하여 그냥 그 친구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랬던 이유가 당시 미국 박사에 대한 무조건적 선호사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학위 소지자가 많지도 않았지만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고 오면 대학 강단에 서는 게 쉽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이 아니 '대한미국'적인 생각 아닌가.

지금도 여전히 미국 없이는 못 사는 나라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아닌가. 국방이 그렇고, 외교가 그렇고, 정치가 그렇고, 경제가 그렇다.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하고 비판하며 수용하는 것하고는 천지 차이다. 저자는 우리의 태생적 미국지향을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속절없이 미국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살 계획도 없으며, 딱히 가보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국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9쪽

그렇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우리의 핏속에는 미국인의 피가 섞여 흐른다. 미국을 떼놓고 한국을 생각하는 게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그 이유를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도움을 받았던 만큼 미국과 충분히 거리를 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은 우방국이기도 하지만 신미양요를 일으킨 나라다. 가쓰라-테프트 협상을 통해 일본의 한국 침략을 인정한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의 이런 나쁜 점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좋은 점만 기억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미국적으로 '성형수술 당해버린 한국사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의 기준이 미국화 되었을 뿐 아니라 '근대화'라는 깃발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여 우리 국민 모두가 신봉하는 진리가 되었다고 비꼰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고 맹목적 종미(從美)가 차고 넘치고 만 것이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어서 웃프다.

'한국인은 레밍', 김학철보다 먼저 존 위컴이 한 말

그럼, 한국인이 보는 미국과 미국인이 보는 한국은 같을까. 애석하게도 아니다. 우리에게 절대 우방인 미국이 우리를 보는 생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 저자는 전 주한미군 사령관 존 위컴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의 근시안을 질타한다.

"한국민은 들쥐(레밍)와 같은 민족이어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복종할 것이다. 한국 국민들에게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 - 55쪽

이는 1980년 8월,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등장으로 광주항쟁이 일어났던 때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의 최고사령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의 양식 있는 지도자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표현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이 표현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어도 한국을 잘 아는 미국 지도자의 생각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밍'은 수해 때 해외여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충청북도의 김학철 의원이 사용했던 그 '레밍'이다. 이미 30여 년 전 위컴이 우리나라 국민을 그렇게 비하했다. 레밍은 스칸디나비아에 사는 들쥐로 한 마리가 바다로 뛰어들면 떼거리로 바다로 달려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따라하는 것을 '레밍효과'라고 한다.

신군부의 등장 때 가장 한국의 상황을 잘 아는 미국인이라 할 수 있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이런 비유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냥 웃으며 넘어갈 일이 아니다. 미국인의 한국을 보는 시각을 알 수 있는 단초다. 심지어 이젠 우리나라 도의원까지 우리 국민을 이렇게 비하하는 상황이 된 것이 가슴 아프다.

저자는 무비판적 미국 수용에 대하여 '아니다'라고 말한다.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의 무분별한 수입은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눈 먼 자기 번영주의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이어 미국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가 소비의 자유라는 덫에 걸렸고, TV에 빠지는 좀비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우을증 또한 미국의 영향이라고 지적하며 정신상담가가 돈을 받고 '정신적 매춘부'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우울증은 미국화 된 질병으로 전 세계가 미국화 되어 우울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정신 지배가 더 불행하고 더 우울하게 만든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미국화 된 한국의 개신교에 대하여도 비판을 한다.

특히 저자는 미국의 폭력성과 그 뒤에 숨은 이중성을 비판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발명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저자의 표현은 참 참신하다.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은 정당성까지 부여받았다. 케네디 정부의 쿠바 침공, 조지 부시 때 이라크 침공 등을 예로 들고 있다.

"미국인들은 테러 당한 것에 분노하지만 자신들의 국가가 전 세계에 벌인 '폭력'은 테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미국인들의 승인과 묵인 아래 미국의 테러는 전 세계에서 대량 살상을 저지른다." - 125쪽

저자는 테러와의 전쟁이 현대의 기막힌 통치술 중 하나라고 말한다. '악의 축'을 지정해 놓고 적과 전쟁을 하겠다고 엄포함으로 불안과 공포를 만들고 이를 지배하는 전략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한국의 권력층 역시 미국의 이런 통치기술을 습득했다고 본다. 북한에 대한 비방과 엄포를 통해 한국 내 지지기반을 다지고 기존질서에 복종하게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똑똑하고 박식하다. 자신만의 올곧은 철학이 있다. 한편에 선 사람들은 종북이나 좌편향으로 몰아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의 논조는 일관되다. 비유를 들어도 철저히 논리적이고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한국인 누구라도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에 기대 미국을 넘어 대한민국을 독립적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우리, 대한미국> (이인 지음 / 명랑한지성 펴냄 / 2017. 7 / 376쪽 / 1만75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우리, 대한미국 - 미국을 읽으며 한국을 묻다

이인 지음, 명랑한지성(2017)


태그:#우리, 대한미국, #이인, #미국숭배, #우방 미국,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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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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