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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이 비닐 천막 농성장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다.
 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이 비닐 천막 농성장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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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이 한전 측 재원으로 지은 새 복지회관을 거부하며 머무르던 천막 농성장.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이 한전 측 재원으로 지은 새 복지회관을 거부하며 머무르던 천막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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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들이 어제 밤에 불안해서 잠도 잘 못 주무시더라구요. 혹시라도 이장이나 마을 사람들이 해코지할까봐..."

지난 1일 오후 1시 30분,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에서 마을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송전탑 건설을 반대해온 몇몇 할머니들은 회의 참석을 주저했다.

"가면 또 무슨 상처를 받을라고..."(최계향 할머니)

이날 마을 회의 안건은 송전탑을 반대하는 할머니들이 경로회관을 쓰게 할지 여부였다. 하루 전날인 7월 31일 오전 6시, 반대 측 할머니들은 송전탑 건설에 찬성한 마을 이장과 다수 주민들이 걸어놓은 자물쇠를 절단기로 끊고 경로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경로회관이 잠긴 지 5개월여만의 일이었다.

"아이고, 39도까지 올라가는데 그 시꺼먼 천막에서 더 살 수가 있어야지."(조봉연 할머니)

지난 2월 삼평1리에는  새 복지회관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송전탑 반대 측 이병옥(79)·이억조(81)·이외생(82)·조봉연(82)·최계향(78)·최남이(81) 여섯 할머니는 새 회관 이용을 거부했다. 그곳은 송전탑 건설 협상에 따른 한국전력공사(한전)의 마을발전기금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복지회관 앞에 세워진 비석에는 '한국전력공사 오억원'이라고 떡하니 새겨져 있다.

할머니들은 한전과 송전탑이 마을을 갈라놓기 전 주민들이 즐겨찾던 낡은 경로회관을 고집했다. 여섯 중 다섯이 독거노인인 할머니들은 경로회관에 모여 함께 밥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생활해왔다. 삼평1리 주민들에게 경로회관은 도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시골의 정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송전탑이 들어오기 전에는.

삼평1리 주민들의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은 2009년부터 본격 시작됐다. 일반 가정집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논밭과 과수원을 가로지르는 송전탑을 반길 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한전과의 싸움이 길어지면서 주민들이 하나둘 이탈했고, 현재 남은 반대 주민은 여섯 할머니를 비롯한 13명뿐이었다.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다 경찰과 용역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은 여섯 할머니는 한전의 재원으로 건설된 새 복지회관이 "수모"라고 했다(관련기사 : 34만 볼트 '벼락' 맞은 할머니..."개 끌듯 끌고와").

할머니들의 반대에도 지난 2014년 7월 21일 경찰병력 500여 명이 투입된 행정대집행으로 23호기 공사가 재개되면서 삼평1리를 둘러싼 송전탑 8기는 그 해 연말 모두 완공됐다. 이후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송전탑을 둘러싼 분란은 여전히 주민들 사이에 남아있었다.

"우리들요. 목숨 걸고 싸웠잖아요. 경찰이랑 (용역)깡패들한테 맞고 질질 끌려가면서... 그렇게 싸우고 저 한전 쪽에서 나온 돈으로 (새 복지회관을)지었으니 우리가 거길 어떻게 들어갑니까. 우리도 자존심이란 게 있지 않겠어요."(이억조 할머니)

하지만 이장을 중심으로 한 찬성 측 주민들은 기존 경로회관을 폐쇄했다. 새 복지회관이 있는데 이전 회관까지 관리하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반대 측 할머니들은 지난 2월부터 노상에 비닐 천막을 치고 생활해왔다.

할머니들의 천막과 새 복지회관은 2차선 차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불과 50m 떨어진 거리에서 삼평1리 주민들의 감정의 골은 깊어갔다. 

"늙은이들이 너무 힘들어요. 그냥 하루라도 좀 편하게 있고 싶었다고."(최남이 할머니)

하지만 폭염이 계속됐고 설상가상으로 천막에 설치한 에어컨마저 고장나 버렸다. 결국 참다 못한 할머니들이 절단기를 들고 문을 따 경로회관에 들어간 것이었다.

송전탑 건설 3년 후... 화해 기미 없이 파괴된 마을 공동체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대형 송전탑이 마을 주택 위를 가로지른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대형 송전탑이 마을 주택 위를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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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대형 송전탑이 마을 위를 가로지른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대형 송전탑이 마을 위를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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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권 삼평1리 이장 : 저 밑에 (경로)회관을 열쇠로 채워놨었는데 오늘 보니까 갑자기 사용하고 계시던데.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 설명 한번 해보시죠.
반대 측 주민 이은주씨 : 그 전에 왜 문을 걸어 잠갔는지 설명해주시죠.
찬성 측 주민 : 하... 언제적 얘길 또 하는겨!

마을 회의는 시작부터 긴장감이 맴돌았다. 송전탑 찬반 양측 각각 10여 명을 얼굴을 맞댄 자리였다. 이렇게 한꺼번에 얼굴을 대면한 것이 1년도 넘었다고 했다. 반대 할머니들은 이장과 찬성 주민들이 마을 회의를 편파적으로 진행한다며 참석을 거부해왔다.

박 이장 : 복지회관 새로 잘 지어놨으니 들어오라고 그렇게 말해도 안 들어왔잖소. 안 들어오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이은주씨 : 왜 안 들어가는지 몰라요?
박 이장 : 알지! 더러운 한전 돈이라고. 그게 말이 되나? 우린 주민들 의견 다 듣고 지었소.
김춘화씨(반대 측 주민) : 우리들은 주민 아이가!

회의는 공방으로 이어졌다.

" 다 한전 놈들 회유에 넘어가뿐 거지."

반대 측 할머니들 설명이었다. 지난 2014년 9월에는 이현희 전 청도경찰서장이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게 100만~500만원 상당의 돈봉투를 돌려 직위가 해제되는 일도 있었다. 이 전 서장은 당시 한전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털어놨다(관련 기사 : 송전탑 주민에게 돈봉투 준 청도경찰서장 직위해제).

"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떻게 계속 나와서 싸웁니까. 우리도 살아야지!"(찬성 측 주민)

찬성 측으로 돌아선 주민들 목소리도 강경했다. 회의 시작 10분도 채 되지 않아 고성이 나왔다. 진척 없이 대결하던 주민들은 오래 전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김미화씨(반대 측 주민) : 한전이랑 합의하던 그때 한번이라도 우리랑 논의했습니까! 우리들이 그렇게 경찰들이랑 싸우고 있을 때?
박 이장 : 그럼 그때 다 했지! 안 했다고 생각합니까?

앙금은 여전했다.

이웃집 숟가락 수까지 알던 꽃다운 마을이... "마을 파괴한 한전 사과해야"

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주민 조봉연, 이외생 할머니가 경로회관에 앉아서 말하고 있다.
 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주민 조봉연, 이외생 할머니가 경로회관에 앉아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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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주민 이병옥 할머니가 마을 경로회관에서 말하고 있다.
 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주민 이병옥 할머니가 마을 경로회관에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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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이 들어오기 전 마을은 어땠을까.

"아휴, 송전탑 세우기 전엔 마을이 얼마나 화목했다고. 우리 동리에선 정말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았어요. 누가 서서 노래 시작하면 하나 둘 따라 부르고... 다른 동리까지도 그런 소문이 다 났었지. 그때가 참 좋았지."(찬성 측 한 주민)
"얼마나 인심 좋은 양반 동네였다고. 그땐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았었어."(반대 측 이병옥 할머니)

주민들은 찬반 여부를 떠나 송전탑 건설 이전을 그리워했다.

"우리 마을이 하도 아름답고 사람들도 순하다고 해서 꽃다울 방(芳)자에 '방지(芳旨)마을'이라고 불렸어. 저기, 저기서 다 같이 뛰어 놀고 그랬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다 저 철탑 때문에!"

칠십 평생을 이 마을 토박이로 살았다는 배성우씨가 송전탑이 있는 산등성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전 놈들이 야비한 놈들이요. 그렇게 싸움 붙여놓고는 철탑 박고 떠버렸잖아. 송전탑이 마을 다 버렸지."

송전탑과 한전 때문에 지난 8년 동안 마을에는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반대 측 할머니들과 함께 해온 주민 이은주씨는 "한전의 일방적인 송전탑 건설은 말 그대로 국가 폭력이었다"며 "소수의 정말 힘없고 선량한 시골 사람들이 거대한 국가 폭력에 노출돼 당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한전은 마을을 이렇게 파괴해놓고 훌러덩 떠나버렸다. 한전의 책임 있는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한다"면서 "할머니들은 한전과 싸우는 것보다 주민들과 싸우는 걸 더 힘들어하신다"고 덧붙였다.

서창호 청도 삼평리 34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실행위원장은 "한전의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인 송전탑 건설에 따른 마을 공동체 파괴 현상은 비단 삼평리뿐 아니라 밀양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며 "가장 큰 문제는 분열된 마을 주민 갈등의 책임이 온전히 주민들에게만 남겨진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루라도 여기서 같이 편하게"...여섯 할머니가 바란 것

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이 천막 농성장에 모여있다.
 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이 천막 농성장에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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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마을 회관에서 송전탑 반대 주민 이은주씨가 말하는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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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건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어. 그냥 이 경로회관 아무 탈 없이 쓰기만 할 수 있었으면..."(이억조 할머니)

한바탕 소동을 치른 반대 측 할머니들은 저녁 어스름이 다 돼서야 경로회관에 드러누웠다. 경로회관 진입 이틀째 밤이었다. 주민들은 마을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겠다고 했다. 혹시나 다시 자물쇠가 채워질까 불안한 마음에 할머니들은 경로회관에서 잠을 청했다.

"할매들이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노. 그동안 겪은 걸 생각하면 한스럽기도 하지만 그냥 여기서 우리 다 같이 지낼 수만 있으면 좋겠어. 겉으론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할매들 속은 다 문드러졌다고요. 아프다고. 저기 밖에 움막에 있으려니 아주 죽겠더라."(이병옥 할머니)

이은주씨는 "세월이 더 지나면 몰라도 할머니들 입장에서 당장 한전 돈으로 지은 저 새 복지회관이 오죽 거북스럽고 힘겨우셨으면 농성장 생활을 해오셨겠나"라며 "시원하고 따뜻하게 계실 수 있게 여기 비어있는 경로회관을 쓰겠다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든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씨는 "그렇게 힘들게 싸워온 할머니들이 원하는 게 그리 큰 것도 아닌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5개월 만에 경로회관 안방에 누운 할머니들은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이 마을 경로회관에 모여 있다.
 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이 마을 경로회관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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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이 경로회관에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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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송전탑, #한전, #청도, #마을 공동체, #삼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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