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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소상공인의 쫀쫀한 생활사

1회용 용기에 먹는 짜장면 맛을 아시는가?
17.07.24 10:48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혼밥, 혼술, 홀로 여행, 1인 가족. 함께도 좋지만 혼자라고 해서 못할 거 없는 세상이다. 유행따라 한 건 아닌데 형편상 1인 기업 소상공인이 되었다. 창고 하나 빌려 혼자서 일한다. 직원도 나 혼자. 대표도 나 혼자. 혼자서 경비부터 영업까지 다 한다. 시대가 시대이고 사정이 사정인지라 혼자라고 쓸쓸해 할 겨를 같은 건 없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하루가 뚝딱 지나고 한 해가 저문다. 하지만 유독 혼자임이 서러울 때가 있기는 하다.

1회용 용기에 먹는 짜장면은 세상 맛없다

점심은 늘상 혼밥이다. 일도 혼자 하는데 밥은 제대로 차려 놓고 모르는 사람 곁이라도 여럿이서 먹고 싶지만 창고를 비우기가 마뜩찮다. 혹시라도 손님이 오면 어쩌나 싶은 불안함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마음 편히 혼자 먹는 게 낫다. 몇 번 중국집에 배달을 시켜봤다. 전화를 걸어 조심스럽게 묻는다.

"짜장면 1인분 배달 되나요?"

아, 이게 뭐라고 떨린다. 다행히 잠시 말이 없거나 싫은 기색을 느끼기도 하지만 거부를 당한 적은 없었다. 문제는 그릇이다. 보통의 딱딱한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오지 않고 1회용 얇은 그릇에 담아 주려고 한다. 그릇을 회수해가지 않기 위해서다. 두 번 걸음하지 않겠다는 거다. 그런 경험을 한 뒤에는 꼭 이렇게 요청했다.

"그릇은 1회용 말고 보통 그릇으로 주세요."

그럼 곧바로 이런 답이 돌아온다.

"왜요?"

창고에는 텅 빈 공간과 화장실이 전부다. 1회용 그릇으로 오면 남은 음식물을 버릴 때가 마땅치 않다. 공용으로 쓰는 변기에 음식을 버리다 막히기라도 하면 큰 낭패다. 무엇보다 맛이 없다. 1회용 그릇을 받쳐 들고 짜장면 면발을 후룩거리면 사육당하는 기분이 든다. 식사의 품격이 내팽겨쳐진다.

번번이 떨리는 마음으로 눈치 보는 게 싫어서 배달음식은 포기했다. 그 뒤로 한 동안 편의점 도시락을 사다 먹기도 했으나 그것도 그만 두었다. 도시락 자체는 가격이나 구성이 나쁘지는 않다. 먹을 만하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전자렌지에 넣고 분자를 춤추게 한다는 게 영 꺼림칙했고 도시락을 사게 되면 생수도 사야하고 김치 양이 부족해 추가금이 들거나 항상 부족함이 남았다.

결국 나는 매일아침 집에서 도시락을 싸온다. 나 먹으려고 싸는 도시락이 얼마나 맛있겠냐마는 속은 편하다. 그거면 됐다.

도시락으로 마음 편히 끼니는 때운다고 해도 늘 아쉬운 게 하나 있다. 회식이다. 회사원이라면 피하고 싶어 안달이라는데 이게 또 안 된다고 하면 참 그립다. 식당 가득 연기를 피워가며 고기를 굽고 소주를 따르고 왁자지껄 떠드는 몇 시간 동안  샘솟는 쾌활함이 좋게 보인다.

마찬가지로 회의도 못한다. 혼자서 다 결정하고 처리하고 피드백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면서 겪는 고충을 털어 놓을 데도 조언을 들을 데도 없다. 꼭 정보를 나누고 매출 신장이라는 결과를 도출해야 맛이 아니다. 사람 하는 일이란 게 때로는 '으쌰으쌰'가 필요한데 그럴 기회가 없다. 공유 없는 일하기는 무척이나 지루하고 막막할 때가 있다. 하다못해 창고 뒤편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손님 뒷담화라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털어내야 하는데 그게 없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면 그날이 회식날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수다쟁이가 된다. 특히 이것저것 잴 거 없는 군대동기들을 만나면 마이크를 쥐고 놓질 않는다. 그 친구들이 내 직업의 속성을 알 리 없으니 반은 모르는 소리일 것이다. 그래도 난 떠든다. 내 일에 어떤 고충이 있으며 손님 군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그 중 워스트는 누구였는지. 미주알고주알 술 잔 비우는 속도보다 빠르게 읊어댄다. 그렇게라도 속을 비운다.

하긴 그것 말고도 비워야 할 스트레스는 많다. 누구나 겪는 일이겠으나 '을'신세는 도대체 벗어날 길이 없다. 손님들의 폭언, 막말, 무개념 행동은 순간의 반발심은 있을지 모르나 결론적으로 행복한 마무리라는 정신승리가 가능하다. 어쨌든 내 의지와 영업을 받아주고 소화해주는 고마우신 분들이 아닌가. 하지만 그 반대로 내가 돈을 지불하는 입장인데도 눈치를 보고 있으면 심사가 복잡하다. 대부분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홀대를 받는 상황이다.

택배회사와 계약을 맺고 건단 3,500원에 제품을 발송하는데 조금만 크거나 무거우면 5,500원, 8,000원 택배사 뜻대로 가격이 오른다. 깎아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그랬다가 내일부터 거래를 끊겠다고 하면 아주 곤란하다. 한 달에 몇 백 개씩 제품을 발송한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우리는 규모가 작다. 한 달에 몇 번 창고로 와서 물건을 회수해 가 주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작은 소망은 있다. 회수해 가는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안 된다. 되도록 일찍 접수해서 맡겨야 하고 사정에 따라 안 가져 갈 수도 있다. 미칠 노릇이다. 어쩌다 택배차가 우리 구역을 지나간 뒤라면 내가 포장한 상품을 싣고 택배회사 물류센터로 직접 가야한다. 그건 꽤나 시간을 잡아 먹는 일이라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때문에 오전에 외근이 길어지는 날은 창고에 오자마나 허겁지겁 택배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다.

소매상인 우리 입장에서 도매 거래처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주문량이 시원찮으면 겁박에 가까운 훈계를 듣는다.

"자꾸 이런 식으로 주문하면 성수기에는 물건을 못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장사 이렇게 하시면 돈 못 벌어요."

1인 기업은 다품종 소량 유통이 살 길이다. 한 번의 대량구매는 자칫 회사를 휘청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만날 내 돈 내고 굽실거리는 만년 '을'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혼자 낯선 동네에서 인터넷 선을 연결해서 장사를 시작하기로 한 날부터 홀대는 나와 친구가 되었다. 인지상정, 역지사지. 내가 택배사나 도매상이라도 그렇게 할 거라고 그래야 돈을 번다고 이해하며 산다. 당분간은 빌딩을 세울 여력도 없으니 그 친구들은 옆에 끼고 살아야 할 거라는 예감도 든다.

이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다. 직장인이나 큰 회사의 대표는 따라 오지 못하는 좋은 점도 있다. 시간 자유롭게 쓰지, 나 혼자 벌어 나 혼자 다 갖지, 결제 받느라 고생 안 해도 되지. 노조와 골치 아프게 협상하지 않아도 되지. 아주 많다. 무엇보다 사회의 혼란에서 한 발 벗어나는 홀가분함은 최고다.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최저임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임금이 오르면 자동화에 밀려 직장을 잃는 사람이 생기고 중소기업은 임금부담이 커진다는데 나는 최저임금이 당장 만 원이 아니라 2만 원이 된다고 해도 끄떡없고 내부 반발도 전혀 없다. 오로지 임금인상으로 인해 소비가 진작되고 그 열매만 따 먹으면 되는 아주 속 편한 처지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오늘도 커다란 창고문을 혼자서 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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