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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프레스가 펴낸 책들.
 쪽프레스가 펴낸 책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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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예요?"
"아... 그것도 책이에요."

망원동에 있는 안도북스에 갔을 때다. 엽서인지 카드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것이 책이란다. 독립서점에서만 '발견' 할 수 있는 책이다. 근현대 소설 혹은 만화 한 편이 한 장의 책에 오롯이 담겼다. 다시 봐도 책이라기보다는 팬시용품 같지만. 출판사 이름도 생소하다. 쪽프레스. 빛의 속도로 검색한 내용은 이랬다.

'쪽프레스는 아름다운 문학의 감동을 가볍고 부담 없는 그릇에 담아 전달합니다. 대부분 10쪽을 넘지 않으며, 본드나 실로 엮는 기존 책과 달리 아코디언식으로 접지하여 한 쪽으로 독서할 수 있습니다.'

'문고판도 무겁다면, (책의) 초경량화에 성공'한 쪽프레스의 책이 딱일 듯하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책을 시장에 내놓을 생각을 했을까? 궁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쪽프레스는 지난 4월 봄 시리즈 발간에 이어, 최근 펀딩플랫폼 텀블벅에서 도시 시리즈로 펀딩에 성공했다. 지난 20일 합정에서 쪽프레스 김미래 편집자를 만나 이야길 나누었다.

쪽프레스 김미래 편집자
 쪽프레스 김미래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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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프레스 팀원들이 제일 궁금하다. 다들 직장이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모두 5명이 참여하고 있고 다들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6년 정도 일했는데 그때 같이 일하면서 알고 지낸 동료들이다. 돈도 안 되고 타깃도 확실하지 않지만 재밌는 걸 해보고 싶었다. 기성 출판에서는 상업성이 보장되지 않은 콘텐츠는 하기 힘드니까. 이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우린 출판 디자인도 해봤고 출판 편집도 해봤으니까 전문성을 살려서 완성도 높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시작했다."

- 아코디언 북이라는 형태는 어떻게 논의하다 나온 건가.
"기성 출판에서 책은 무겁고 권위적인 느낌이다. 사전에 나온 책의 정의도 보면, 종이를 실과 본드를 이용해서 엮은 것이다. 한자 모양도 '冊', 마치 뭔가 엮인 모양으로 그려져 있지 않나. 그렇지만, 하나의 완결된 콘텐츠고 그 자체로 작품성이 있다면 그 형태가 뭐든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이 갖는 권위를 탈피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실과 본드를 쓰지 않는 책의 형태를 고민하다 보니 아코디언 접지의 북카드 형태가 된 것 같다. 우리 책은 카드봉투에 넣을 수 있는 사이즈로 제작해서 일반 우편료를 내고 보낼 수도 있다."

- 첫 시리즈가 나온 건 언제인가.
"시작은 2015년부터 했는데 그때는 직접 만들다시피 해서 150권 정도를 만들었다. 언리미티드에디션(국내 독립출판 분야의 최대 행사 - 기자말)에서 반응이 좋아 빨리 소진했다. 그 후로 공임이 들더라도 전문 인쇄소에 맡겨서 초판 부수를 늘려보자 싶어 펀딩을 하게 된 거다. 제작비 마련 차원에서."

쪽프레스가 펴낸 책들. <봄 시리즈>
 쪽프레스가 펴낸 책들. <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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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밤 시리즈에 이어 올해 봄 시리즈가 4월 말에 나왔고 이어 최근 도시
 시리즈로 펀딩에 성공했다.
"초반 우리가 '시즌 0'이라고 부르는 그때는 책을 가볍게 만드는 데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처음 책을 내고 여러가지 경험을 하면서 느낀 건 정성스럽고, 큐레이션 잘 된 콘텐츠를 보여주는 게 더 효과가 있겠다는 거였다. 우리 출판사 인지도도 없고, 서점에 입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테마를 중심으로 글을 모았다."

- 실린 글들을 보면 김유정 등의 근대작가들도 있고 현대 작가들도 있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일은 어렵지 않나.
"저희가 읽어 보고 좋았던 작가 중심으로 섭외한다. 근대 작가도 쉽지는 않다. 많이 읽어봐야 하고, 유명한 작품이 아닌 것들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집을 많이 살펴봐야 유사성을 찾을 수가 있다."

-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독립서점 운영하는 분들이 좋아한다. 처음에는 일러스트가 예쁘다, 가볍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좋다는 반응이었는데, 콘텐츠를 읽어 보고 나서는 그 감동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작가에 따라 팔리는 부수가 차이가 많지 않고 신기하게 비슷비슷하다. 심지어 한 쪽의 짧은 글인데, 아까워서 못 읽겠다는 분도 많다고 하더라. 아주 가까운 사람은 아니지만 마음을 표현해야 할 때 선물하기 좋다고도 하고."

쪽프레스가 펴낸 책들.
 쪽프레스가 펴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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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소설 청탁했을 때 작가들 반응은 어땠나.

"장강명 작가의 경우 처음 청탁할 때 '짧은 글을 손 쉽게 얻을 수 있고, 소화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도 많은데 왜 굳이 인쇄를 해서 만드냐? 번거롭게...'라는 질문을 받았다. 청탁에 대한 거절이라기보다는 호기심과 걱정이 섞인 궁금증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해 보니, 우리가 일부러 번거롭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냥 인터넷으로 보는 콘텐츠는 '저장됐다'는 느낌도 없고, 끝까지 '완독했다'는 느낌도 없지 않나. 너무 편리하기 때문에. 장기기억으로 남기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만드는 방식은 대단히 번거롭다. 독서를 하려면 밀봉되어 있는 봉투를 뜯어야 하고, 읽어야 하고, 다 읽었으면 뒤집어서 보기도 하고, 다시 접어서 넣어 두어야 한다. 그 번거로움 속에서 기억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내가 열기 전에는 그저 밀봉된 제품에 불과하니까."

- 수익은 거의 내지 못한다고 했는데...
"아직은 정말 미미한 수준이다. 수익이 조금이라도 나면 다음 시즌에 무언가 요소를 추가하거나 보강하는 식으로 했다. 봄 시리즈가 좀 팔려서 이윤이 나면, 일러스트를 더 받거나 그래픽 노블(만화)을 더 청탁하거나, 이런 식으로 진화시킬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 마케팅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겠다.
"초반에 저희 인건비를 전혀 계산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격이 계속 바뀌었다. 좀 더 잘 만들어 초반에 돈을 좀 쓰더라도 정가를 3000원 정도 적정선에서 유지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축하카드도 4000~5000원 정도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비싼데 우리나는 팬시 상품에는 돈을 쓰지만, 책에는 돈 쓰는 게 박하다. 하지만 우리 책은 책이긴 하지만, 팬시에 가까워 메리트가 있다고 본다!(웃음) 알라딘에 입점한 때도 있었는데, 시스템이 우리와는 맞지 않아 지금은 하지 않는다. 쪽프레스 책은 거의 모든 독립책방에서 만날 수 있고, 온라인 마켓을 운영하는 독립서점(유어마인드, 다시서점 등)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코엑스 디자인페스타나 언리미티드, 한강에서 열리는 서울인디페스티벌 등등 면대면으로 독자들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가려고 한다."

쪽프레스가 펴낸 책들. <도시의 속살> 시리즈
 쪽프레스가 펴낸 책들. <도시의 속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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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나오는 도시 시리즈는 어떤 내용인가.

"도시의 속살, 도시의 민낯에 대한 이야기다. 15종의 한쪽책과 4종의 그래픽노블로 구성했다. 낭만적인 여행기, 예찬론은 없다. 도시에서 맛보게 된 감정들에 대해 다룬다. 예를 들어 장강명 작가의 글 '신도림 신데렐라'는 신도림에서 만원 지하철을 타게 된 일에 대한 이야기다. 신데렐라 신세가 된 어떤 여성에 대한. 작고 가볍다고 해서 유쾌한 이야기만 담는 건 아니다."

- 책이 변하는 시대, 향후 10년 후 책은 어떤 형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을까.
"처음 출판사에 입사했을 때, 전자책을 맡아서 그런지 많이 생각해 본 주제다. 저는 '책이 이런 쪽으로 갈 거야' 보다는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극단으로 갈 것 같다. 예를 들면 이야기성이 있는, 즉 스토리텔링이나 내러티브 뛰어난 기승전결이 있는 경우는 다른 미디어로 전환될 것 같다. 소설가가 방송작가를 한다거나 드라마나 시나리오 쓰거나 하는. 혹은 그걸 해주는 사람이 더 부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오리지널 콘텐츠로서 (책이) 다른 미디어로 전환될 수 있는 최초의 원본이라는 기득권은 계속 가져갈 것 같다.

반면 물성이 느껴지는 책의 판매는 줄어들 것 같다. 지금도 줄어들고 있긴 한데, 그럴수록 더 사치스럽거나 더 대안적인 것들이 잘 될 것 같다. 타깃이 적은 것들, 하위 문화같은. 타깃 대상이 적은 것들이 긴 꼬리를 이으면서 이어갈 것 같다. 쪽프레스에서 출간하는 책들은 전국에서 볼 수 있고, 주간 판매 몇 위 이런 게 목표는 아니다. 인기가 생기면 달라지긴 하겠지만.(웃음)"

- 다음 시리즈 주제는 정했나.
"기호품이다. 애착이 담긴 대상에 대한 자기 이야기, 담배나 커피 등에 한정된 게 아니고 펜, 패브릭, 공간, 장소에 대한 이야기 등등이 담길 것 같다."


젊은 마음

채만식 지음, 쪽프레스(2016)


태그:#쪽프레스, #변하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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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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