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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 3반 김초원 선생님의 공주사대 졸업 사진.
 단원고 2학년 3반 김초원 선생님의 공주사대 졸업 사진.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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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통화한 김성욱씨는 대뜸 5월 14일의 일을 꺼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한 번도 보이질 않더니, 5월 14일 꿈에 나와서 처음으로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더라고요."

그날 새벽,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3반 담임 고 김초원 교사가 아버지 김씨의 꿈에 나타났다. 김씨는 2014년 4월 16일 이후 처음으로 꿈에 나타난 딸을 생각하며 "이게 무슨 징조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경남 거창에 사는 김씨는 이튿날 평소처럼 흑염소 축사를 돌본 뒤, 근처에 사는 누나의 과수원에서 사과를 땄다. 점심 무렵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가 찍힌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의 여성은 대뜸 울면서 말을 건넸다.

"아버님, 축하드려요. 지금 청와대에서 김초원 선생님의 순직을 인정한다는 발표를 하고 있어요."

약 두 달의 시간이 흐른 지난 6일, 공무원연금공단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기간제 교사 김초원·이지혜씨의 순직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78일 만의 일이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단원고 기간제 김초원·이지혜 교사의 순직을 인정하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는 권고를 내린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월 15일 스승의날에 두 사람의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인사혁신처가 공무원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고, 지난달 27일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개정안을 의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의 '세'자도 싫어했죠"

세월호 참사 당일 숨진 단원고 교사는 9명이다. 이중 정규직 교사가 7명, 기간제 교사가 2명이다. 문제는 참사 직후, 정부가 정규직 교사 7명에 대해서만 순직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김초원 교사와 2학년 7반 담임 이지혜 교사에 대해선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똑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구하러 뛰어 내려갔는데 박근혜 정부는 '법대로 해야 한다'며 죽음을 차별했다.

참사 당시 김초원 교사는 5층에 있었다. 5층은 여교사들, 선원들, 화물기사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그런데 배가 기울자 교사들은 주저하지 않고 아이들을 구하러 4층으로 내려갔다.

"애들 구하는데 기간제 교사라고 다른 생각을 했겠어요? 딸 초원이도 똑같이 구하러 내려갔죠. 선생님들은 구명조끼를 안 입고 학생들부터 입혔어요. 그래서 다들 일찍 올라왔어요. 시신이, 4월 17일, 18일, 19일에요."

김초원 선생님의 아버지 김성욱씨는 딸의 순직 인정을 위해 3년 3개월을 달려왔다. 사진은 2015년 4월 4일 안산에서 광화문으로 상복을 입고 도보행진을 했을 당시다.
 김초원 선생님의 아버지 김성욱씨는 딸의 순직 인정을 위해 3년 3개월을 달려왔다. 사진은 2015년 4월 4일 안산에서 광화문으로 상복을 입고 도보행진을 했을 당시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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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이를 악물고 전국을 돌았다. 시민 10명만 모여있다고 하면 "딸 초원이가 순직 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곤 거창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꺽꺽 울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뒷산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다. 이 때문에 김씨의 목에서는 쇳소리가 난다.

"그 생각도 많이 했어요. 내가 그냥 '우리 딸 순직을 인정해주세요'라고 글쓰고 죽어버리면, 그럼 우리 딸의 순직을 인정해줄까."

박근혜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김씨는 더 악에 받쳐 전국을 돌며 서명을 받고, 기자회견을 했다. 심지어 들은 채도 안 하는 여당 출신 장관을 찾아가 사정을 했다. 소용 없었다. 뜨거운 땡볕 아래 오체투지를 하고, 딸의 영정사진을 들고 몇 날 며칠을 걸었건만 박근혜 정부는 변하지 않았다.

"말도 마세요. 책으로 쓰면 열권도 더 써요. 굉장히 힘들었어요. 자식 보냈을 때도 힘들었는데 3년 3개월 끝이 안 보이는 것 같았죠. 지금 생각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세'자만 들으면 경기 일으킨다면서요. 최순실은 노란색을 싫어했다면서요.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계속 싸웠으니."

김성욱씨는 딸 김초원 교사의 순직 인정을 위해 전국을 누볐다. 사진은 2015년 9월 스님들과 함께 오체투지를 했을 당시다.
 김성욱씨는 딸 김초원 교사의 순직 인정을 위해 전국을 누볐다. 사진은 2015년 9월 스님들과 함께 오체투지를 했을 당시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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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언론이었다. 특히 일부 언론은 김씨가 딸의 순직을 인정받기 위해 달려온 모습을 보고 '보상금'만 언급했다. 보도를 본 네티즌들 역시 "돈을 더 받으려는 것 아니냐", "이제 그만하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순직이 됐다고 해서 보상금을 따로 더 받는 게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MBC는 이렇게 보도를 하더라고요. (순직 인정이 되면) 1억 9천만 원을 더 받는다고. 이미 배보상은 다 받았어요. 정부가 이중으로 지급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렇게 보도하면 네티즌들이 다 그래요. 돈 바라고 저렇게 떠든다고요."

"딸의 순직은 개인적인 일, 할 일이 너무 많다"

6일 김씨에게 전화했을 때 그가 크게 기뻐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담담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김씨는 "우리 딸과 이지혜 선생님의 순직은 인정됐지만 이건 개인적인 일"이라며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있다"라고 강조했다.

7일은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안착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9명의 미수습자 중 5명의 유해가 여전히 가족들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선체조사와 진상규명, 안산 안전공원 조성 등 세월호와 관련해 진행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다.

김씨는 현재 4.16연대에서 가족협의회 교사대표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지금껏 딸의 순직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연대활동에 적극적으로 함께해왔다.

김씨는 인터뷰 말미에 "다음주와 다다음주에 서울에 올라가야 한다"면서 "밥이나 한 끼 꼭 하자"고 했다. 3년 3개월, 딸 김초원 교사의 순직 인정을 위해 달려온 그가 처음으로 보인 여유였다. 김씨는 "딸이 오늘 하루만큼은 하늘나라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쁜 소식을 나누고 있을 것"이라며 통화를 마쳤다.

김초원 선생님의 아버지 김성욱씨가 딸의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은 2015년 7월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이다.
 김초원 선생님의 아버지 김성욱씨가 딸의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은 2015년 7월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이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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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초원, #문재인, #순직인정,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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