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로서 아이가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학교 선택과 관련해서 고민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고등학교가 선택제가 된 뒤로 교육여건이 열악하다고 평가받는 지역에 사는 사람은 이 고민이 더 짙어졌을 것이다 필자의 아이 둘도 강북의 열악한 지역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필자 또한 아이가 졸업하기까지 수없이 고민하며 학교를 보냈다.

"엄마, 우리 반 애들은 수업 시간에 대부분 자요. 그런데 선생님도 포기하셨나 봐요."
"설마, 선생님이 포기하셨겠어?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런데 너는?"
"물론 나도 재미없는 수업은 자요..."

아이와 이런 대화를 나눌 때면 '위장전입을 해서라도 소위 좋은 학교를 보낼 걸 그랬나'라는 후회가 밀려오곤 했다. 집 근처 자율형사립고는 교육여건도 좋고 학생들의 수업태도도 좋다고 하던데 거길 보냈어야 했나.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순간순간 밀려오는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어쩔 수 없었다.

학부모가 학교문제로 편법을 고민하고 좋은 학교를 골라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된 '고교다양화정책'으로 외고·자사고가 확대되고 '학교선택제'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골라가게 만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좋은 학교'와 '나쁜 학교' 라니...

지난 6월 22일 오전 서울 이화여고에서 자사고 학부모 연합회 관계자들이 자사고 폐지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오전 서울 이화여고에서 자사고 학부모 연합회 관계자들이 자사고 폐지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좋은 학교'의 기준은 '서울의 상위권대학을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가 되었다. 물론 좋은 학교를 가르는 전제로 '나쁜 학교'의 존재를 바탕에 깔아야 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을 상대로 단지 대학입시의 결과물만을 놓고 그들이 다니는 학교를 '좋은 학교', '나쁜 학교' 운운하며 구획화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이다.

좋은 학교가 될 수 있는 배경에는 경제적 부를 획득한 특권층을 대상으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선점한 효과가 있었는데 애써 그 배경은 모른 척 했다. 교육을 자본에 종속시킨 그 천박함을 사회는 애써 외면해왔고 심지어 조장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교육정책 과제의 핵심으로 외고·자사고를 폐지하고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경기교육청의 이재정 교육감도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재평가 시점이 도래하는 도내 자사고와 외고를 재지정하지 않고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학부모 입장에서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의 변화를 감지 못하는 일부 세력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수월성 교육과 하향평준화 운운하며 결사적으로 존치를 외치고 있다. 심지어 서울에선 아이들 자사고에 보낸 2000여명의 학부모들이 모여 실력행사를 하기도 했고 울산에선 자사고 폐지 정책에 반대하는 학부모가 108배를 하기도 했다. 무척 부끄러운 일이지만 학부모만을 탓할 수 없다.

필자 또한 한때 아이의 자사고 입학을 고민한 사람이다. 아이가 원했고 큰 아이가 동생의 입학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여러 날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 많은 수업료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결과적으로는 입학시키지 않았지만 아이가 일반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별 의욕이 없이 학교에 갈 때면 순간순간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기도 했다. 나 이외에 일반고에 아이를 보내는 대다수 학부모들도 문득 문득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오락가락 교육정책의 피해자, 학부모

사실 학부모들은 오락가락 교육정책의 피해자다. 잘못된 제도를 만들어 놓고 선택권 운운하며 학부모들을 현혹한 것은 '이명박근혜정부'였다. 즉 국가였다. 힘없는 학부모들은 그 선택이 최선인 줄 알고 정부의 시책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심지어 비싼 등록금을 감내하는 것이 좋은 교육이고 아이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부모의 자세인양 호도하는 것을 묵묵히 따랐을 뿐이다. 학부모의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책임져주지 않는 교육을 각자도생하는 심정으로 떠받들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불안한 미래사회에서 내 새끼만은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더 좋은 학교를 찾아 헤맸을 뿐이다. 학부모는 그게 정도라고 주입하는 사회 환경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들이 6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학부모들의 자사고 및 외고 폐지 반대 움직임을 비판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들이 6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학부모들의 자사고 및 외고 폐지 반대 움직임을 비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은 '좋은 학교' '나쁜 학교'로 가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어떻게 생각할까? 통계는 모르겠지만 내 아이는 학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문제아가 다니는 학교'라는 인식이 강했다. 옆에 있는 자사고를 오히려 좋아했다. 이유는 뻔했다. 아이도 성적 좋은 학교가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럼 소위 '좋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할까? 아니 학교를 떠올리면 저절로 빙그레 미소가 번질까? 인권수업을 가서 필자가 만난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과도한 규제와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문화에 짓눌려 자존감이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즉 모든 아이들이 피해자인 셈이다.

핀란드는 16세까지 성적표가 없다고 한다. '잘 했어, 아주 잘 했어, 아주아주 잘 했어'만 있는 나라. 어린 시절 아이에게 심어진 열등감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기 때문에 성적을 매기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도 먼 얘기는 아닐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경쟁이 없는 교육'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핀란드엔 없는, 우리에게만 있는 게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사립학교다. 핀란드는 교육의 국가책임을 분명히 하는 나라다. 우리가 깊이 반성할 부분이다. 성적으로 학교를 줄 세우고 그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사교육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만 분리해서 가르치는 학교를 '좋은 학교'로 분류하는 그런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경제적 지위가 월등한 특권층을 모아 입학권을 주는 학교는 더 이상 교육기관이 아니다. 어서 빨리 외고·자사고 폐지 정책이 실행돼 평등교육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더 이상 학부모가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책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학교를 좋은 학교로,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데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정책위원장입니다.



태그:#참교육을 위한 정국학부모회, #자사고, #외고, #일반고, #학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