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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1] 제자 인건비 횡령, 교수들 회식비 등으로 사용

6월 15일. 대구지법 제5형사단독 이창열 부장판사는 국립대 A교수와 사립대 B교수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들 교수는 2009년부터 최근까지 공공기관에서 발주한 7개 연구과제(의료정보서비스 관련 등)를 공동으로 수행한 학생 연구원들에게 줄 인건비 등 4억 원을 가로챈 혐의다. 부끄럽게도 '사기 및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의 대가다.

국립대와 사립대 모두에서 학생 연구원의 인건비 통장을 교수들이 직접 관리하며 돈을 빼돌리다 적발된 것은 이례적이다. 학생 연구원들 중 일부는 20∼30%가량만 인건비를 지급받고, 일부는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교수들이 가로챈 학생들의 돈은 주로 자신들의 신용카드 결제와 주식투자, 회식비 등으로 사용됐다.

[갑질 2] 제자들 허위로 연구원 등록, 거액 인건비 빼돌려

6월 19일. 국민권익위원회는 제자(학생)들을 연구원으로 허위 등록한 뒤 인건비 5억 원을 빼돌려 유용한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 등 2명을 적발하고 1명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사립대 A교수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에서 지원하는 42개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제자들을 허위로 연구원으로 등록해 인건비를 받게 한 뒤 이를 되돌려 받아오다 적발됐다. 모두 3억 7400만 원을 빼돌렸다.

또 지방 사립대 B교수는 2012부터 지난해까지 연구개발 과제(14건)를 수행하면서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지급된 인건비를 다시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1억 6800만 원을 빼돌렸다. 이렇게 착취한 연구비는 교수 자신의 정기예금, 주식투자, 가족 용돈, 자녀 교육비, 아파트 관리비 등으로 사용돼온 것으로 드러났다.

[갑질 3] 제자 연구비 허위 청구 교수 15명 적발

6월 23일. 서울북부지검 국가재정·조세범죄 중점수사팀(양인철 부장검사)는 서울대 A교수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하고 경희대 B교수와 고려대 C교수를 사기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A교수는 지난 2008년 4월부터 최근까지 국가보조금으로 지급된 연구비 12억 8천만 원을 부당하게 챙겼다. 그는 석사과정 연구원 몫 180만 원, 박사과정 연구원 몫으로 지원된 국고 250만 원 중 연구원(학생)들에게는 절반씩만 지급하고 연구원을 허위로 등록하는 수법 등으로 나머지를 가로챘다.

또 B교수와 C교수는 연구원들의 통장을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면서 인건비 3억 5천 만원과 1억 9천만 원을 각각 가로챘다. 이처럼 학생 연구비를 가로채 서울북부지검에 적발된 교수는 이들을 포함해 모두 15명에 달한다. 대부분 가로 챙긴 돈은 주식투자나 자산증식 등에 이용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갑질 4] '스캔 노예 사건' 교수에 '인권교육 이수' 권고

서울대 인권센터는 최근 대학원생들에게 8만 장 분량의 문서 스캔을 지시해 이른바 '팔만대장경 스캔 노예 사건'으로 불린 사건의 당사자인 A교수에게 인권교육 이수를 권고했다. 교수에게 인권센터 지정기관 등으로부터 인권교육을 이수하라는 내용이 담긴 결정문을 전달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문제의 '팔만대장경 스캔 노예 사건'은 지난 1월 서울대 피해 학생이 교육부에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바깥세상에 알려졌다. 해당 학생은 고발장에서 "A교수의 무리한 지시로 대학원생 4명이 1년 동안 8만 쪽이 넘는 문서를 4천여 개의 PDF 파일로 스캔해야 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컸다. 더구나 학생들은 이 외에도 "해당 교수로부터 비상식적인 개인 심부름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인권센터의 결정이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상아탑 '갑질' 횡포 주범은 교수들... '충격'

이처럼 진리와 지성의 상징인 상아탑에서 국가보조금으로 지급된 학생들의 공동연구비를 가로챈 교수들이 줄을 잇는 상황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법당국이나 인권센터 등에 의해 밝혀진 사건 외에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도 암묵적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대학사회 '갑질' 횡포의 주범은 피해자(제자)들의 스승인 교수들이란 점에서 더욱 충격이 크다.

대학이 크고 작은 비위로 얼룩지고 있는 데는 바로 '갑'과 '을'의 신분 차이가 지나치게 큰 데서 비롯된다. 대학사회에서 교수(전임)는 항상 '갑'의 위치에서 군림하는 대신, 시간강사 등 비전임 교수와 조교, 연구원, 대학원생, 대학생 등 수적으로는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나머지 구성원들은 언제나 '을'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 '전근대적․절대적 종속 관계'가 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거의 모든 조직과 업무에 걸쳐 각종 평가와 인사권을 교수들이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입학에서부터 학사업무 등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갑' 위치에 있는 교수들의 막강한 권력과 권한 때문에 '을'의 위치에 있는 나머지 구성원들은 '갑'의 착취와 횡령 등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비리와 비위가 통용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연구비는 최근 각 대학들에서 잇따라 불거지고 있듯이 건드리면 터지는 전형적인 상아탑의 대표적 비리 유형이다. 수법도 다양하다. 교수가 제자인 학생들을 연구에 참여한 것으로 허위 등록한 뒤 가로채는가 하면, 학생들의 비밀번호를 동일하게 설정한 통장과 현금카드를 만들어 대표 학생에게 맡기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현금을 찾아오게 하거나 계좌에 이체시키게 하는 방법으로 챙기는 방법이 주를 이룬다.

서울대 대학원생 33.8%, "폭언과 욕설에 시달려"

서울대 인권센터가 지난 13일 발표한 '서울대 대학원생 인권실태·교육환경' 설문조사 결과는 대학원생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잘 나타내주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학원생 13.4%가 '타인의 연구 및 논문작성'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조교를 비롯한 학내 노동 경험이 있는 대학원생들 가운데 '적정 수준의 보수를 받지 못했다'는 응답자가 40.6%에 달했다.

또한 '교수의 개인적 업무 수행을 지시받았다'고 응답한 대학원생은 14.7%, '연구비 관리 등의 과정에서 비윤리적 행위를 지시받았다'고 응답한 대학원생도 20.8%로 나타났다. 이밖에 응답한 대학원생 중 33.8%는 폭언과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했고, 25.5%는 개인 생활의 간섭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기합과 구타가 이뤄지고 있다고 답한 대학원생도 3.9%로 나타났다.

대학에서 연구와 학문에 전념해야 할 대학원생들이 다양한 인권 침해를 겪고 있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교수가 대학원생들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수시로 시키는 것은 비록 학문과 연구에 국한하지 않는다. 특히 대학원생들에게 지도교수는 절대적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거의 신처럼 떠받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연세대에서 한 학생(제자)이 사제폭발물을 설치해 스승인 교수를 다치게 한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경찰 조사 결과 제자인 K씨는 자신이 작성한 논문에 대한 꾸중을 듣고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는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지만, 평소에 얼마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으면 그랬을까? 앞선 사례(상황)들을 보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대학사회의 '갑질' 횡포가 끊이지 않고 심지어 법정으로까지 비화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상아탑의 불신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대학의 연구원들과 비슷한 처지인 조교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조교들도 '을'의 위치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교수들과의 종속 관계 때문에 받는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는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조교들 급여, 장학금 형태로 최저 임금보다 낮게 받는 곳 '수두룩'

조교들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늘 해고와 해직에 대한 불안감에 싸여 있다. 대학들은 '조교의 경우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는 고등교육법 제14조를 내세워 그동안 조교들을 정규직으로 인정하지 않고 계약직 또는 비정규직으로 계속 임용해 오고 있다. 그러다가 일정 기간이 되면 내부 인사규정에 따라 해고를 통지하곤 하는 게 관례다.

서울대가 지난해 8월 근무 기간 5년이 된 비학생 조교 70명을 무더기로 계약 해지한다고 밝혀 거센 저항과 마찰을 불러일으킨 사례도 바로 이러한 허술한 법적·제도적 근거를 악용한 때문이다. 서울대가 이럴진대 다른 대학들은 오죽하겠는가?

지난 21일 노웅래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 고등교육기관의 공시정보대상에 조교의 수와 임금, 업무 범위, 근로시간, 근로계약서 등 조교들의 현황과 근로실태 등을 추가한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을 대표로 발의한 것은 이러한 적폐를 의식한 듯하다. 하지만 시행 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

노 의원이 34개 국립대와 서울 소재 대학원생 조교 현황자료를 교육부로부터 받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입이 절로 벌어진다. 조사대상 중 92%에 달하는 대학이 조교 급여를 임금이 아닌 장학금 형태로 최저 임금보다 낮게 지급하고, 근로계약서는 34개 대학 가운데 단 한 곳만이 체결했기 때문이다.

비단 조교뿐만 아니다. 대학원생, 연구원, 시간강사를 비롯한 비전임교수 등의 부당한 처우와 불평등한 대우는 상아탑의 고질적인 적폐로 방치 된 지 오래다. 이 적폐가 사라지지 않는 한 대학사회의 비민주적인 '갑질'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부 교수들은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강사와 대학원생, 연구원, 조교들에게 모욕, 성희롱, 부당한 업무지시 등 비인격적 처우와 착취, 횡령 등의 비리를 일삼아 왔다. 그러한 적폐는 여전히 존재한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대학사회가 전제돼야 '지성과 진리의 상아탑'을 담보할 수 있다.


태그:#연구비 횡령, #조교, #연구원, #교수들 갑질,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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