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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한국정책방송원 K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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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근원적이고 거대한 변화를 위한 역사적인 개혁에 첫발을 내디뎠다. 지난 16일 제주도에서 열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 연차총회 축사와 19일 부산에서 거행된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기념사를 통해, 탈원전·탈석탄을 통한 국가 에너지 정책 대전환을 대내외에 공식 천명한 것이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전체 전력의 20%까지 높일 계획입니다. 석탄화력 발전을 줄이고, 탈 원전국가로 나아가려 합니다. 전기차 등 친환경자동차의 사용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친환경에너지 타운 등 우리의 '지속가능한 인프라' 구축 경험을 AIIB 회원국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해 나가겠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의 제2차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 축사(2017/6/16)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 축사에서 후보시절 공약했던 에너지전환 정책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글로벌 위기인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에너지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문재인 정부의 이번 발표를 환영한다. 에너지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석탄과 원전을 줄여나가며, 에너지 효율 및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

장기적인 호흡으로 단계적인 탈원전, 탈석탄을 추진해나가며 에너지 전환을 추구하는 것은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이다. 취임 후 첫 국제행사에서 새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 역시 새 정부가 국민들의 요구와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만들어진 새 정부에서 국민들의 에너지 전환에 대한 요구를 흔들림 없이 하나 하나 정책으로 실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장다울 기후에너지 선임캠페이너의 논평(2017/6/16)

거대 보수우파 대통령의 탄핵으로 급하게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문 대통령은 취임 40여 일 만에, 마침내 진정한 변혁의 시작을 눈앞에 직접 보여준 셈이다. 그동안 대통령 본인이 가능한 기회를 활용하여 말로써 변화의 시기임을 표현하거나 몇몇 고위관료로 개혁적 인물을 임명함으로써 의지를 표명하기는 했지만, 실질적 약속과 진짜 전환(고리 1호기 영구정지)이 실제로 진행된 건 아마도 이게 처음이 아닌가 싶다.

2017년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탈석탄 선언(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 기념사 전문)은 역사적으로 무척 중요하게 기록될 것이므로, 그 내용과 의미를 전체적으로 분명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 한국언론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고 있는데, 고리 1호기 영구정지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변화다. 부산과 울산에 걸쳐 있는 '고리 원전단지'는 지구촌에서 현재 가동되고 있는 원전단지 중에 세계 최대 규모이고, 고리에만 무려 7기의 원전(고리 1~4호기, 신고리 1~3호기)이 있다.

원전 사고 위험성, 영화 속 얘기만은 아냐

영화 [판도라] 포스터
 영화 [판도라] 포스터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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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도라>(2016)에서 참담한 폭발이 일어난 한별 1호기의 실제 모델이 바로 '국내 최고령 노후 원전'인 고리 1호기다. 원래의 설계수명 30년(1977년 완공)에서 장장 10년을 초과 가동된 게 고리 1호기였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또다시 10년을 더 연장해 가동하려는 무시무시한 시도가 있었다(2017년 6월 9일 원자력안전위원회,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심의·의결 확정).

사실,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미국의 20배, 러시아의 100배). 전체 25기의 원전은 총 4개의 단지에 집중되어 있는데, 전 세계의 밀집 원전단지 상위 10개 중에 4개가 모두 우리나라에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원전을 보유한 동시에 원전 밀집도 1위인 국가. 한국은 원전 규모 면에서나 밀집도 측면에서 제일 심각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전 정권에서는 노후원전 연장가동과 새 원전 건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전 정부는 고리(부산·울산)에 3개, 한울(울진)에 4개의 원전을 더 추가할 예정이었고(신고리 4호기는 2017년 상반기 시운전 실시), 삼척과 영덕에 새로운 원전 부지를 만들어 4개를 더 추가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기념사를 통해, 그런 계획 자체가 잘못되었고 앞으로는 더이상 원전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선언했다.

"지난해 9월 경주 대지진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진도 5.8, 1978년 기상청 관측 시작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가장 강한 지진이었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스물 세 분이 다쳤고 총 110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경주 지진의 여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엿새 전에도 진도 2.1의 여진이 발생했고, 지금까지 9개월째 총 622회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대한민국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 문 대통령의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2017/6/19) 기념사 중에서

후쿠시마보다 22배 많은 사람들이 고리 원전 주변 거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말했듯이, 고리 원전단지 30km 반경 내에는 무려 380여만 명(부산 248만, 울산 103만, 경남 29만)이 살고 있다.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들은 반경 30km 내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둘 다 피난구역으로 30km가 설정됐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30km 반경 내 인구는 17만 명이었다.

우리는 후쿠시마보다 22배나 많은 사람들이 고리 원전단지 주변에 살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대형 원전단지 반경 30km 내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한민국이 망한다면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전쟁 아니면 원전사고. 문 대통령이 탈핵을 천명한 이유, 탈원전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은 "원전이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분명히 말했다. 우리나라의 원전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선언한 것인데, 사실 이런 말들은 2017년 현재 지구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의 '상식'에 가깝다.

세계적인 원전 건설업체였던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지난 16년간 회장을 맡은 제프리 이멜트는 "핵발전은 다른 에너지와 견줘 지나치게 비싸 정당화하기 힘들다"고 고백한 바 있으며, 미 해군 방사능 연구소 역시 "(방사능 기준치는) 과학적 판단이 아닌 행정적 결정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의 원전마피아들이 국민의 세금을 마구 쏟아부으며 주구장창 떠들었던, "원전은 싸고 안전하다"는 거짓말은 이젠 그 누구도 믿지 않는 '판타지'가 된 셈이다.

한마디로, 원전산업은 이제 사양산업이다. 이전 정권에서는 '원전건설 수주'를 큰 업적인 양 내세웠지만, 이건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관점이고 국민을 오도하는 행위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원전 해체산업 선도국가'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건, 상당히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능동적으로 말한 거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을 전면 중단하고, 노후된 석탄화력발전소 10기에 대한 폐쇄 조치도 임기 내에 완료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한국은 원전과 마찬가지로 석탄화력발전소 문제도 무척 심각하다. 충남 당진의 석탄발전소는 (고리원전처럼) 세계 최대 규모이고, 이전 정권에서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계획도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새 대통령이 직접 석탄화력발전을 줄일 거라고 약속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원전도 안 되고 석탄도 안 되면, 도대체 어떻게 전력을 수급할 건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지난 5월 15일 미세먼지 대책으로 30년 이상 오래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8기의 운영를 일시 중단시켰다. 그래도 전력 수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국내 전문가들도 대부분 인정하는 바대로, 원래 전기는 남아돌고 있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국가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왜곡된 에너지 소비 구조 바꿔야

물론, 당연히 우리 모두가 같이 노력해야 한다. '원전 판타지'를 위해 한국의 전기요금 현실화는 어느 정도 억제되어 온 게 사실이고, 전반적으로 기름이나 가스를 사용하는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비합리적일 정도로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은 기업들의 전기 과소비를 부추겼고, 그로 인해 에너지 소비 구조 자체에 심각한 왜곡이 일어나 버렸다. 문 대통령도 말했듯이, 탈원전·탈석탄과 함께 기본 체질을 바꾸는 "에너지 고소비 산업구조 개편"이 동시에 이뤄져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사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그래도 꼭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면 보다 더 근원적인 변혁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어서 약간 아쉬운 측면은 있다.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도 보듯이, 한국의 전기수급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지방의 대형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긴 송전거리를 이동해 대도시에서 소비되는 형태를 갖고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탈피해 중소 규모 발전소를 지역별로 분산해서 짓고 송전거리를 짧게하여, 해당 지역에서 필요한 전기는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친환경 재생에너지는 대규모 시설이 불가피한 원자력발전에 비해 중소규모 발전이 훨씬 용이해서, 각 지역의 에너지 자립률을 올리는 방향으로 전환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앞으로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더 발달하면 큰 혼란 없이도 근원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신고리 5·6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고리 원전단지의 9번째·10번째 원전인 신고리 5·6호기는 2016년 6월에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건설허가 승인이 났고, 국내 최초의 원전허가 취소소송이 작년 9월에 제기됐다. 전국 각지의 시민 560명이 국민소송단으로 참여했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오는 29일 오후 4시 서울행정법원에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의 첫 재판이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선언을 찬성한다면,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모두 모인 것처럼) 이의 성공을 위해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할 때다.


태그:#탈핵, #원전, #석탄, #문재인, #신재생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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