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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사진 우측)가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단체와 함게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 충북인뉴스 DB)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사진 우측)가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단체와 함게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 충북인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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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한국전쟁 당시 희생당한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을 추적중인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가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현장에 대한 유해 발굴 조사를 촉구했다.

박 대표는 <충북인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아곡리에서 희생된 박정순씨의 장녀 최계자씨의 증언과 관련 기록을 통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실이 학인됐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그동안 학살 일시가 정확하지 않았는데 고 박정순의 재적등본을 확인한 결과 1950년 7월 12일 오전 10시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박씨의 사례를 통해 보도연맹원의 구성과 학살대상이 과거 좌익 활동가에 국한되지 않고, 가족들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좌익 활동가라고 해서 전쟁 중에 불법적으로 학살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그 가족이라고 해서 학살되는 것은 현행법의 문제를 떠나 반인권적인 전쟁범죄"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유해발굴과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기간 총 11곳의 매장지를 발굴해 1616구의 유해가 나왔지만 단 한 구도 유전자감식을 실시하지 않았다"며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과 유전자감식은 계속되고 있다. 생명은 똑같이 귀한 것인데 군인의 죽음은 유전자감식을 통해 가족들의 품에 돌려주고, 민간인의 죽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아곡리의 여성 유해 매장지를 발굴하면 2구의 유해가 나올 것이고, 이에 대한 유전자감식과 관련 유족인 최계자의 유전자감식을 병행하면 최재덕의 유해는 명확히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박만순 대표의 기고문 전문이다.

<모든 생명은 다 귀하다. 민간인의 죽음도 진상규명해야 한다>

8살에 엄마를 잃은 최계자씨의 증언과 관련 기록을 통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이 확인됐다.

첫째, 아곡리 사건의 정확한 발생일시가 확인됐다. 기존에 아곡리 사건이 공론화 된 것은 2002년부터인데, 청주지역 보도연맹원 150여명이 1950년 7월 10일경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서 후퇴하는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불법적으로 학살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아곡리에 설치된 안내판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아곡리의 피해자로 추정되는 청주시 사천동 유가족의 증언에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피해자 박정순의 재적등본을 살펴보면 사망일시가 1950년 7월 12일 오전 10시로 명문화 되어있다. 즉 7월 10일경이 아니라 7월 12일 오전 10시가 정확한 것이다.

둘째, 보도연맹원의 구성과 학살대상이 과거 좌익 활동가에 국한되지 않고, 가족들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박정순의 남편 최씨가 좌익 활동을 한 것은 그 가족들의 증언을 통해서 사실이었음이 확인된다. 하지만 좌익 활동가라고 해서 전쟁 중에 불법적으로 학살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그 가족이라고 해서 학살되는 것은 현행법의 문제를 떠나 반인권적인 전쟁범죄다. 박정순과 최○○은 최씨의 처와 여동생이라는 이유로 국민보도연맹에 강제 가입되었고, 전쟁 초기에 불법적으로 학살된 것이다.

아곡리서 학살된 여성은 3명인데, 박정순은 전쟁 직후 시신을 수습해 청주로 이장했다. 그렇기에 아곡리에 2구의 여성유해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중 하나는 최○○의 유해가 분명하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005년 출범하여 2010년까지 활동했다. 만 5년간의 진상조사와 더불어 실시한 것이 유해발굴이다. 유해발굴을 시작하면서 진실화해위원회는 유전자감식을 통해 한 구라도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주겠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이 호언은 허언으로 끝났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집단학살로 인해 유해가 뒤섞여 유전자감식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가능한 유해를 일일이 감식하는 데는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된다는 이유였다.

결론적으로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기간 총 11곳의 매장지를 발굴해 1616구의 유해가 나왔지만 단 한 구도 유전자감식을 실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군전사자 유해발굴과 유전자감식은 계속되고 있다. 생명은 똑같이 귀한 것인데 군인의 죽음은 유전자감식을 통해 가족들의 품에 돌려주고, 민간인의 죽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아곡리의 여성유해매장지를 발굴하면 2구의 유해가 나올 것이고, 이에 대한 유전자감식과 관련유족인 최계자의 유전자감식을 병행하면 최재덕의 유해는 명확히 나올 것이다. 최○○의 유해확인을 통해, 유족들의 품으로 유해를 돌려주는 것은 역사를 바로 잡고, 인권의 가치를 올바로 세우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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