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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오전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오전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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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순환출자 해소 문제를 둘러싼 수수께끼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4차 공판에는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한 인민호 행정관이 증인으로 나왔다. 국정농단의혹 특별검사팀이 그린 큰 그림의 첫 번째 조각을 맞춰줄 인물이었다.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뒤 삼성은 주식 대량을 처분해야 했다.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계열사 간 신규 순환출자고리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해 10월 14일,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로 인해 삼성이 처분해야 하는 주식 수가 1000만 주라고 결론 내렸고, 정재찬 위원장 결재까지 받았다. 하지만 공정위는 12월 23일에서야 삼성에 처분주식 수를 공식 통보했다. 결론도 900만 주를 거쳐 500만 주가 됐다.

삼성과 만난 뒤... 숫자가 달라졌다

문제의 500만 주는 인민호 행정관 입에서 처음 나왔다. 이 얘기가 '삼성 → 인민호 행정관 → 최상목 경제금융비서관 → 안종범 경제수석 → 최상목 비서관 → 김학현 당시 공정위 부위원장 → 정재찬 위원장' 순으로 전달됐다는 게 특검 주장이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석동수 공정위 사무관의 '일지'는 여기에 힘을 실어준다. 석 사무관은 2015년 12월 20일 인 행정관에게 '900만 주'란 결론이 담긴 보고서를 전달한 뒤 "500만 주로 결론낼 방법이 있냐"는 말을 들었다고 기록했다. 이때까지 공정위는 여러 차례 보고서를 만들었지만 어디에도 500만이란 숫자는 없었다(관련 기사 : '이재용 승계' 큰 그림 찢은 어느 공무원의 기록).

7일 인 행정관은 자신이 삼성과 청와대, 공정위의 연결고리였음을 인정했다. 그는 석 사무관에게 연락하기 전날, 삼성을 대리하는 황창식 김앤장 변호사를 만나 '공정위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인 행정관은 "황 변호사 말이 (석 사무관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500만 주 얘기를 꺼낸) 계기가 됐을 수 있다는 건 부인하지 못한다"고 했다. 또 "최상목 비서관에게 900만 주와 500만 주 모두 보고하며 900만 주는 조금 과하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다음 퍼즐은 최상목 비서관과 안종범 수석이다. 최 비서관의 특검 진술과 법정 증언을 종합해보면, 그는 12월 21일 안 수석에게 두 가지 안을 보고했고 '가능하면 500만 주가 좋겠네'란 말을 들었다. 특검은 최 비서관이 다음날 김학현 부위원장에게 이 내용을 전달했다고 본다. 두 사람은 12월 22일 9차례에 걸쳐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같은 날 김 부위원장은 최종보고서에 '2안 500만 주'를 추가하란 지시도 내렸다. 실무진은 보고서를 수정한 뒤 정재찬 위원장에게 마지막 결재를 요청한다.

정재찬 위원장은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때 최 비서관이 전화로 "안종범 수석이 빨리 결정하라고 한다, 아주 역정을 내는데 형님이 위원장께서 2안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며 재촉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 얘기를 정 위원장에게 전했고 다음날 정 위원장은 500만 주 안에 최종 결재했다. 인민호 행정관은 법정에서 공정위 결론을 보고받은 안 수석이 "다행이다"란 반응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특검은 김 부위원장이 중간 중간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과 연락한 내역, 안종범 수석 업무수첩 등에 담긴 '대통령 지시사항' 등 다른 퍼즐들도 확보했다. 이 조각들을 모으면 삼성이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어떻게 움직였는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뇌물사건은 당사자 자백이 아니면 직접 증거가 드물다. 이 때문에 특검은 관련자들의 말과 문자메시지, 통화 내역 등 기타 물증으로 삼성과 박 전 대통령의 검은 거래를 입증하고 있다.

어긋난 조각들로 반전 꾀하는 변호인단

 삼성그룹 서초사옥(자료사진).
 삼성그룹 서초사옥(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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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까지 법정에 나온 정재찬 위원장, 김학현 부위원장, 최상목 비서관은 결정적 대목에서 진술이 엇갈렸다. 최 비서관은 '안 수석이 빨리 결정하라고 한다'고 말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역정 운운'한 것은 부인했다. 김 부위원장은 '안 수석이 2안으로 하라고 했다'는 최 비서관의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정 위원장은 김 부위원장으로부터 '안 수석이 역정 낸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변호인들은 이 어긋난 조각들에 주목한다. 석 사무관의 일지에 담긴 내용 자체를 뒤집을 수 없지만, 삼성-청와대-공정위 연결고리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전략이다. '안 수석의 직접 지시를 받은 적 없다'는 인민호 행정관과 최상목 비서관의 진술, 김학현 부위원장이나 정재찬 위원장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은 모두 삼성 쪽에 유리하다. 이 조각들을 토대로 7일 변호인단은 거듭 "청와대의 압력은 없었고, 삼성에서 부당한 청탁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태그:#이재용, #박근혜, #순환출자,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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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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