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지난 1일 한국여성민우회 연속강연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세 번째 주제는 '표현의 자유'가 열렸다.
 지난 1일 한국여성민우회 연속강연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세 번째 주제는 '표현의 자유'가 열렸다.
ⓒ 이은솔

관련사진보기


김치녀, 일베충, 여성혐오, 남성혐오, 그리고 얼마 전 치러진 대선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차별금지법. 모두 한국 사회에서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뜨거운 감자'다. 이 이슈를 관통하는 주제는 '혐오'다. 무엇을 혐오로 볼 것인가부터 혐오의 규제 문제까지 다양한 입장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연속강연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세 번째 주제는 '표현의 자유'였다. 6월 1일 열린 이 강의에는 80여 명의 참석자가 자리를 가득 채웠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가 발제자로 등장해 소수자 혐오표현의 유형과 사례, 그리고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문제를 설명했다.

홍성수 교수에 따르면 혐오표현은 장애, 인종, 종교, 성적지향, 성별, 성정체성 등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모욕과 위협을 하거나 차별, 폭력을 정당화하는 표현들을 의미한다.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주로 공통의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 집단이다.

누군가가 동성애자인 A에게 동성애자의 특성을 들어 비난했다면, A 뿐 아니라 동성애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 전체가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흑인 사회 전체가 반응하고,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때 많은 여성이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여성혐오는 있어도 남성혐오는 없는 이유

여성들이 '김치녀','된장녀'에 대응하기 위한 단어로 '한남충'을 들고 나왔을 때 많은 남성들은 이것이 남성혐오가 아니냐고 반발했다. 그러나 표현의 수위가 강하고, 남성들이 이러한 표현에 불쾌함을 느꼈다고 해서 이를 구조적인 혐오표현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남성들이 '한남충'이라는 말을 듣고 사회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거나, 남성이라는 이유로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의미로 백인혐오나 기독교혐오도 그래서 성립하기 어렵다.

수업시간에 '파란 옷 입은 학생'을 지목하는 것과 '차도르 입은 학생'을 지목하는 것 또한 모양새는 같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다. 차도르를 입는 이들이 사회에서 차별받는 위치에 있다면 이렇게 지칭하는 것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즉, 표현의 대상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있느냐가 혐오표현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혐오표현은 그 문장이 혐오를 위해 꾸며낸 거짓일 때 뿐만 아니라 사실일 때도 성립할 수 있다. '흑인은 지능이 낮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흑인은 가난하다'라고 말했을 때, 실제로 흑인들의 소득이 낮은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고 웃음거리로 삼는 일은 혐오적이다.

또한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냐에 따라서 혐오표현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다문화 연구소'라는 기관이 있을 때, 여기서의 '다문화'는 가치중립적인 단어이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이나 그의 자녀를 두고 '쟤 다문화래'라고 말할 때는 혐오 표현이 되는 것이다.

혐오표현의 법적 규제는 가능할까?

그래서 일각에서는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규제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혐오표현이 소수자에 대한 정신적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포용의 공공선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또한 혐오의 피라미드에서 보여주듯, 혐오표현은 개인의 영역에서 멈추지 않고 구조적 차별, 더 나아가서는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과 캐나다, 뉴질랜드 등에서는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적 조항을 두고 있다.

물론 모든 국가가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수정헌법 1조로 두고 거기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혐오도 일단은 표현이 되어야 반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표현을 규제하는 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이 심화되어 차별로 이어질 경우에는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또한 정치·사회적 리더들이 꾸준히 소수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대학이나 기업도 혐오표현을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등 내부적 방어 기제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또한 실효성의 문제도 있다. 규제를 하기 위해서는 법 조항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여기서는 명백한 혐오표현만을 처벌 대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될 경우 법에 명시되지 않은 혐오표현은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위험도 있다. 또한 혐오의 원인과 배경을 따지기보다는 발화자 처벌에 초점이 맞춰질 우려도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가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일부 국가에서 혐오표현을 규제한다는 이유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제한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혐오표현에 어떻게 대항해야 할까? 홍성수 교수는 지금과 같이 혐오표현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카운터 스피치, 맞받아치기라고 말한다. 누가 차별적인 말을 했을 때 당사자와 주변인들이 즉시 반박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홍 교수는 일본의 재특회가 반한 시위를 했을 때 일본인들이 재일 한국인에게 연대했던 사례를 소개하며 새로운 프레임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다수의 일본인 대 소수의 재일 한국인으로 구도를 만들어가려는 재특회의 프레임을 깨고, 차별 대 차별 반대로 프레임을 다시 짠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소수자가 아니라 차별주의자를 고립시키고, 혐오표현을 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태그:#여성혐오, #혐오표현, #표현의자유, #한국여성민우회, #홍성수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