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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들. 군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속 음식 레시피와 그에 얽힌 잡담을 전한다. 한 술 뜨는 순간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음식 이야기를 '씨네밥상'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 기자 말

짧게는 몇 달, 길게는 한평생을 작은 방 안에서 배급되는 음식만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면 가장 생각나는 바깥 세상의 음식은 무엇일까? 일본 영화 <스키야키>는 그런 질문에서 시작된 만화 츠지야마 시게루의 <대결, 궁극의 맛>을 원작으로 한다.

교도소의 한방에 수감된 수감자들이 이제까지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을 얘기하는 대결 형식, 참가한 수감자들에게 가장 많이 '꿀꺽' 침 삼키는 소리를 이끌어내는 자가 승리하며 우승자는 설날 특식 오세치 도시락에서 다른 이들의 요리를 한 종류씩 가져올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만화는 여러 번의 대결을 선보이며 더 많은 이야기와 음식을 자세히 묘사하니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만화를 보는 것도 추천한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 부르는 교도소 안 음식 배틀

"이제 곧 크리스마스구나... 감옥에서는 시간이 빨리 가는 법이야."
"올해도 하실 거죠?"

이 방의 전통 행사, 살아오면서 먹은 궁극의 맛 대결. 204호 제 2회 설날음식 쟁탈전!!!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은 전직 호스트 출신의 입소자, 다른 호스트에게 지명 1위 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싸움을 걸어 중상을 입히고 가게 돈을 훔친 뒤 해외로 도피하려 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달려온 곳은 고향 시골집, 10년 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밥을 차려준다.

직접 기른 오이와 가지를 쌀겨에 절인 일본식 장아찌 '누카즈케', 감칠맛이 폭발하는 갓 딴 토마토로 만든 샐러드에 푸성귀와 파를 넣은 미소시루, 직접 농사지은 쌀로 뚝배기에 갓 지은 새하얀 밥. 산뜻한 토마토로 입을 적시고 뜨끈한 미소시루로 속을 달랜 뒤 따끈따끈 김이 솔솔 풍기는 밥을 뚝배기에서 한가득 퍼올려 공기에 소복히 담는다.

여기에 버터를 올려 따뜻한 열기에 버터가 녹아내리면 새벽에 닭장에서 꺼내온 신선한 달걀을 톡, 깨 올리고 화로에 노릇노릇 구운 옥수수를 후두둑 떨어트린 뒤 간장 몇 방울을 쪼르르 흘려 마구마구 비벼 입 안으로 넣는다…!!! 따끈한 밥과 섞여든 고소한 계란과 버터 풍미에 간장의 감칠맛, 그리고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달큰한 옥수수 알갱이까지 몇 그릇이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맛.

첫 스타트부터 영화 속 같은 방의 수감자 뿐 아니라 보는 이의 침까지 꿀꺽 삼키게 만들지만 엄머니의 감동적인 이야기라 참가자들을 눈물짓게 만들어 '꿀꺽 카운트'는 단 1명으로 실패.

그 다음 타자는 부인이 집을 나가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던 수감자. 어린 아들, 새 여자친구와 함께 해변으로 놀러간 그는 빛나는 태양과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숯불에 불을 붙여 석쇠에 새우와 소라, 가리비를 굽는다. 지글지글 빨갛게 익어가는 새우와 입을 쩍 하고 벌리는 가리비, 간장을 몇 방울 흘려 넣은 소라는 불에 달궈져 눌은 간장 냄새를 풍기고 껍질 안의 국물이 끓어 오르면 소라 뚜껑이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꼬치로 소라 속살을 살살 꺼내 한 입 먹은 뒤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 

"... 꿀꺽"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는 무엇이었나요?

영화 <스키야키> 속 옥수수계란간장버터밥
 영화 <스키야키> 속 옥수수계란간장버터밥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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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말로 푸는 것이 얼마나 재밌겠냐 하지만 말 그대로 침이 넘어가고 손을 꽉 쥐게되는 흥미진진한 배틀, 게다가 영화의 공간이 교도소이다 보니 그 간절한 느낌이 배가 된다. 하지만 204호의 이 대결에 참가하지 않는 자가 있었으니 신입 수감자이자 영화의 주인공 구리하라.

뒷골목의 조직 폭력배 생활을 한 그는 밥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우연히 보육 시설에서 함께 자란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만의 라멘 가게를 차리는 꿈을 위해 성실히 살아가는 여자는 구리하라에게 다정하지만 정작 그는 처음과 달리 다른 여자와 바람이나 피우고 조직의 일에 휘말려 도망가야 하는 상황이 되자 여자가 모은 돈을 도피자금으로 사용한다. 결국은 붙잡혀 감옥에 온 그, 착한 여자는 그가 잡혔다는 소식에 면회를 오지만 "행복하게 살라"며 돌려 보내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면서 하루 하루를 우울하게 보내고 있다. 그런 그가 똥내나는 교도소의 방 안에서 벌어지는 '맛있는 이야기'에 참여할 리 없다.

"앞으로 몇 년이나 이렇게 좁은 곳에 처박혀서 아무런 즐거움도 없이 살아가는 것 보다는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204호 최고령 고참 선배의 조언, 그리고 다른 수감자와의 싸움에 휘말려 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대회에 참가하게 되는 구리하라다. 사실 주인공 구리하라가 여자 친구에게 한 짓도 영 마음에 들지 않고, 교도소 수감자라는 것이 결국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친 죄인들이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마냥 흐뭇하게 보기에는 불편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이를 의식했는지 대부분의 수감자를 관객들에게 정상참착의 여지를 줄 만한 죄로 설정한다.

자기에게 맛있는 밥과 친절함을 베푸는 술집 마담의 돈을 빼앗고 괴롭히던 남자를 폭행해 잡혀왔다거나, 한때는 큰 도둑이었다가 노숙자가 되어 맥주 한 병을 훔쳐 들어왔다거나 하는 식이다. 때문에 수감자라는 게 거슬리지는 않지만 일본 영화 특유의 여성 혐오적 시선만은 거슬린다. 나쁜 남자에게 당하면서도 밥을 차려주는 여자친구라든가, 반복해 등장하는 '엄마가 애를 버리고 혼자 도망갔다'는 설정, 아이에게 새 엄마를 만들어주기 위해 데려온 노래방 도우미, 아무것도 없는 자기에게 '가슴모양' 푸딩을 만들어 주는 술집 마담이라든가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거슬리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봐야 한다는 것은 주의를 주고 싶다.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시작해 1월 1일 전날까지 이어지는 요리 대결, 그 사이에 케쳡라이스와 까르보나라가 반반 들어간 특제 오믈렛이라든가 어머니가 만들어준 떡, 여자친구가 끓여준 라멘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중에 주인공 구리하라가 조직원들에게 쫓겨 도피하기 직전, 밥이라도 먹이려는 여자친구가 없는 재료로 급히 끓여준 인스턴트 라멘의 레시피는 참고할 만하다.

"가늘게 채썬 양배추 위에 끓인 인스턴트 라면을 붓고 다진 파와 마늘을 넣은 가루를 토핑하고 마지막으로 팔팔 끓는 파기름을 부어냈다."

음, 맛이 없을 수 없는 레시피다. 최근엔 대형 마트 등에서도 일본 인스턴트 라멘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집에서 응용해 보면 좋겠다. 이런 저런 일들을 거치고 순서의 마지막은 방의 최고참 하치노에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인생 최고의 음식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온 가족에게 만들어주던 스키야키다.

"아버지만의 방식대로 간장 대신 된장, 설탕 대신 꿀, 술을 넣고 잘 풀어 양념을 만든다. 달궈진 철판에 고기 기름 덩어리를 넣고 녹이고 서리가 내린 듯한 소고기를 대담하게 굽는다. 거기에 양념을 뿌리면 달고 고소한 향기가 가득, 육즙이 풍부한 고기를 달걀 노른자에 찍어 먹는다. 다음은 파를 듬뿍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기다린다. 야채는 파 밖에 없지만 그게 호사였다. 심플 이즈 베스트! 다시 고기를 투입한다. 파의 쌉싸름한 맛과 달걀의 단 맛, 고기의 맛이 하나가 된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손으로 빚은 우동을 넣는다. 고기의 맛이 숙성된 국물와 우동에 스며들어..."

"... 꿀꺽!!!"
"꿀꺽!!!"
"우동까지 나오다니 치사하다!!"
"아 스키야키 먹고 싶다..."


역시 고참의 연륜, 스키야키는 꿀꺽 스코어 만점을 받을 만하다. 영화는 설날 오세치 요리를 나누는 수감자들, 그리고 3년 뒤 구리하라가 출소한 뒤 수감자들의 후일담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감동도 감동이지만 무엇보다 보는 이의 침샘과 허기를 자극한다. 이 영화를 2012년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보았는데 그 후로도 가끔씩 옥수수간장버터밥과 소라 구이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마 보는 이들마다 자극받는 음식이 다를 것이다. 친구들끼리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 대결을 벌이는 건 어떨까? 교도소와 같은 공간이 아니어서 그 집중력이 떨어질 것도 같다.

[씨네밥상 레시피] 옥수수계란간장버터밥

어린 시절 자주 먹던 간장버터밥은 우리에게도 친근한 메뉴다. 일본에선 여기에 날계란을 풀어 먹는 경우가 많다. 날계란에 어울리는 간장을 따로 팔 정도다. 날계란 정도야 우리나라에서도 신기하지는 않지만 여기에 구운 옥수수알을 뿌려 함께 비벼 먹는 건 새롭다. 이때 옥수수는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찰옥수수라면 어울리지 않는다. 찰기가 없고 아삭아삭하며 당도가 높아 씹었을 때 단물이 경쾌하게 터지는 스위트콘 종류여야 어울린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몇 년 전부터 이런 스위트콘 품종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시중에는 '초당옥수수' 혹은 '설탕옥수수' '노란옥수수'로 알려진 이 옥수수는 지금부터 시작해 7월까지밖에 볼 수 없으니 이 시기에 많이 사먹자. 생으로 먹어도 될 정도로 아삭하고 달 뿐 아니라 옥수수를 사용하는 모든 서양 요리에 쓰기 적합하다. 바꿔 말하자면 서양의 옥수수 요리에 일반 찰옥수수를 쓰면 그 맛도 안나고 망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스위트 콘, 초당 옥수수는 찰옥수수처럼 물에 삶으면 오히려 쪼그라든다. 김이 오른 찜기나 오븐에 10분 정도 살짝만 익히는 것이 좋다. 이번에는 일본식 간장 소스를 바른 구운 옥수수를 만들기 위해 석쇠에 구웠는데 석쇠가 없다면 그냥 익혀서 넣어도 된다. 어차피 밥에 간장과 버터 등이 들어가 있으니 양념도 안 해도 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준비한다. 아삭아삭 경쾌한 옥수수의 달콤함이 더해진 한 그릇 만찬이다. 특별한 여름식으로 제격이다. 만들기도 쉬우니 꼭 한 번 해보기 바란다.

재료 : 초당옥수수 1개, 밥 1공기, 달걀 1개, 버터·간장 적당량씩
일본식 구운 옥수수 소스 : 간장 1큰술, 맛술 1큰술, 설탕 1작은술

1. 옥수수소스를 고루 섞는다.
2. 초당옥수수를 버터 약간을 둘러 달군 팬에 올려 약한 불에서 3~4분 가량 익힌다.
3. 옥수수를 달군 석쇠에 올려 소스를 발라가며 노릇노릇 자국이 나게 굽는다.
4. 따뜻한 밥을 그릇에 담고 버터를 올린 뒤 생달걀을 깨 올린다. 구운 옥수수를 칼을 이용해 적당히 낱알을 훑어 더하고 간장을 뿌려 비벼 먹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윤희는 음식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푸드라이터.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에세이부터 영화, 레시피 북까지 모든 것을 즐긴다. 영화를 보다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음식이 나오면 바로 실행.



태그:#스키야키, #요리영화, #음식영화, #초당옥수수, #음식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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