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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기 명인이 최정욱 소믈리에에게 오미자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종기 명인이 최정욱 소믈리에에게 오미자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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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향기보다 포근하고 아카시아 향기보다 은근하다. 꽃향기에 허브향과 과일향이 배어 조화롭고, 묵직하고 향긋한 매력이 있다."

오미나라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기 명인의 말이다. 대체 무슨 꽃이기에 이렇듯 화려한 찬사를 아낌없이 보낼까? 오미자 꽃이다. 장미와 제라늄의 향이 섞인 것 같은 향기도 난단다.

오미자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문경새재를 넘던 지난 5월 4일, 문경의 '오미나라'를 방문했다. 오미나라는 우리나라 최고 와인으로 손꼽히는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다. 오미나라의 회사이름은 '농업회사법인 ㈜ 제이엘'.

운이 좋았다. 오미나라를 찾은 날, 오미자 꽃이 활짝 핀 것을 볼 수 있었으니. 오미자 열매는 많이 봤지만, 오미자 꽃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그건 최정욱 소믈리에도 마찬가지란다.

이종기 명인은 문경시외버스터미널까지 우리를 마중 나왔다. 오미나라에서 터미널까지는 5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 이 명인은 오미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오미자 농원으로 이끌었다. 천여 평이 넘는 농원에는 무엇이라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강한 향기가 감돌았다. 바로 오미자 꽃향기였다. 이 명인은 우리에게 오미자 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오미자는 지름이 1센티미터가량 되는 붉은 색의 둥근 열매로 8월~9월에 열매가 익는다.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다섯 가지 맛을 지니고 있어 오미자라고 부르는데, 주로 한약재로 사용된다.

오미자 꽃
 오미자 꽃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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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 사과산지로 유명하지만, 오미자 산지로도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오미자의 45%가 문경에서 생산된다. 백두대간의 중심지인 문경은 산간 고랭지가 많아 오미자 재배에 적합하다고 한다. 

이 오미자로 이종기 명인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개발했다. 이 와인은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하게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정통 스파클링 와인 제조방식으로 만든.

오미나라에서는 오미로제 스파클링 외에도 오미로제 프리미어 와인과 오미자 증류주 고운달, 사과증류주 문경바람을 생산한다. 전부 이종기 명인이 만들었다.

문경의 옛날 천년주막 터에 자리 잡은 '오미나라'에는 와인제조장, 홍보를 겸한 숙성장소와 와인 시음장이 있다. 이종기 명인 안내로 와인제조장을 포함한 내부시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연상하게 하는 증류기였다. 병에 넣은 스파클링 와인들이 잔뜩 쌓인 채 숙성되고 있는 모습도 아주 볼만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오미로제 증류주인 '고운달'과 사과 증류주인 '문경바람'도 오크통과 도자기 항아리 안에서 숙성되고 있었다.

오미나라 건물 전경. 이종기 명인과 최정욱 소믈리에.
 오미나라 건물 전경. 이종기 명인과 최정욱 소믈리에.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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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으니 와인 시음은 필수. 지금까지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마신 것은 세 번밖에 되지 않는다. 스파클링 와인은 값이 비싼 편이라 평소에는 시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병의 소매가격은 9만9천 원. 한 번 마시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와인의 품질이나 맛을 따지면 결코 비싸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선뜻 마시기에는 부담되는 가격인 것만은 분명하다.

최정욱 소믈리에는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와인 품질에 비하면 값이 비싸지 않은 편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와인 가운데 가장 비싸다"고 설명한다.

이종기 명인이 샴페인 잔에 스파클링 와인을 따르니 거품이 힘차게 올라온다. 거품이 말끔히 사라진 뒤에는 작은 기포가 와인에서 쉬지 않고 올라온다. 은은한 와인 향기가 서서히 잔 밖으로 퍼져 나온다.

"화장품 향은 처음에는 향긋하지만 금방 싫증이 나는데 오미자 향은 붙임성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래요. 꽃향기와 허브향, 과일향이 섞여 은은하게 오래 가죠."

오미로제 와인이 처음 출시된 것은 2011년 11월 11일이다. 하필이면 왜 그 날이냐고 물었더니, 재미있고 기억하기 좋기 때문에 그 날을 선택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오미자를 선택한 이유

이종기 명인이 오미로제 와인을 따르고 있다.
 이종기 명인이 오미로제 와인을 따르고 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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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종기 명인과 마주 앉아 오미로제 와인을 마시면서 오미로제 개발 이야기부터 우리나라 술의 역사, 술 산업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왜 양조학의 대가로 불리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술에 대한 철학과 열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오미자로 와인을, 그것도 전통적인 제조방법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개발하는 것은 고난의 가시밭길을 자청해서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양조전문가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개발단계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했다. 개발기간만 5년 이상이 걸렸으니, 그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선택한 원료가 오미자였기 때문이다. 오미자가 가진 특성 때문에 발효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종기 명인은 가장 큰 어려움으로 발효를 꼽았다.

그는 포도나 사과 등의 다른 과실도 많은데 하필이면 오미자를 원료로 선택했을까?

"포도는 전 세계의 기라성 같은 와인 제품이 수도 없이 많아요. 와인이 몇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잖아요. 쌀로 해서도 답이 안 나와요. 일본의 사케가 있지요.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고 실험을 많이 해봤는데, 오미자로 하면 승산이 있겠다, 내놓을만하다고 생각한 거죠."

오미자는 그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원료였다고 한다. 친가와 외가가 몇 대에 걸쳐 한의원을 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보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에서 최초로 오미자 와인 개발에 도전했지만,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증류기
 증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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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했을 때 원료를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미생물학을 여러 번 공부했으니까. 미생물은 온천의 뜨끈뜨끈한 물에서도 살고, 지하 100미터, 천 미터에서도 살고, 심지어는 콧속이나 귓속에서도 살아요. 여기(오미자)에도 발효를 시키는 미생물이 있다고 확신을 했어요. 그걸 못 찾아서 그렇지. 재료가 갖고 있는 향이나 맛이나 풍미가 확실하니까 (성공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끈질기게 도전한 결과 결국 오미자 발효에 성공했고,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을 개발했다.  개발기간만 거의 5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2008년에 오미자 20톤을 수매해 양조를 시작했고, 2011년에 드디어 신제품을 출시했다.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을 개발하면서 그는 프랑스 에페르네를 9번이나 다녀왔다. 다 이유가 있다. 샴페인을 처음 만든 사람은 '샴페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수도사 동 페리뇽이다. 동 페리뇽은 에페르네 근교의 오빌레 수도원에서 샴페인을 만들었다. 이종기 명인은 그를 스승 삼아서 그가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스파클링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에페르네에는 샴페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5500여 개가 몰려 있다고 한다. 이종기 명인은 이곳을 아홉 차례나 방문해 샴페인 메이커들과 만나 와인 제조법을 끈질기게 찾아냈다.

기술력과 노하우로 소믈리에들에게 인정받다

와인 발효탱크
 와인 발효탱크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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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욱 소믈리에는 스파클링 와인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오미로제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되는 유일한 스파클링 와인인 것은 그 때문이다.

"병속에서 2차 발효를 하는, 전통적인 스파클링 와인 제조법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것은 책으로만 보아왔지, 우리나리에서 관련된 설비를 본 것은 오미로제에서가 처음입니다. 스파클링 와인은 생산설비가 일반 와인 설비와 전혀 다릅니다. 스파클링 와인은 기술력이 되지 않으면 만들 수 없고, 기술력이 된다고 해도 다년간의 노하우가 없으면 품질이 좋은 와인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오미자로 와인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스파클링 와인을 만든다는 생각을 한 것 자체가 대단한 거죠."

그래서 한국와인을 저평가하는 국내의 소믈리에들도 오미로제 와인만은 인정한다는 게 최 소믈리에 설명이다.

☞이어지는 기사 : 오미나라 ②



태그:#이종기, #오미로제, #오미나라, #스파클링와인, #오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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