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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강남역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많은 언론들이 이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여자가 무시" 목사 꿈꾸던 신학생 묻지마 살인'
'강남역 묻지마 살인범, 목사 준비하던 신학생 노숙하며 아르바이트'
'강남역 묻지마 피의자, 정신분열 치료+신학대생 신분 밝혀져 '충격''

위는 실제로 당시에 보도했던 기사들의 제목이었다. 가해자가 여성을 특정해, 남성 몇 명은 지나보내고 살해했다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묻지마'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하는 것이 첫 번째 이상한 점이다. 그리고 도대체 목사를 꿈꾸는 신학생이라는 점은 왜 보도하냐는 것이 두 번째 이상한 점이다. 당시 이런 비상식적인 언론들의 제목뽑기 행태는 많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성범죄 보도 가이드라인 "피해사실을 강조하거나 가해자의 변명에 집중하지 마라"

언론들이 피해자를 향한 가해해 동참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들이 피해자를 향한 가해해 동참하는 경향이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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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이 사건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가해라는 지점에서 광의의 '성범죄'에 들어간다. 그래서 한국기자협회에는 성범죄를 보도하는데에 있어 언론이 윤리적으로 지켜야 할 지점을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권고 기준', '성폭력 사건보도 가이드라인' 의 항목을 통해 명시하고 있다. 그 중 일부만 보면 다음과 같다.

'언론은 가해자의 사이코패스 성향,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공포심을 조장하고 혐오감을 주는 내용의 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 사용이나 피해자와 시민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불필요한 성적인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해자 남성이 '목사를 꿈꾸던 성실한 신학생'이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언론들이 많았다. 앙스만 따져보자면 그런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닌데 순간의 일탈을 저질렀다는 식인 것이다. 이런 가해자를 향한 지나친 감정이입은 피해자에 대한 사실상의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한국언론 보도에서의 젠더적인 편향성을 연구한 김훈순(2004)에 따르면 언론은 여성이 범죄의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간에 여성을 비난하거나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범죄사건이 가진 사회적 의미나 영향을 구조적 차원에서 평가하기보다 개별화된 한 인간의 문제로 바라보는 '개인화' 작업이 두드러진다고 하는데, 강남역 사건을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남성의 개인적인 일탈로 축소시키는 데에서 개인화 작업이 진행됨을 볼 수 있다. 13년이나 지난 지금도 보도방식이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셈이다.

정신질환이 강조되면 다른 사회적 맥락도 지워져

기자협회의 세부권고 기준에는 가해자의 정신질환을 필요이상으로 강조하지 말라고 나와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여성혐오가 원인이 아니라 조현병에 의한 범죄로 수사를 마무리 했었고, 이것을 언론들이 받아 보도했다. 그 결과 많은 네티즌들이 이것은 정신질환에 의한 개인적 일탈인데 왜 여성혐오를 강조하느냐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중요한건 '조현병에 의한 범죄'와 '여성 대상의 혐오범죄' 둘 중에 어떤 것을 고를것이냐가 아니다. 정신질환은 실제로 범죄를 일으키는 데에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가해자가 여성을 특정하여 저지른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에만 집중하면 여성 대상 범죄에 당사자들이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사회적 맥락이 삭제된다는데에 있다.

그리고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다. 조현병은 하나의 계기(trigger)에 불과하다. 그래서 당시 조현병을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한 경찰을 향해 정신장애인을 가족으로 두었거나 당사자인 사람들이 항의를 한 바 있다. 또한 장애인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매체인 <비마이너>도 논평을 통해 언론들이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렇듯 다양하게 보아야 할 범죄사건에 대한 원인을 하나로 특정했을 때 불가피하게 편견을 조장하고 당사자들을 배제할 수 밖에 없다. 강남역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언론들은 적극적으로 가해에 동참하고 있던 것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나도 그때 포스트잇 물결의 현장에 있었다. 이 슬픔과 분노의 연대 앞에서 피해자를 향한 2차가해에 동참하는 언론이 너무 많았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나도 그때 포스트잇 물결의 현장에 있었다. 이 슬픔과 분노의 연대 앞에서 피해자를 향한 2차가해에 동참하는 언론이 너무 많았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 김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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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사건 이후에 한 경제지는 강간사건을 두고 '불필요한 성적 상상을 유발하는' 포르노적인 보도를 해서 거센 비난에 직면하자 사과를 하고 기사를 정정한 바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강남역 사건이 여성대상 범죄에 대한 분노를 이끌어냈기에, 이런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보도도 비난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에 동참하는 보도들이 존재한다. 적어도 한국기자협회에서 내놓은 가이드라인만 착실히 지킨다면 없었을 일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강제는 아니지만 언론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특히 성범죄에 대해서는 언론이 정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언론은 여성혐오에 저항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더욱 반영해야 할 것이다.


태그:##강남역살인사건, ##정신질환,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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