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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목 하이디스 지회장, 4억원 손배소 1심 결심재판을 앞두고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재판일정을 보고 있다.
 이상목 하이디스 지회장, 4억원 손배소 1심 결심재판을 앞두고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재판일정을 보고 있다.
ⓒ 윤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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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자님. 죄송하지만 제가 전화 인터뷰도 조심스럽습니다. 언론 인터뷰 건으로 사측과 손배소송이 진행되고 있어요. 지금도 재판받으러 다녀오는 길입니다. 주신 질문에 제가 대표로 말씀드리기 입장이 곤란합니다."

지난달 27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하이디스 사측이 이상목 노조 지회장 개인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1심 결심이 열렸다. 결심을 기다리던 그 순간에도, 이상목 지회장은 전화로 타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있었다. 필자 역시 그를 취재하는 입장이라 어떤 주제의 인터뷰길래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는지 궁금했다.

"기술먹튀, 정리해고 이런 걸 물으시는데, 하이디스뿐 아니라 전반적인 생각을 질문하더라고요. 몇 년 전만 해도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 데 거침없었는데, 요즘 인터뷰 한 번 때문에 형사고발 민사고발로 여기저기 소장이 날라 오고 불려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 사안 아니면 되도록 말을 아끼려고 해요."

'기술먹튀'와 '정리해고'가 주제라면 이상목 지회장이 충분히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주제다. 그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하이디스는 LCD생산 회사로, 전신인 현대전자 부도 이후 분사해 2002년 중국 BOE에 매각되었다. BOE는 당시 LCD 생산 경험이 없는 기업이었는데, 결국 하이디스의 기술 자료를 유출한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후 또 다시 대만 E-ink라는 해외자본에 매각이 되면서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정'과 '기술먹튀 가능성'에 불안을 느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하이디스는 국내 기술 개발로 연간 1000억 원대의 기술료 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2015년 1월, 경영진은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대규모 정리해고와 공장폐쇄를 강행했다. 대부분 노동자는 희망퇴직으로 떠났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이 지회장을 포함해 94명이 정리해고 되었다. 이때부터 하이디스지회는 원정 투쟁, 거리 농성을 벌이며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쟁의 활동을 벌였다.

농성 3년 차에 접어든 지금, 이상목 지회장은 소송에 불려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다. 손배소만 세 건에, 형사고발과 민사행정소송 등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든 소송에 휘말렸다. 이 지회장이 인터뷰를 조심하게 된 건 '명예훼손'으로 인한 민형사 소송 때문이다.

2015년 5월 13일, 하이디스 노동자였던 고 배재형씨의 죽음을 두고 하이디스지회가 속한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와 시민단체 등이 대책위원회를 꾸려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발표한 기자회견문에는 배재형씨가 "사망 직전 사측으로부터 희망퇴직 회유와 손배소 협박을 받고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대책위의 입장이 담겼다. 이 지회장은 기자회견 발언자 중 한 사람이었다. 이날 기자회견과 관련하여 여러 건의 보도가 나갔다. 회사는 곧장 이 기사를 문제 삼아 '허위사실유포죄'로 지회장 개인에게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진행했다.

특히 사측은 '기사가 나가는 동안 정신적 피해로 병원진료를 받았다'며 진단서를 제출하고 지회장을 상대로 4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죄명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였다. 지난 4월 27일은 바로 이 손배소 건의 1심 결심이 있었다.

4억원 손배가압류로 돌아온 '기자회견'
 4억원 손배가압류로 돌아온 '기자회견'
ⓒ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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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발언이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사측이 문제 삼은 기사'를 보도한 매체는 여러 곳이다. 그중에서 두 건의 기사를 지적받은 매체가 보였다. 해당 매체와 기자에 연락을 취해보았다. 확인 결과, 기자나 매체 쪽으로는 별도의 문제 제기가 오거나 기사삭제 요청을 받은 일이 없다고 했다. 

사측의 주장에 따라 기사가 게재되는 동안 정신적 피해가 컸고, '허위사실' 여부를 다투는 경우라면 언론사 쪽에 기사 보류나 정정 요청 등의 선 조치를 요청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측은 언론사나 기자를 상대하지 않고, 이상목 지회장 개인에게 소를 제기했다. 이상목 지회장은 소장을 받았을 때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 소장을 받았을 때는 좀 황당한 기분이었어요. 2015년 5월 11일 기자회견은 산별노조와 연대단체가 포함된 대책위의 입장을 알리는 기자회견이었어요. 기자회견에서 나간 발언이나 기자회견문이 인용이 되었다고 소송이 들어오는 건 그동안은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도 했고요.

사측이 문제 삼은 기사는 대부분 '노조의 입장'으로 나갔는데 금속노조 경기지부나 대책위 쪽으로는 문제제기도 소제기도 없었어요. 손배소송도 지회가 아닌 저 한 사람에게 제기됐고. 지회장이기 때문인가 했죠. 그런데 이 건으로 손해배상 청구도 모자라 부동산과 통장가압류까지 들어오더라고요."

그렇다면, 하이디스의 건처럼 기자회견의 내용을 문제 삼아 개인에게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는 게 법적으로 타당한 일일까.

금속법률원 송영섭 변호사(금속법률원장)는 이러한 소송은 헌법이 명시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송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행위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속하고 불법행위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형사처벌이나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의사표현행위 자체를 막으려고 하는 것은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송영섭 변호사는 해당 사건에 대해 "명예훼손 사건에서 중요한 건 허위 사실 여부도 있지만, 해당 내용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일 정당한 사유가 노조 측에 있었느냐는 부분도 중요하다. 이럴 경우 해당 내용이 허위라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허위 사실 여부'를 두고 엇갈리는 부분은 '사측의 노동탄압이 고 배재형씨 죽음에 원인이 됐는지'다. 고인의 죽음이 노동탄압 때문이라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 사측은 '허위'라고 대응하고 있다. 법정에서 다투고 있는 허위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노조나 이상목 지회장이 배재형씨의 사망 원인이 '노동탄압 때문'이라고 믿는 근거는 무엇일까.

이상목 지회장은 배재형 씨의 유서에 적힌 '5/1 노동절'을 말한다. 고인 사망 전인 2015년 5월 1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 배재형 열사 유서
 고 배재형 열사 유서
ⓒ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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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일에 제가 다 했습니다"

"동지들, 저의 순간의 실수(잘못)로 인해 투쟁에 찬물을 끼얹어 죄송합니다. 제가 다 책임지고 이렇게 갑니다. 제가 다 주동했고 선동했고 5/1일에 제가 다 했습니다. 동지들 끝까지 잘 싸워서 꼭 이겨주세요." - 배재형 열사 유서 중

2015년 5월 1일, 공장 시설관리팀 소속 노동자들은 노동절 휴무에 참여했다. 배재형씨는 시설관리팀 소속이었다. 노동자들은 법정휴무라고 생각했지만 사측의 해석은 달랐다. 다음날 사내게시판에 대표이사 명의로 공지문이 올라왔다. 대표이사는 휴무를 '무단결근'으로 해석했다. 덧붙여 '무단결근으로 입주사가 피해를 입어 무단결근 당사자들에 대한 법적조치가 불가피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지회장은 이에 덧붙여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노동절 다음날 개발팀장이 시설관리팀 노동자들을 불러다 놓고 면담을 했어요. 거기에는 배재형 전 지회장과 우부기 조합원이 소속됐습니다. 주요 내용은 109명 희망퇴직 건과 함께 시설관리팀 30명은 아웃소싱을 하는 식으로 남겨 업무는 그대로 유지시키겠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5월 1일 시설관리팀이 무단결근을 해, 냉각기 고장으로 100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봤다'며 이를 손배청구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100억 원이라는 돈을 앞세우니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협박으로 들릴 수밖에 없죠."

이상목 지회장은 2015년 5월 4일, 같은 이야기를 사장과 배재형 전 지회장이 동석한 자리에서 직접 들었다고도 말했다.

"사장이 시설관리팀에서 '희망퇴직'하고 '아웃소싱'에 응하지 않으면 5월 1일 출근하지 않은 것에 대해 업무방해죄로 고소하고 10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면서, 다음날 당장 총회를 열어 결정을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화를 냈죠. 사장이 거듭 말한 '입주사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100억이다'는 말, 협박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상목 지회장이 보기에 함께 있던 배재형 전 지회장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배재형 전 지회장이 사장의 이야기를 듣더니 '설비근무자 중 000과 000은 건들지 마라, 내가 다 책임지고 사라져 줄테니'라고 했어요. 시설관리부 손배 이야기가 나올 무렵에도 저에게 '실제 소송이 진행되면 감당이 어렵지 않겠나'며 걱정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당시를 되돌아보면 배재형 전 지회장이 사장에게 한 말이 가슴에 남아요."

고인은 5월 5일 새벽까지 이어진 사장과의 만남 이후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며칠 뒤 설악산 인근 야산에서 유서와 함께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사측은 소장을 통해 5월 4일 저녁에 이 면담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손배사건에서 사측은 "회담은 2015년 5월 4일 저녁 8시 50분부터 다음날 새벽 2시 50분까지 약 7시간 동안 소의 고 배재형 전 지회장의 배석 하에 진행되었습니다"고 명시되어 있다.

다만, 소장에서 사측은 이상목 지회장이 '협박'으로 느낀 '희망퇴직과 시설관리팀 아웃소싱에 동의하면 5월 1일과 관련해 징계,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부분을 '협박'이 아니라 '합의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은 또 있다. 면담 이후에 배재형 전 지회장의 행보이다. 사측은 소장에 '고 배재형 전 지회장이 합의안을 들고 5일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했다가 조합원들과 갈등을 빚었다'고 주장했지만, 이상목 지회장은 "배재형 전 지회장이 간부도 아니었고, 그가 참석했다는 회의도 없었다"고 말했다.

투쟁이 시작되자 사측은 배재형 전 지회장이 '지회와 사측의 중재역할을 한 것에 부담을 느낀 것'이라고 주장하며 '허위사실유포'로 법적대응을 했다. 지회는 유서 내용과 앞뒤 정황상 '희망퇴직과 손해배상청구 압박으로 괴로워했던 점'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이상목 지회장은 배재형씨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고 회상했다.

"형이랑은 10년을 함께 했어요. 조합 간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노조와 관련된 건 작은 거라도 의견을 나눴어요. 형이 조직 실장을 하실 때, 제가 조직 부장을 했고, 지회장을 4년 하시는 동안 제가 수석을 했어요. 이건 달리 말하면 모든 노조의 결정사항이나 안건이 있으면 같이 논의 하고 결정을 해왔다는 뜻이에요."

배재형씨는 정리해고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정리해고 농성에서 전 지회장으로서 역할을 다 했다고 한다.

"배재형 전 지회장은 지회장인 제가 한 번 밖에 못 간 대만원정을 두 번이나 다녀왔어요. 본사에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입장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죠."

이상목 지회장, 배재형 열사 2주기 추모제에서
 이상목 지회장, 배재형 열사 2주기 추모제에서
ⓒ 윤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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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인데..."

지난 11일, '고 배재형 열사 2주기 추모제'가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다시 이상목 지회장을 만났다. 그는 집으로 법원 공고문이 날라왔다며 심란해 했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고 하잖아요. 집사람에게 특히 미안하죠. 아들만 셋인데, 큰애가 고3, 둘째 중3,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2015년 3월 31일 해고되고 2년 지났어요. 예전에는 뭐 사달라고 하면 쉽게 '그래 사'했던 것들이 이젠 '있던 거 써라' 이렇게 돼요.

외식 한 번도 사치고, 정말 필요한 공과금 정도 내는 생활, 애들은 학원이나 가고 싶어도 이제는 못 보내줘요. 그것만 해도 미안한데 5월에만 재판이 줄줄이 있어요. 법원에서 각종 소장이나 재판연기, 출석요구서 등 각종 우편들이 집으로 날라오니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만 해요."

이상목 지회장은 특히 미안했던 시기로 손배청구 이후 법원에서 가압문 결정문을 받았을 때라고 회상했다.

"2016년에 법원에서 가압류 결정문이 날라왔어요. 집에 있던 아내가 받았어요. 그동안도 너무 많은 경찰 소환장이나, 가압류 외에도 법원이나 경찰에서 출석요구서, 소환장 등이 날라왔어요. 그래서 가압류 결정문이 왔을 때 아내 반응이 거의 체념 수준이더라고요. 그런데 가압류 내용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전세 살고 있는 집 보증금이 가압류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은 아내 명의로 계약이 되어 있어요. 제 명의도 아닌 것까지 대상에 포함되어 있으니 놀랐죠."

이상목 지회장은 경제적 어려움도 있지만 계속되는 송사로 받는 압박감이 크다고 했다.

"한 번은 형사사건 선고를 앞두고 검사가 18개월 징역형을 구형한 재판을 선고 받으러 갔어요. 가기 전에 미리 친한 친구한테 '우리 식구 좀 챙겨달라'고 부탁했죠. 당분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아이들에게는 큰 아들한테만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이제 고등학생인데 녀석이 듬직하게 걱정을 덜어주더라고요."

해당 재판 1심에선 집행유예를 받았다. 현재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2주기 배재형 열사 추모제, 재판을 앞둔 이상목 지회장은 다음과 같이 담담한 입장을 밝혔다. 비록 지회장 개인에게 손배소가 들어왔지만 함께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소송으로 인한 불안을 넘겨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열사가 살아 생전 외쳤던 정리해고 분쇄, 고용보장 쟁취는 아직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이디스 지회는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지금도 농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는 18일 오전 9시 55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는 이상목 지회장에게 회사가 청구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4억 원 손배청구소송 1심 선고가 나온다.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는 인정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하이디스 측의 주장에 따라 '명예훼손'이 될까. 



태그:#손배가압류, #하이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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