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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노량진에 다녀왔다. 수 많은 청년들이 가방을 메고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고 있었다.

취업난이 심해지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 8일에 진행된 9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에는 무려 22만8368명이 응시했다. 거의 23만 명에 가까운 숫자다.

올해 9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은 많은 인원을 선발해 경쟁률은 줄었지만 응시자 수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 다른 시험들도 마찬가지다. 응시자 수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노량진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학원들이 몰려있어 인기 강사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고, 독서실도 많아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물가도 싸 저렴한 값으로 밥을 해결할 수 있다.

청년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노량진에 왔을까. 노량진에서 시험준비와 취업준비를 하는 수험생들을 만났다.

"영어시험만으로는 스펙 차별화 안 돼"

경영학과에 재학중인 A씨는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취업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A씨는 "자격증은 취업에 유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취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방심할 수 없기 때문에 영어공부와 학점관리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취업난이 정말 심하다. 자격증이 있어도 취업이 될 수 있을지 모르는데, 단순히 좋은 학점, 영어시험 점수만 가지고는 '스펙'에 차별화를 주기 힘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자격증이 있으면 앞으로의 진로가 보장되니 공무원 시험, 자격증 시험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A씨는 시험 공부를 하며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야 해서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쉬지 않고 공부만 했다. 친구도 잘 만나지 않았고 공부를 쉬는 날도 없었다.

시험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A씨는 "부모님께서 금전적인 도움을 주셨는데, 이야기 들어보니 시험 준비 비용으로 2000만 원이 넘게 깨졌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A씨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이유에 중소기업의 탓도 어느정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도 노동착취를 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정당히 일한 만큼 받지 못하고 직장생활과 내 생활과의 분리가 전혀 안 되어 있다. 대기업과 같은 양의 일을 하는 데 돈은 더 적게 받으니 중소기업을 기피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인문대, 전공살려 취업하기 힘들어"

사회복지학과를 나온 B씨는 자연스레 사회복지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과 친구들 대부분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그래서 B씨도 자연스레 공무원 시험을 선택했다. 기업 취업은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B씨는 "사회복지사의 경우 기업에서 뽑는 인원이 정말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회복지관이나 복지재단 등은 대부분 재정 상태가 좋지 않고 처우가 열악하다. 그러다 보니 다들 자연스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사회복지공무원 준비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B씨는 "인문대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좁은 것 같다. 인문대를 졸업한 친구들은 항상 '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할 일이 없다'는 말이, 전공을 살릴만한 일자리가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공을 살려도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힘든 시대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공 맞지 않아 경찰 준비... 육아휴직 보장돼야"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C씨는 남경과 여경을 뽑는 인원 차이가 커 특히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이버경찰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차 순경공채에서 남성은 1100명을 여성은 121명을 뽑는다. 2차 순경공채에서도 남성은 1076명을 여성은 121명을 뽑는다.

C씨는 "현장에서 여경이 남경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성범죄의 경우 여성 피해자가 많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여경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도 많은 분야에서 여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뽑는 인원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그가 경찰공무원 시험에 뛰어든 이유는 전공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을 전공한 그는 "학교를 다니며 전공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분야로 취업해 계속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고등학생 때부터 자신의 진로에 대한 교육을 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진로선택이 가능했을 텐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임신과 출산 문제도 C씨가 직업을 고르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결혼 후 일을 그만둔 분들을 많이 봤다. 대부분 육아문제 때문이었다. 여성들이 특히 공무원 시험에 많이 몰리는 이유가 육아휴직 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에서도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보장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야근하는 문화부터 바뀌어야"

D씨는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두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D씨는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생각과 많이 달라 회사를 그만두고 시험을 택했다. D씨는 "매일 아침 7시까지 출근해 9시쯤 퇴근했다. 주말에도 출근할 때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회사를 다니며 사람이 아닌 회사의 부품이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퇴근을 한 뒤에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잠을 자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생활이 아예 없었다. 공무원은 돈은 적게 주지만 출퇴근 시간이 보장돼 있어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D씨는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가장 큰 이유가 사회에 만연한 야근문화 때문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D씨는 "아침에 일찍 출근했는데도 정시에 퇴근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들 당연히 야근을 하는 분위기라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회사는 '정시 퇴근의 날'을 정해두기도 했다더라. 이게 참 웃긴 것 같다. 원래 퇴근을 정시에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태그:#노량진,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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