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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5시에 기상한다. 아침 일찍 조금이라도 부는 바람을 타기 위해서 결정한 기상 시간. 남의 집 거실에 펴둔 이부자리와 모기장을 정리하고, 배낭을 꾸린다. 따뜻한 홍차와 빵을 먹으며 다 같이 아침 미팅을 하고 목적지를 함께 정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처음 본 우리를 재워주고,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준 가족들과 단체사진을 찍은 뒤 해변으로 향했다.

평화로운 아따빵까 마을 다시 와보고 싶어도 올 수 없을 것 같다. 특별한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 평화로운 아따빵까 마을 다시 와보고 싶어도 올 수 없을 것 같다. 특별한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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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벗어난 지 2시간이 안 되어 바람이 또 잔잔해졌다. 더위를 못 참고 바닷속에 들어갔다. 고요한 물결 위에는 나와 쏭이 각자 헤엄을 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얼어붙었다. 바다뱀이 물속에서 올라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쏭을 쳐다보고 있었다.

"뱀이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쳤다. 그러나 쏭과 바람말이 쳐다봤을 때는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있었다고 설명했지만 다들 믿지 않는 눈치였다. 냉큼 요트 위로 올라온 내 뒤로 태연한 척 하던 쏭도 금방 올라왔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뱀을 무서워했다. 나는 왜 뱀을 무서워할까. 뱀은 무섭고, 위험한 동물이라고 학습을 받은 건 아닐까? 좀 친해지자는 마음으로 바다뱀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는데 친해지기는 힘들것 같다.

내가 본 바다뱀은 주로 호주와 동남아시아 일대에 사는 육지와 바다 생활을 동시에 하는 종류로서 코브라 뱀이 가진 독성보다 무려 수십 배가 더 많다고 한다. 호흡을 하기위해 2시간에 한 번은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천적이 딱히 없는 바다뱀이지만 새들의 공격이 두려워서 잠깐 숨을 쉬고 들어간다.

허겁지겁 요트 위로 올라와 어제 있었던 특별한 경험을 회상해본다. 어제 우리가 정박한 곳도 섬이 아니라 육지였다. 바르루(BARRU)지역의 아따빵까 마을. 해질녘 먼저 도착한 아부와 로미가 하루 묵을 집을 찾다가 우리나라의 이장님 댁 같은 곳을 찾아갔는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오늘밤은 어디서 잘 수 있을까? 외국인을 만난건 우리가 처음이었던지 마을 아이들과 청년들은 우리를 한참 따라 다녔다
▲ 오늘밤은 어디서 잘 수 있을까? 외국인을 만난건 우리가 처음이었던지 마을 아이들과 청년들은 우리를 한참 따라 다녔다
ⓒ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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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쏭의 배가 들어왔고, 쏭과 나 그리고 다코타는 로미를 따라 그 집에 들어갔다. 모두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누군가는 바로 인도네시아 '경찰'이었다. 원래 마을에 외국인이 들어오면 신고를 하는 게 원칙이기는 하지만 여태껏 그런 적이 없었다. 며칠을 지내는 것도 아니고 단 하룻밤만 있다가 떠났기 때문이다.

쏭은 인도네시아를 다니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신고정신이 투철한 이장님은 정말 우리가 한국에서 온 외국인이라서 신고한 걸까? 쏭은 다른 해석을 하였다. 아마 로미가 아체 사람이라서 경찰에게 알린 것 같다고 했다. 아체에 대해 이해하기 전에 동티모르부터 알아보자.

동티모르, 국제 사회의 희생양

인도네시아와 '개척자들'의 인연은 동티모르에서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극심한 분쟁지역이었던 곳으로 400여년 간 포르투갈 제국의 치하에 있다가 해방된 후 무력 침공에 의해 1977년 본토로 강제 편입되었다.

개척자들이 도착한 1999년에는 독립 과정에서 학살과 방화가 저질러진 직후였다. 국제적인 여론 때문에 독립을 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동티모르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과 학살은 엄청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 지배에 대해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의 암묵적 동의를 얻었어요. 호주와의 유전 개발권 비밀협상, 영국 등 열강은 무기를 팔아먹었죠. 냉전 체제 하에서 동티모르도 국제 사회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 송강호 저서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중에서

반다아체(Banda Ache) 아체 주의 주도로 수마트라 섬 북부에 위치하며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먼저 이슬람을 받아들인 곳으로 오랫동안 독립적인 이슬람 왕국을 유지하였다
▲ 반다아체(Banda Ache) 아체 주의 주도로 수마트라 섬 북부에 위치하며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먼저 이슬람을 받아들인 곳으로 오랫동안 독립적인 이슬람 왕국을 유지하였다
ⓒ 수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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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과 쓰나미가 휩쓸고 간 아체

인도네시아는 분쟁 지역에 대해 단호하고도 잔인했다. 저항하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보복하였는데 아체(Ache)도 그런 곳 중에 하나였다. 아체는 네덜란드와 일본을 거쳐 중앙 정부가 수마트라 섬의 한 부분으로 편입하면서 내전이 벌어졌다.

아체 청년들도 아체독립운동조직(GAM)을 꾸려 정부군에 대응하였으나 무력충돌 사이에서 정부군에 의해 많은 주민들이 피살됐다. 이에 관련하여 많은 NGO단체들이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중앙 정부에 의해 허용이 되지 않다가 2004년 쓰나미로 인하여 아체에서만 20여만 명의 피해자가 속출하자 구호단체에 대한 문이 열렸다. 개척자들도 그때 반다아체로 들어갈 수 있었고 로미와 익산과 인연을 맺었으며 개척자들은 이곳 청년들과 힘을 모아 평화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사복입은 인도네시아 경찰들과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 경찰들이 우리들 사진을 찍길래 나도 양해를 구하고 찍었는데 긴장한 탓인지 흔들렸다. 경찰들은 분위기 좋게 돌아갔지만 나중에 자다가 말고 여권을 또 보여줘야했다.
▲ 사복입은 인도네시아 경찰들과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 경찰들이 우리들 사진을 찍길래 나도 양해를 구하고 찍었는데 긴장한 탓인지 흔들렸다. 경찰들은 분위기 좋게 돌아갔지만 나중에 자다가 말고 여권을 또 보여줘야했다.
ⓒ 수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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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쯤 되어 경찰들이 왔다. 경찰은 우리의 신상, 어떤 여행을 하는지 등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대로 항해가 끝나는 것일까, 최악의 경우는 이곳에 배를 놔두고 우리 다 같이 시내에 있는 경찰서까지 가서 밤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곧이어 군인까지 들어왔다. 군인은 유독 아체 출신의 로미를 보는 눈이 매서웠다. 그런 긴장한 상황 속에서 군인은 진지하게 물었다.

"짐을 지키는 1명(바람말) 외에 나머지 3명은 여기 있어야 하는데 왜 2명밖에 없는가?"

처음에 우리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다 갑자기 쏭이 웃기 시작하였다. 쏭을 인도네시아 현지인으로 알았던 것이다. 너무 새카맣게 탄 쏭 덕분에 예기지 않은 웃음 속에서 경직된 분위기는 말랑해졌고, 경찰과 군인은 하룻밤이니 이곳에서 머물고 내일 예정대로 떠나라고 하였다.

출발해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상태로 함께 항해하다가 아부팀(다코타, 익산, 아부, 바람말)을 만났다. 아부가 불을 피워 선상 카페를 시작했다. 요트끼리 끈으로 묶어놓고, 우리도 만디(육지에서는 샤워를, 바다에서는 수영을 가리킴)를 함께했다.

아부의 선상 카페 항해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같이 즐겼던 순간
▲ 아부의 선상 카페 항해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같이 즐겼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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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서 커피와 비스킷까지 먹으니 더 이상 물 위에서 못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부는 그 와중에 낚시를 하고 또 구워서 나눠 먹었다.

사람이 참 신기한 게 아부 배에서는 할 게 없어서 잠도 많이 자고 하루가 갔지만 쏭의 배에서는 물 퍼내고, 집세일 방향 체크하면서, 무엇보다 쏭이 긴장하며 열심히 조종을 하고 있기에 눈치가 보여 많이 잘 수가 없다.

그런데 내 몸이 그런대로 적응을 한다. 아부 배에서 자던 시간의 10분의 1정도로 줄었지만 괜찮다.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 조절을 하는 뱀 같다. 힘든 상황에서는 또 나름 견뎌내는 나.

오늘은 배낭을 꾸리고 들었을 때 궁금했다. 내가 매일 쓰는 것은 한정적인데 반해 왜 이리 무거울까. 잘 쓰지도 않으면서 언젠가는 쓸 것이라는 착각에 누군가에게 주지도, 버리지도 않는 욕심들.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이것들뿐이다.

항해할 때 필요한 것

1)래시가드 긴바지와 수영용 반바지, 래시가드는 원래 몸에 붙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눈총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위에 반바지를 입으면 괜찮다. 2)줄무늬 반팔티, 한국에서 5천 원 주고 산 건데 정말 시원하고 잘 마른다. 3)회색 팔토시, 다코타가 줬다. 보통 팔토시는 패션 테러라고 생각하여 한 번도 쓴 일이 없는데 여기서는 아주 유용하다.

4)비키니, 반팔티 안에 입으면 엄청 편하다. 비키니 하의도 도전했으나 래시가드가 워낙 타이트해서 같이 입었을 때 너무 허리가 졸려 힘들다. 5)선글라스, 배 조종하며 햇볕에 눈살을 찌푸리던 아부 아저씨께 드렸더니 굉장히 좋아하셨다. 여기서 한화 2500원면 괜찮은 선글라스를 살 수 있다. 6)챙 있는 모자, 다코타가 빌려 주었는데 끈이 있으니 바람이 세게 불어도 걱정이 없다.

그러고 보면 다코타는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선뜻 내어준다. 자신에게도 필요해서 챙겨온 것일 텐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어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처음부터 종합비타민을 같이 챙겨먹은 건 잘한 일이다. 유일하게 내가 다코타를 챙길 수 있는 시간. 아침, 저녁으로 함께 먹도록 해야겠다.

계속 얘길 하자면 면적이 넓은 천인 7)사롱, 배위에서 꼭 필요하다. 내 바지가 검정색이라 덮으면 덜 덥다. 8)수건, 특히 싸롱이 없었을 때는 가리개로도 썼고 카약 훈련 때부터 비닐에 넣어 앉을 때 펴서 쓰면 내 엉덩이를 조금은 보호해주는 기분이 든다.

구명조끼를 깔개(원래 이러면 안 되는데 파도가 심해질 때는 급히 입는다)로 대용하고 부터는 베개로도 가능. 집세일 줄을 당길 때도 손으로 당기면 좀 아팠는데 수건으로 감싸면서 당기니 좀 낫다. 수건에 새겨진 부부동반 등산이라고 적힌 문구는... 괜찮다. 여기서는 이게 외국어니까.

인도네시아 올 때는 웬만해서 한국어로 적힌 티셔츠나 뭐든 가져오는 게 좋다. 감사를 표하고 싶은 친구가 생기면 선물 주기도 좋고.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적힌 티셔츠나 수건이 별로일 수 있지만 여기서는 색다른 선물로 변신할 수 있다.

9)폰, 전화도 안 되는 거라 큰 필요는 없지만 사진 찍는 용으로 좋다. 하루에 한두 컷, 꼭 남기고 싶은 순간을 위하여 고장 날지도 모를, 분실의 위험을 안고 챙긴다.

10)펜과 스케줄러, 그동안 부피가 커서 잘 안 썼는데 요즘 여기서 일기장으로 쓰고 있다. 스케줄러는 그 해가 지나면 다시 쓰기가 힘들다. 일기장으로 빼곡히 추억을 남겨놓자. 비닐팩에 넣었다 뺐다하며 기록하였는데 다음에는 방수가방도 준비하자.

막상 배타고 육지 도착하면 먹고, 씻고, 잠자기 바빠서 글 쓸 시간이 없다. 차라리 잘 자고, 아침에 요트를 타고나서 배 조종이 원활하여 글을 써도 눈치 보이지 않을 때, 바람이 잔잔한 평화로운 오전 시간을 잘 활용하면 좋다.

육지에서 필요한 것

길고 짧은 이태리타올. 클렌징이나 비누, 선크림을 바르니 씻을 때 필요하다. 씻고 닦아야 하니 수건도 필요. 이걸로 때밀이를 대신할 수도 있다. 칫솔, 치약, 물컵도 필수이다. 바가지들이 거의 지저분 하고 물은 아껴 써야 하니 물을 사 마신 후에 양치컵으로 재활용하자.

물이 귀한 이곳에서 샴푸는 3일 정도에 한 번 써주면 좋을 듯하다. 가끔 샴푸의 향긋한 향기에 잠이 들고 싶을 때가 있고, 바닷물에 젖은 머리가 너무 빳빳할 때, 그리고 잠을 자는 집에서 함께할 시간이 꽤 된다하면 얘기를 나눌 때 모자를 벗어야 하니까 한번씩 씻어줘야 한다.

최고로 오랫동안 샴푸를 안 썼을 때가 제주 카약 훈련 당시 4박 5일 동안 물로만 머리감기, 일명 '노푸(No Shampoo)' 경험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때 경험이 이곳에 왔을 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샴푸를 끊은 지 7년이 된 일본 저자의<물로만 머리감기 놀라운 기적>이란 책도 있다.

내 삶에 필요한 '진짜'는?

인도네시아 항해에서 돌아오자마자 내 삶에는 나름 큰 변화가 있었다. 샴푸와 비누, 치약만 뺀 나머지 클렌징, 린스, 트리트먼트, 바디워시 등등 쓰고 있던 것, 뜯지도 않은 새 제품들을 치웠다. 거의 한 박스가 나왔다. 제품을 치워버린 만큼 샤워하는 시간은 굉장히 짧아졌다.

그동안 1년에 한번 입을까 말까 하는 옷인데 버리기는 아까웠던 옷들도 많이 뺐다. 신발까지 해서 여러 개의 박스가 나왔다. 항해 훈련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내가 가진 것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여행이든, 인생이든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매일 여행하듯이 산다면 집에 있는 내 짐들은 더욱 줄어들텐데!

알록달록한 산호들과 물고기들이 있는 아름다운 섬. 개척자들과 거의 10년 인연을 이어온 대가족이 있는 랑카이 섬까지 반이 채 남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그곳에는 또 어떤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바람아, 좀 더 불어다오.

덧붙이는 글 | 평화 항해를 위한 배를 구합니다 dlgidfla2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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