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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지역의 항일운동을 기록한 <고성독립운동사>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책을 펴낸 고성문화원은 "어느 구절이 친일인가?"라 했지만, 책에는 여러 명의 친일파 인사들이 실려 있다.

<고성독립운동사>는 고성문화원이 고성군으로부터 2000만원을 지원받아 최근 발간했다. 독립운동사료연구가 추경화씨가 이 책을 두고 '이 책이 친일운동사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고성문화원은 언론사에 반론자료를 보냈다.

고성문화원 "어느 구절이 친일인가"

고성문화원 도충홍 원장은 반박문을 통해 "고성독립운동사의 어느 구절이 친일인가?"라고 되물었다.

도 원장은 "참 고약하다. 어떤 문제이든지 문제를 지적하려면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고 했다. 추씨에 대해, 도 원장은 "자신이 고성독립운동사를 발간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고, 그 분은 고성 출신이 아닐 뿐더러 고성에도 향토사를 나름대로 연구하는 단체가 있어 거절한 적이 있다"고 했다.

"고성독립운동사는 친일운동사"라는 주장에 대해, 도 원장은 "친일의 정의는 '자발적으로 또는 악질적으로 우리 민족을 못 살게 했거나 자신의 이익을 취한 자'란 취지다"며 "고성독립운동사의 어느 페이지의 어느 구절이 일본과 친일인사들을 찬양하고 흠숭했는가"라 했다.

그는 "구체적 사실 없이 다짜고짜 친일운동사라며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그 주장을 여과없이 언론에 보도됨으로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일반 독자들은 그대로 인식을 하게 돼 고성군과 고성문화원이 받는 이미지의 손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 했다.

책은 항일공적 수상자의 원고 분량이 적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에 대해 도 원장은 "편집 방향은 가급적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아 생가와 묘소, 연고가 있는 장소 등을 화보와 함께 싣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그러한 과정에서 후손과 연락이 닿지 않는 공적자에 대해서는 불가피하게 원고 분량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 책은 친일단체의 단체장이나 주사, 서기 등의 명단을 기록해 놓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도 원장은 "고성독립운동사에 나오는 어느 단체의 누가 고성에서 무슨 친일을 했는지, 친일의 피해자는 누구인지 등 구체적인 적시 없이 친일운동사라고 하는 것은 남의 제사상에 와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식"이라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생계형 공무원이었던 주사나 서기 등을 모두 친일이라 단정하는 것도 참으로 지나치며 과도한 친일 주장이다"고 했다.

고성문화원에서 펴낸 <고성독립운동사>의 '고성지역 농민운동' 항목.
 고성문화원에서 펴낸 <고성독립운동사>의 '고성지역 농민운동' 항목.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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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문화원에서 펴낸 <고성독립운동사>의 '고성지역 농민운동' 항목에서 친일단체인 '고성군농회'를 설명해 놓았다.
 고성문화원에서 펴낸 <고성독립운동사>의 '고성지역 농민운동' 항목에서 친일단체인 '고성군농회'를 설명해 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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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문화원에서 펴낸 <고성독립운동사>의 '고성지역 농민운동' 항목에서 친일단체인 '고성군 미곡통제조합'을 설명해 놓았다.
 고성문화원에서 펴낸 <고성독립운동사>의 '고성지역 농민운동' 항목에서 친일단체인 '고성군 미곡통제조합'을 설명해 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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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농회', '미곡통제조합'은 친일


<고성독립운동사>에서 제일 논란이 되는 부분이 '고성군 농회'와 '고성군 미곡통제조합'에 관한 기술이다. 책에서는 두 단체를 소개하면서 조합장과 회장 등 직책과 이름을 적어 놓았다.

'고성군 농회'와 '고성군 미곡통제조합'은 '고성지역 농민운동'이란 항목에 기술되어 있다. '고성지역 농민운동' 항목의 앞 부분에 보면 "일제하 한국 농민들은 식민농업정책에 대항하여 민족적, 계급적 각성을 통해 운동조직을 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농민운동을 전개해 나갔다"고 해놓았다.

또 책에는 일제치하 고성경찰서에서 고성농민조합 간부를 조사하고 통영검사국으로 송치해 조사를 받게 된 내용 등도 기술해 놓았다. 이어 같은 항목에서 "다음으로 1930년대와 1940년대 고성군 농회의 조직과 구성원을 정리하였다. 먼저 1933년 고성군농회 조직은 아래와 같다"고 해놓았다.

당시 고성군농회는 "회장 송찬도, 부회장 박남극, 간사 국영친사, 서기 최한열" 등이었다고 책에는 기술해 놓았다. 또 책에는 "1938년 현재 고성군 농회와 고성군 미곡통제조합의 조직은 다음과 같다. 5년 전과 비교하여 구성원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해놓았다.

당시 고성군농회는 "회장 노태식, 부회장 이갑용, 간사 하도율·대평정부, 서기 하갑룡․진우실, 고원 천두범, 기수 길천삼랑·정규삼·변재규·박우경 등, 징수원 최락완...", 고성군 미곡통제조합은 "조합장 노태식, 부조합장 이갑용, 주사 하도율·대평정부, 서기 이시환"이었다.

또 책에는 "1943년 당시 고성군 농회는 고성읍 성내동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고, 각 읍면 단위까지 조직을 확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기술해 놓았고, "회장 김학성, 부회장 이갑용, 간사 최동룡·수전일출휘, 서기 김성포·구태옥, 기수 이우수·유재화·최락완 등, 고성읍 주재 김재유, 삼산면 주재 서종열 등"이라 해놓았다.

이들은 누구인가. 노태식은 일본식 이름이 '풍천태식(豊川台植)이다. 그는 1930년대 후반까지 고성군수와 함양군수를 지냈고, <조선공로자명감>(1937년 발행)에 수록될 정도로 확실한 친일파였다.

이갑용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친일파였다. 그는 총독부 소속 중추원 참의로 충성을 다하여 일본왕으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고성군의원과 경남도의원을 12년간 지냈다.

김학성은 고성군 재무주임이었고, 총독부 표창장을 받았으며, 일본왕한테서 훈장을 받아 패용해 다녔다 하고,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송찬도는 고성군수와 총독부 내무과장을 지냈고 당시 조선인 최고위직인 총독부 본부 참여관을 지냈으며, 일본왕한테서 훈장을 받아 차고 다녔다고 한다. 박남극은 고성읍장을 지냈다.

추경화씨는 "농회와 미곡통제조합은 전국에 걸쳐 쌀, 보리 등을 수탈해 전쟁물자로 조달한 관변단체이고, 각종 곡식을 강압적으로 수탈 공출할 때 앞장섰던 친일단체이고, 놋그릇과 쇠붙이 등을 수탈해 비행기 제작을 위해 협력한 친일단체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농회'와 '미곡통제조합'에 대해 '친일'이라 적어놓지도 않았고, '고성지역 농민운동'이란 항목 안에 설명을 해놓아, 두 단체의 친일행적을 모르는 사람이 책을 읽으면 두 단체와 기록된 인물은 마치 항일투쟁을 한 것처럼 여길 것"이라 말했다.

[관련기사] "<고성독립운동사>는 '친일운동사'인가?... 내용도 부실"


태그:#고성독립운동사, #고성문화원, #항일운동,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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