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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에 소비자의 눈을 빼앗아야 하고, 몇 초의 순간에 관람객의 머릿속에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세상은 요란한 색으로 치장한 이미지가 넘쳐나고 있다. 이미지에서 발산되는 색의 화려함에 사람들의 눈이 멈추기도 하지만 마음마저 다가가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단순하면서 모든 빛이 다 갖춰진 흑백사진을 말하기도 한다. 빛의 변화가 흑백의 대비로 표현되어 대상을 선명하면서도 깊게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기에 색에 지친 많은 사진가들이 다시 흑백사진을 찾는다고 한다. 이런 세태에 따라 흑백의 이미지가 쏟아지지만 제대로 된 흑백사진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원색에서 다시 흑백의 세계로

백상현 사진가 디지로그의 사진세계를 만들어가는 백상현 사진가. 그에게 사진은 수행이다. ⓒ 김창근
사진은 대상을 찍는 행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화를 통한 해석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사진을 어떤 인화지로 작품화시킬 것인가까지가 작가의 영역임을 인정한다면 작가의 컨셉과 함께 관람객에게 온전한 작품으로 선보이는 일련의 메커니즘을 다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백상현 사진가는 이렇게 말한다.

"작품성만 가지고 평가받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현대 예술은 융합을 지향하는 흐름 속에서 사진가는 컨셉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고 어떤 인화지를 쓰고 어떤 프린트를 해서 품격 있는 작품을 완성시키느냐 하는 기술성도 겸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상현 사진가는 흑백사진에 매진하는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 최고의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백사진의 대가인 조임환 작가 외 흑백사진 전문가들로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흑백 프린터'라며 그의 작품성과 기술성을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암실에서 5년간의 창작

대기업 연구원으로 회사생활을 할 때 취미로 시작했던 사진은 2000년대 초반에 홍익대학교 대학원 이희상 교수를 만나 흑백사진 사사를 하면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감광측정법'을 통해 필름에 반응하는 빛의 차이, 인화의 톤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한 '존 시스템'을 접하고 그는 안산에 암실을 만들어 장장 5년 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다. 흑백사진을 한다는 작가의 작품이 일정한 톤이 없어 연작을 만드는 데 실패하지만 그는 5년간의 노력으로 쌓인 결과를 데이터로 만들어 언제나 일정한 톤의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고택의 아름다움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고택은 깊고 부드러운 명암의 대비속에 입체감이 살아있다. ⓒ 백상현
그 데이터의 결실은 잘못 만들어진 필름을 감별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은 조건에서 촬영한 작품이 다르게 나왔을 때 결국 필름의 문제임을 발견하고 '코닥' 사에 필름 감정을 의뢰했고 '코닥'에서는 조사결과 필름의 문제임을 인정하고 보상을 한 사례가 두 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5년간의 암실에서 얻어진 흑백사진 연구결과를 그는 한마디로 말한다.

"존 시스템은 거의 과학에 가깝지만, 흑백사진은 침묵의 세계요. 텅 빈 비움에 세계다."

디지로그의 사진 세계   

디지로그(digilog)는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의 합성어로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과도기 혹은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첨단기술을 의미하는 말이다. 디지털 기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아날로그로 보완함으로써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 가고 있다.
깊이가 다른 흑백사진 아날로그 필름의 장점을 극치로 살리고 디지털 기술로 완성하는 디지로그의 사진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 백상현
사진 분야에서 백상현 사진가가 만들어가는 디지로그의 세계는 디지털카메라가 담아내지 못하는 필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 특성을 극치로 살리고,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서 계조가 숨을 쉬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한층 더 입체적이고 추상화 같은 흑백사진 프린트를 완성해 가고 있다. 

"현대의 예술은 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날로그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감성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하게 되면 작가는 더 좋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의 사진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흑과 백의 대비가 아니라 그사이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톤의 계단과 심도를 통해 입체감이 확연히 드러나 보인다. 

사진은 수행이다

IMF 시절 어쩔 수 없이 대기업에서 명예퇴직을 한 후에 여러 가지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 끝은 암울했다고 한다. 감당할 수 없는 큰 빚만 남겨진 상황.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절망감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도 그는 사진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에게 용기와 힘이 되어준 든든한 후원자는 바로 아내와 가족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아내와 가족이 작가의 작품을 인정해 주었을 때가 가장 감격스럽고 기뻤다고 한다.

"사진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진 찍는 것을 멈추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이 싫증 나는 것은 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저에게는 같은 장소 같은 사물이라도 항상 새롭습니다. 그래서 사진은 저에게 있어서 평생 수행의 과정입니다."

디지로그의 사진세계 백상현 사진가는 작가가 컨셉과 함께 품격있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기술성도 겸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 김창근
그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대상을 만났을 때는 적어도 세 번 이상을 찾는다고 한다. 첫 번째는 전체적인 스케치 두 번째 만남에서는 구도와 구성 그리고 그 분위기에 최적화된 장비를 선정하고 세 번째 만남에서 작품을 만들어 낸다. 작품을 만들기 전에 그는 오랫동안 대상과 대화를 나누면서 충분한 교감을 갖는다고 한다. 그의 사진에서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오는 이유는 이런 대상을 내면화 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고택, 그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

작가는 환경과 한국의 전통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벌써 20년째 시화호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으며, 고택이나 소나무 등 가까이에 있으면서 소중함을 간과하는 우리 것들을 필름에 담아오고 있다.

그가 고택을 선택한 이유는 편리 위주의 회색 건물에서 사는 현대의 사람들에게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먼저 생각한 지혜가 반영되어 있는 전통가옥을 통해 선조들의 정신과 삶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선조들의 삶의 지혜 바깥 풍경은 아름다우면서 실내의 기둥이나 대들보 서까래까지 세월이 쌓여있는 나무의 문양까지 백상현 사진가의 작품에서는 그대로 살아있다. ⓒ 백상현
백상현 사진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한옥의 실내에서 바 본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바깥 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실내의 기둥이나 대들보, 서까래까지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는 나무 문양까지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명암의 대비에 묻혀버렸을 나무의 결, 선까지도 섬세한 계조의 표현으로 살아있다.

고택에 들어가 사진을 찍다 보면 창호지에 스며들어 오는 은은한 빛을 만난다. 이 빛에 나를 맡기면 인간의 밝은 정신과 건강한 삶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을 보는 듯해 나의 영혼이 맑아짐을 느낀다. - 작가 노트 중에서

백상현 사진가가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디지로그 흑백사진전'이 영종도 을왕리에 있는 갤러리카페 그리다썸에서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열린다. 
디지로그 흑백사진전 백상현 사진가가 최초로 시도하는 디지로그 흑백사진전이 영종도 을왕리에 있는 갤러리카페 그리다썸에서 열린다. ⓒ 백상현
태그:#백상현사진가, #디지로그, #흑백사진, #백상현, #그리다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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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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